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였고, 나는 너였다

나의 리듬으로 것은 다 는 것

by 월하연

한윤서. 병원 기록에 남겨진 내 이름. 아직 낯설었다. 간호사들이 나를 그렇게 불렀고, 의사도, 보호자도 없이 혼자 깨어난 내게 의료진은 조심스러운 호흡을 이어갔다.


“기억이 없다는 건 괜찮아요. 뇌에 이상은 없으니까. 그냥, 잠시 쉬고 싶었던 걸 수도 있어요.”


그 말은 이상할 만큼 위로가 되었다. 나는 과거가 없다는 사실이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가벼웠다. 비어 있는 칠판처럼, 무엇이든 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그러면서도 마음 한쪽은 아주 깊고 조용한 방처럼 채워져 있었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누군가 나와 함께 있었다는 느낌. 그 누군가는 나 자신이라는 확신.


며칠 뒤, 나는 퇴원했다. 병원 측에서는 특별한 가족이 없다는 점을 들어, 복지시설에서 생활하며 재활 치료를 받도록 연계해 주었다. 사회복지사라는 사람은 나를 보며 조용히 웃었다.


“윤서 씨, 사람들은 보통 시작할 기회를 기다리죠. 근데 당신은 그걸 이미 갖고 있어요. 이건 운이 좋은 거예요.”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끄덕였다. 그날부터, 나는 새로 주어진 공간에서 지내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먹고, 청소하고, 일과를 보내고, 잠을 잤다. 처음엔 그 모든 것이 서툴고 어색했다. 하지만 내 안엔 이상하게도 익숙한 감각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음악.


작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멜로디에 나는 자주 멈춰 섰다. 때로는 그것이 피아노였는지, 아코디언이었는지 헷갈릴 정도로 음색이 어렴풋했고, 내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도 확신이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 음악에 몸을 맡겼다. 발끝이 따라 움직였고, 손가락이 가늘게 흔들렸다. 내 안에서 무언가가 춤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 밤, 꿈을 꾸었다.


무대 위에 한 명의 소녀가 서 있었다. 노란 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눈을 감고 있었다. 조명이 켜지고, 마이크가 켜졌으며, 관객이 숨을 죽였다. 그리고 소녀는 노래를 불렀다.


『모든 이름은 나였고, 모든 슬픔은 나였어…』


내가 따라 불렀다. 무대 옆에서, 그림자 속에서. 그리고 무대는 점점 커졌다. 하나의 소녀가 두 명이 되었고, 세 명이 되었고, 그들이 하나둘 합창을 하기 시작했다.


『돌고 돌아 여기까지, 나는 나를 만나러 왔어…』


눈을 떴을 때, 나는 눈가가 젖어 있었다. 아침 햇살이 커튼 사이로 들어오고 있었고, 방 안은 여전히 조용했다. 그러나 내 마음속은 달랐다.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더 확실히 ‘나’로 존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갔다. 작은 마당에 앉아 차를 마시며 노트북을 열었다. 아무도 내게 쓰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문득 그런 기분이 들었다. 내 안에 있는 이야기들을 글로 써야 할 것 같은.


그리고 첫 문장을 썼다.


‘나는 여러 개의 이름으로 태어났고, 그 모두가 나였다.’


그 순간, 어디선가 새가 울었다. 마치 그것이 내 글을 응원하는 것처럼. 나는 웃었다. 이제부터는 내가 나의 이야기를 써 내려갈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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