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날에도
그날 이후, 나는 달라졌다. 겉모습은 똑같았지만, 내면의 진동이 달랐다. 아주 오래전부터 나를 울리던 그 불협화음은 사라졌고, 대신 조용한 울림이 자리 잡았다. 그러나 그것이 평탄하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새로운 나는 아직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했다.
사회복지센터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아이들과 그림을 그리는 시간, 노인들과 함께 찻잔을 닦는 시간, 무엇보다 조용한 공간에 함께 앉아 있어주는 시간들이 나를 조금씩 변화시켰다. 누군가와 함께 숨 쉬는 감각은 낯설면서도 귀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아이가 나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언니는 왜 맨날 웃어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웃고 있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소는 습관처럼 내 입가에 머물러 있었고, 그것이 얼마나 진심이었는지는 나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집에 돌아와 거울을 보았다. 웃고 있었다. 그러나 눈동자는 깊었다. 그 안엔 여전히 말하지 못한 것들이 숨어 있었다. 나는 입꼬리를 내리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괜찮아, 나. 웃지 않아도 돼.”
그날 밤, 다시 꿈을 꿨다. 이번엔 무대가 아니었다. 일상 속 장면들이 교차했다. 점심시간의 웃음, 우연한 눈맞춤, 차가운 공기를 함께 마셨던 순간들. 그 속에 나는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불안했다.
꿈속에서 나는 끝없이 물었다. 이게 진짜 삶일까? 이게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일까? 혹시 지금도 내가 꾸며낸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가슴이 답답했다. 그런 날이 있었다. 모든 자아를 끌어안고도, 다시금 미끄러지는 날들. 완전함은 도달점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자체가 끊임없는 균형이었다.
밖은 흐린 날씨였다. 작은 우산을 들고 집을 나섰다. 센터에 도착하니 아이들은 책을 읽고 있었고, 선생님은 조용히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내가 앉자마자, 아이 중 하나가 내 옆에 와 속삭였다.
“언니, 오늘은… 울어도 돼.”
나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 눈동자는 신기할 만큼 맑았다. 마치, 오래전 나처럼. 그러나 동시에 오래전 나와 전혀 다른 존재로 자라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아이.
나는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 나도 오늘은 조금 흔들려도 괜찮아.”
그날 밤, 나는 오랜만에 피아노 앞에 앉았다. 손끝이 낯설었지만, 악보 없이 한 음씩 눌렀다. 기억나지 않는 곡. 그러나 멜로디는 손이 먼저 기억했다.
『너는 나였고, 나는 너였어…』
그 노래가 흐르자, 마음속 흔들림이 서서히 멈췄다. 나는 내가 완벽하지 않다는 걸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 내게는 구원이 되었다.
완전하지 않아도, 나로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이 진짜 삶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