픽션|마지막 도박, 뜻밖의 동아줄
수능 끝난 고3. 요즘에도 이런 말을 흔히 쓰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적어도 우리 때에 그것은 사회에서의 '장포대(장군 포기한 대령)'나 '경포총(경무관 포기한 총경)'과 거의 비슷한 뜻으로 통하는 속어였다. 즉, 지난한 고생 끝에 더 이상 잃을 것도 없고 눈치 볼 것도 없는 위치에 다다른, 그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무소불위의 존재가 바로 수능을 마친 이후의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었던 것이다.
물론 당시는 대학 입시 중 정시 비중이 70%에 가까웠던 시대였던 만큼, 실질적으론 수능을 마친 이후로도 준비해야 할 것이 아주 없진 않았다. 다만 정시에서 서류를 제출하는 것 이외에 별도 논술이나 면접 전형을 치르는 대학은 일부 상위권 대학에 그쳤고, 그마저도 대부분은 수능 이후 한두 달 정도 간격을 두고서 자체 고사를 진행했기 때문에, 웬만한 학생들은 그래도 숨 돌릴 여유 정도는 챙길 수 있었던 것이 보통이었다. 그리고 그 웬만하지 않았던 드문 학생 중 하나가 다름 아닌 나였다.
2006학년도 수능은 2005년 11월 23일에 실시됐다. 이는 2021학년도 수능이 2020년 12월 3일에 진행되기 전까지 역대로 가장 늦게 치러진 기록이다. 즉, 그 해는 수능 이후 정시 전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까지의 사이 간격 자체가 짧은 편이었다. 더군다나 서울대 수시 특기자 전형은 서류통과 여부를 수능 전에 미리 통보해 두고서, 최종 시험을 수능 종료 후 1주일 뒤에 진행하는 구조였다. 수시에 응시한 학생은 발표 전까진 합격 여부가 불확실한 만큼 얼마 뒤 열리게 될 정시 전형 준비를 바로 시작해야만 했다. 나 역시 참담한 심정으로 수시 면접을 마치고 귀환한 직후부터, 휴식은커녕 슬퍼할 새도 없이 곧장 정시 전형 대비에 돌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 좋다는 '수능 끝난 고3' 신분은 조금도 누려 보지 못한 채.
수능 점수는 신통치 못했다. 사실 나는 수능이 시작되는 순간 패배를 예감했다. 언어영역 시험지를 배부받은 순간, 나는 첫 번째 듣기 평가 문제를 지문만 읽어서 바로 풀어 버렸다. 다시 말하지만, 듣기 평가를. 그리고는 시험지를 뒤집으라는 지시를 받았을 때, 마지막 페이지에 있던 문제 다섯 개를, 그 역시 1교시가 공식적으로 시작되기 전 머리에 손을 올린 자세 그대로 눈으로 훑고선 다 풀어냈다. 내가 딱히 언어 천재라 그러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그해 수능 언어영역 문제가 경악스러울 정도로 쉽게 출제됐을 뿐이었던 것이다.
나는 언어와 사회탐구 영역이 자신 있고 외국어와 수리 영역에 취약한 편이다. 즉, 언어와 사회탐구가 어렵게 나오고 외국어와 수리 영역이 쉽게 나온 상황에 나는 비교적 유리할 수 있다. 2006학년도 수능은 그러한 면에서 상당 부분이 반대였다. 보다 정확히는, 언어영역만 어렵게 나왔다면 불수능 소리가 아깝지 않았겠으나, 언어영역이 지나치게 쉽게 출제된 탓에 평년 수준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시험이었다.
운도 좋지 못했다. 앞서 딱히 언급하진 않았지만, 사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지리올림피아드 지역예선을 통과해 전국대회까지 진출했던 경력이 있었다. 그러했던 만큼 지난 3년간에 걸쳐 한국지리 과목에서 고전해 보았던 역사가 달리 없었다. 그런데 그날만큼은 뭐가 단단히 씌었거나 꼬였던 모양인지, 암만 한국지리가 수능 역사상 가장 어렵게 출제됐다는 평을 들었던 해라는 것을 감안해도, 원점수 50점 만점에 37점이라는 처참한 점수를 받아 들고야 말았던 것이다. 오답 수는 5개. 내가 문과로 진학한 이래 모의고사 한국지리 과목에서 틀린 개수를 모두 더해도 그것보단 적었다. 원점수 38점이 1등급 컷이었던 말도 안 되는 난이도였다는 사실을 감안해도, 아무튼 나로서는 마가 단단히 끼었다는 생각을 아니할 수가 없었다.
언어영역 100점. 외국어영역 90점. 수리영역 93점. 국사 47점. 정치 50점. 윤리와 사상 50점. 한국지리 37점. 도합 500점 만점에 467점. 본디 재능이 도통 없었던 탓에 원점수 41점에 3등급을 맞아 버린 제2외국어 중국어 영역은 논외로 치더라도, 서울대를 정시로 노리기엔 아무래도 무리가 상당해 보이는 점수 분포였다. 실제로 당시 내신까지 합산해 모의지원을 했을 때 배치표에서 '안정'으로 뜨는 서울대 학과는 단 하나도 없었다. 농경제사회학과나 생활과학대학 등 일부 극소수 모집군이 '가능'으로 판정됐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적어도 사회과학대학에는 진학하고 싶었다. 사회에 대해 배우고 또 이해하고 싶었던 마음만큼은 진정이었기에, 그러한 욕구에 가장 부합하는 단과대는 역시 사회과학대학일 것이라는 생각에 나는 사로잡혀 있었다. 세세한 학과는 별 수 없이 차치하고서라도 말이다. 그리고 끝내 서울대 수시 탈락 통보를 받은 나는, 서울대에 정시 지원할 모집군을 '사회과학대학 인류지리학과군'으로 최종 선택한다. 모의판정에서 '사회과학대학 광역'과 마찬가지로 '위험'이 뜨긴 했으나, 예상 커트라인이 그나마 미세하게 낮았던 것을 보고 내린 결정이었다.
물론 서울대를 한 명이라도 더 배출하길 바랐던 학교에서는 '위험'에 패를 던지는 나를 썩 기꺼워하진 않았다. 차라리 다른 서울대 모집군에 '가능'이 아예 없기라도 했으면 모를까. 설득의 여지가 존재해 버렸다는 사실은 나를 적잖이 괴롭고도 피곤한 상황으로 몰아넣어 버렸다.
"농경제사회학부나 소비자학과에서 배우는 것이 사실 사회과학대랑 비슷해."
"싫습니다."
"서울대는 학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니까?"
"싫습니다."
"일단 붙을 만한 단과대 가서 열심히 해서 전과하면 되잖아?"
"싫습니다."
내가 응시했던 2006학년도 수능 언어영역에 지문으로 출제된 바로 그 명작, 소설 '광장'에 나오는 것과 유사한 대화가 한동안 이어졌다. 사회과학대학이 아니라면 그저 싫었다. 실제로 나는 정시 가, 나, 다군 중 가군에서도 연세대 사회학과를 지망하며 법대와 상대 등을 제쳐 두고 사회과학대학을 지원했다. 마음에 드는 사회과학대학이 없어 상지대 한의대를 교차 지원했던 다군만이 유일한 예외였다.
우습게도 어쩌면, 학창 시절 내내 고통스러운 상황을 유발했던 커뮤니케이션 역량 부족이, 이 순간만큼은 내게 유리한 방향으로 작용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선생님들은 내 예상보다도 훨씬 빠르게 손을 놓아 버렸던 것이다. '백날 말해 봐야 어차피 통하지도 않을 놈'이라며. 나는 결국 우격다짐으로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인류지리학과군에 원서를 제출했다. 선생님들은 네 멋대로 하라며 정시 면접과 논술 준비를 학교 바깥에서 하고 싶다는 요청까지 모조리 수락해 버렸다.
그렇게 정시 대비를 핑계로 한동안 수능 끝난 고3의 나날을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심정으로 동네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 병과 더불어 소진하던 나는, 모두가 기대하지도 예상하지도 않았던, 서울대 정시 서류전형 합격 통보를 불현듯 받아 들게 된다. 2006년으로 해가 바뀐 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았던 어느 날이었다.
#이 이야기는 픽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