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였고 나는 너였다

다시,처음으로

by 월하연

눈을 떴다. 이번엔 정말로.


피부에 닿는 공기, 귀에 스치는 소리, 심장의 박동까지 선명했다. 이전까지 우리가 있던 그곳과는 완전히 달랐다. 여기는… 진짜 삶이었다. 그건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천장에는 형광등이 하나 달려 있었고, 창밖으로는 나무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커튼 사이로 햇살이 들이쳤다. 따뜻했다. 나는 몸을 일으키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병실이었다. 그리고 내 손엔 이름표가 감겨 있었다.


‘한윤서, 생년월일 20XX년 XX월 XX일.’


그 이름은 낯설었지만, 동시에… 익숙했다. 새로 태어난 이름. 내가 선택한 이름은 아니었지만, 이제부터 내가 살아갈 이름.


나는 창가로 다가가 커튼을 살짝 걷었다. 햇살은 강렬하지 않았지만, 분명했다.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며 햇살을 조각냈다. 그 아래엔 사람들이 웃으며 지나갔다. 그들 속에 나는 없었지만, 언젠가는 나도 그 사이에 설 수 있으리라.


그 순간, 머릿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스쳤다.


『돌고 돌아 여기까지… 나는 나를 만나러 왔어…』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노랫말은 내 가슴을 툭, 건드렸다. 분명한 기억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그 노래는 내가 만든 것이고, 나의 이야기였다는 것을.


병실 문이 열렸다. 간호사가 들어왔다.


“일어났네요, 윤서 씨. 정신은 좀 드세요?”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지만, 말하지 않아도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이제부터 천천히 해도 돼요. 많이 놀랐을 테니까.”


나는 문득, 거울을 보고 싶었다. 내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궁금했다. 간호사는 내 시선을 읽었는지 옆 선반에서 손거울을 건네주었다.


나는 조심스레 그것을 받아 들여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낯선 얼굴. 맑은 눈동자. 아직 희미한 표정.


그러나… 그 안에 누군가 있었다.


노래하던 아이, 아코디언을 쥐고 떨던 아이, 다정한 손을 뻗던 누군가, 이름조차 없던 소녀, 그리고 조용히 피리를 불던 나.


그들은 모두 내 안에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 얼굴은 그 모두가 합쳐져 다시 만들어진 ‘나’였다.


나는 아주 천천히, 거울 속 나에게 속삭였다.


“안녕, 처음 만나는 나.”


창밖으로 새가 날아올랐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병원 복도 너머, 누군가의 작은 휴대폰 스피커를 통해.


『너는 나였고, 나는 너였어… 이제 나는, 나야.』


나는 그 노래를 따라 속삭이며 눈을 감았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잔잔한 무언가가 차오르고 있었다. 두렵지 않았다. 이제 나는, 진짜로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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