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12년에 걸친 전쟁은 비로소 끝났다. 나는 이겼다.
지능과 지식이 멸시나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하지 않는 곳. 그것은 내가 바라는 이상향이었다. 우리나라에서, 특히 문과에서, 그러한 지향에 가장 부합하는 공간으로서 서울대만한 곳이 그 어디 있으랴. 그것만으로도 내가 서울대를 간절히 지망했던 이유를, 그리고 그 문턱을 넘을 기회를 상실했을 때 받았던 충격과 좌절감을 설명해 내기엔 충분하지 않을까. 그렇기에 그 반대급부로서, 서울대 도전을 다시금 허락받게 됐을 때에 느낄 수 있었던 희열 또한, 내게는 흡사 지옥에서 부처를 만나는 이벤트에 견줄만했던 것이다.
조상신이 도왔건, 하다못해 전산오류가 있었건, 좋다, 아무래도 좋다. 분명한 사실은 그것들 뿐이었다. 이유가 무엇이건 1단계 전형에서 어쨌든 합격 통보를 받았다는 것. 그리고 최종 전형인 2단계는 총점 250점에 1단계 점수를 200점(수능 100점+내신 100점)으로 해 논술과 면접에 각각 25점씩을 부여한다는 것. 그리고 서울대 특성상 1단계 점수 비중이 80%라 해도 수석과 꼴찌 사이 실질적인 격차는 초박빙인 만큼, 2단계 전형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기만 한다면, 설령 턱걸이로 기회를 얻은 수험생이라 해도 막바지에 역전승을 노려볼 만한 여지는 차고 넘친다는 것.
부모님으로부터 긴급한 연락을 받은 나는 곧장 술잔을 놓고 교실로 달려갔다. 모교에서 현역으로 서울대 1단계 전형을 통과한 학생은 10명이 조금 되지 않았다. 학교는 그들 전부를 화급히 불러 모았다. 논술과 면접 대비 특강이 시작됐다. 수업 일정은 수능 이전 시점 못지않을 정도로 강도가 높았다. 초단기 속성으로 진행한 그것이 실질적으로 서울대 입시에 얼마나 도움이 됐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적어도 나로서는 그러한 강행군에서 받은 수혜가 명백했다. 최소한 살짝 맛을 들여 버릴 뻔했던 알코올과 강제로 결별할 수는 있었으니.
나는 누구보다도 필사적이었다. 재수를 한 것도 아니고, 오로지 단 한 번의 여정에서 서울대 입시 기회를 두 번 부여받는 것은 결코 흔히 누릴 만한 행운이 아니다. 지난 12년에 걸친 오욕을 화려하게 벗어날 내 생애 마지막 기회다. 첫 번째를 놓치고서도 두 번째까지 죄다 실패해 버리는 인간은 분명 복록이랄 것을 생애에 걸쳐 누릴 자격이 없는 비루한 작자다. 설령 하늘이 용서하더라도 내가 스스로를 결코 용서할 수 없을 것이다. 다음 동아줄은 반드시 잡아야만 한다. 그러한 절박함이 내겐 있었다.
오해를 피하고자 첨언한다면, 연세대는 유독 우습게 보았다거나 가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포장마차에 틀어박혔던 것은 결코 아니다. 당시 연세대는 인문계 정시 모집인원 중 50%를 수능과 학생부 점수 합산만으로 우선선발했다. 나는 주요한 모의지원에서 전부 그 합격권에 들어가는 것으로 판정됐다. 즉, 이후 일정과는 무관하게 합격이 사실상 확정된 상태였던 것이다. 설령 우선선발권에 들지 못했다 한들 서울대만큼 상황이 치명적이지도 않았다. 연세대는 서울대와 달리 정시에 면접 전형이 없었기 때문이다. 100점 만점 중 4.2점 비중인 논술 전형만이 존재할 따름이었다. 그렇기에 나로선 연세대는 일단 잊어 두고서 서울대 수시와 정시 사이의 망중한을 불안하게나마 영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수시 때의 경험으로 인해 서울대를 상대로 한 승부에서 스스로의 약점을 확실히 파악할 수 있었던 나는, 짧은 기간이나마 타인과 원활하게 대화하고 소통하는 능력을 키우는 데에 온 힘을 쏟았다. 오늘 내가 마주하는 불행은 언젠가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이라 했던가. 인간으로서 기본 소양을 12년이나 소홀히 하였던 업보를 며칠 만에 완벽히 청산하는 것은 당연하게도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그 얼마 되지 않는 기간에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최선을 다했노라 단언할 순 있었다. 수시에서 나를 탈락시킨 이는 서울대 교수가 아닌 나의 과거다. 내가 나를 이길 수 없다면 운명 또한 무엇 하나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의무교육 바깥으로 걸음을 내딛고서도 여전히 타인과 소통도 화합도 하지 못하는 미숙아로 살아갈 것인가? 학교란 곳은 학생에게 지식만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다. 수능과 내신 성적만이 의무교육 성과의 전부일 순 없다. 이대로 졸업한다면 너는 수난을 핑계 삼아 허송세월하며 잘못 배운 열등생일 뿐이다. 나는 스스로를 그렇게 힐난하고 또 다독였다.
아픈 만큼에 비례했는지는 미지수지만 어쨌든 성장은 했다. 두 달 만에 다시 찾은 면접장에선 예전만큼 허둥대진 않았다. 교수들과 나누는 대화에서도 오로지 나 자신만의 욕망을 앞세우기보다는, 서울대라는 학교와 그곳을 졸업한 학생들의 역할, 그리고 그들을 향한 우리 사회의 기대와 염려를 나름대론 보다 폭넓게 반영할 수 있었다.
"민속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는 높은 생산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분야지요. 학생은 우리 민속에 비용을 투자해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네, 그렇습니다."
"이유는 무엇일까요?"
"생산성의 관점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민속에서 당장 의미 있는 수준의 재화 산출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일본이나 서구권 등을 보면 그들은 자신들 고유의 전설이나 신앙, 전통 등을 문화 콘텐츠로 승화해 막대한 부를 창출해 내고 있습니다. 우리 또한 충분히 그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은 상투적인 구호에만 그쳐선 안 됩니다. 우리 고유의 민속이 드라마, 영화, 소설 등의 형태로 세계 시장의 주목을 받게 되는 때, 민속에서 생산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말은 결국 사라지게 되지 않을까 합니다."
아마도 인류학과 소속이었을, 면접을 담당한 교수와 오간 이야기는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그것이 말이 되는 소리인지는 솔직히 지금도 잘 모르겠다. 교수가 당시 그 답변을 어떻게 평가했을지도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굳이 내게 묻는다면, 나는 나름대로 예전에 비해선 훨씬 만족할 만한 답을 내놓았다 자평할 수 있었다. 한때 소설가를 지망했던 나의 견해를 거짓 없이 내비쳤으나, 나만의 지향이나 영달엔 매몰되지 않은, 우리의 사회문화 전체와 결부되는 방향으로 생각을 펼쳐 냈으니.
이제 남은 것은 기다림 뿐이었다. 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되 그것의 성사는 하늘에 달렸나니. 한낱 인간은 그저 할 수 있는 바 최선을 다하고선 천명을 고대할 뿐. 명절 전에 연세대 합격 발표가 난 것은 실로 커다란 위안이었다. 12년에 걸친 전쟁이 연장전으로 넘어가진 않겠구나. 그렇게 되뇌며 나는 안도했다.
가나다군 전부를 탈락해 버리지 않는 이상 나는 재수를 선택하진 않을 계획이었다. 두 차례에 걸쳐 최종 관문에 덤비고도 결국 넘어서질 못할 대학교라면 나는 그만 인정하는 편이 옳다고 생각했다. 내 실력은 서울대를 넘보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혹은 내가 생을 부여받은 이래 거머쥔 행운만으론 서울대 학적부에 이름을 올리기엔 충분치 못했다는 것을.
그리고 정시 합불 발표가 예고된 바로 그 날인 2006년 2월 2일, 나는 차마 내 손으로 합격자 조회 사이트를 켤 수가 없었다. 서울대 탈락을 두 번이나 정면으로 마주하기엔 두 달은 너무 짧은 간격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컴퓨터를 잘 다루지 못하는 어머니께 수험번호와 URL을 적어 맡겼다. 나는 방 안에 틀어박혔다. 책 따위가 눈에 들어올 리 만무했다. 믿는 신도 없었던 나는 기도할 곳조차 마땅치 않았다. 그저 멍하니, 멍하니 기다릴 뿐이었다.
이윽고 어머니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가슴이 요동쳤다. 무엇이 됐건 발표는 난 것이다. 거실로 나섰다. 방문이 열리는 순간 어머니가 나를 끌어안았다. 건너편으로 보이는 모니터는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서울대 정시 결과 발표 페이지다. 합불여부에 새겨진 글자는 합격. 20년을 지나온 나의 인생이, 12년에 걸친 나의 오욕이 단 두 글자로 정리되는 순간이었다.
어머니는 밤이 늦도록 전화기를 놓지 못했다. 아버지는 운전을 하며 돌아오는 길에 크락션을 치며 소리를 질렀다 한다. 우리의 아들이, 불과 고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했던 이 몸의 자식이, 끝내 서울대학교에 합격했노라고. 나는 화면에 박힌 두 글자를 오래도록 쳐다보았다. 이것으로, 겨우 이것으로, 나 스스로조차도 긍정하지 못했던 나의 삶은 근본부터 바뀌어 나갈 것이리라. 비로소 남들처럼 평범하게 친구도 만나고, 사랑도 하고, 미래를 그리며 꿈도 꾸어 보리라. 지능과 지식이 결코 멸시나 조롱의 대상일 수 없는, 바로 그 대학에서 이제부터 나는 그러하리라.
12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다. 졸업식 날을 맞은 3학년 교실은 어느 곳을 가더라도 시끄러웠지만 나를 부르는 이는 누구 하나 없었다. 학생회장으로서의 마지막 임무로 모두를 대표해 졸업장을 받은 뒤, 나는 가방을 챙겨 조용히 교문을 빠져나왔다. 마치 처음부터 이 공간에 없었던 사람처럼.
연애 시뮬레이션의 배드 엔딩 같은 상황이었으나, 정작 내겐 그 무엇 하나 비극일 수 없었다. 어떠한 미련도 남겨 두지 않고서 나는 다시 시작한다. 고향과는 멀리 떨어진 새로운 무대에서. 나를 모르는 사람이 가득한 낯선 세상에서.
"야, 너 서울대 붙었더라?"
버스정류장을 향한 골목으로 꺾어 들어가기 전, 내게 말을 거는 무리가 있었다. 같은 중학교를 나와 같은 고등학교로 진학한 동기 몇몇이었다. 나는 슬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좋냐?"
그중 하나가 비릿한 표정으로 입꼬리를 뒤틀며 물었다. 대꾸하지 않았다. 더 이상은 그러할 가치마저 느끼지 못했다. 그저 몸을 돌리고선 내 갈 길을 걸어갈 뿐이었다. 무엇을 두려워하랴. 해를 넘겨 스물이 된 우리는 성인이다. 이제는 그 누구도 함부로 서로에게 협박을 하거나 침을 뱉을 수 없었다. 내가 그 얼마나 저들에게 역하고도 거슬리는 존재였건.
웃음이 나왔다. 몇 걸음을 디디던 나는 그대로 웃었다. 고개를 젖히고선 그들에게 들리도록 크게 웃어 버렸다. 돌아보지 않았다. 미친놈이라고 욕을 하건, 재수 없다고 매도를 퍼붓건 마음대로 해라. 너희가 무어라 하건 나는 그대들과, 그리고 지난 12년과 주저 없이 결별할 것이다.
상쾌했다. 순간이여 멈추어라, 너는 정말로 아름답구나. 미래의 나는 필경 이보다도 훨씬 크게 웃을 수 있으리라. 그러한 날이 내게도 분명 올 것이니.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햇살이 겨울 치고는 몹시도 따스했다. 생각건대 다가오는 봄이 그리 멀지도 않은 때가 아니던가.
#이 이야기는 픽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