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잘 다녀왔냐, 맛있는 거 많이 먹었냐고들 물어보신다. 지난번 다녀온 뉴질랜드 여행은 도시보다는 자연을 보러 간 거라 맛있는 걸 찾아갈 여유가 없었다. 식사 때를 맞추기 어려운 걷기 여행이기도 했고, 먹을거리보다는 새로운 풍경에 시선이 꽂혀서 먹는 건 그저 대충이었다. 그래도 여행이란 게 항상 예상을 빗나가는 일이라서 생각지 않게 맛있는 음식을 먹기도 했고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일주일이 지나면서 된장국이 그리워졌다. 떠나는 날 비행기에서 먹은 강된장 비빔밥이 간절히 생각났다. 열이틀 만에 집으로 온 저녁에 쌀밥을 안쳤다. 두부도 없고 채소도 남기지 않고 갔으니 된장찌개를 끓일 수는 없었다. 미역을 물에 담갔다. 된장을 적당히 풀어 미역 된장국을 끓였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국물에 밥을 말아먹으니 바로 이 맛이야 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집으로 돌아왔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미역 된장국은 자주는 아니지만 언뜻 생각나면 먹는 국이다. 어쩌다 하루 이틀 속이 불편할 때는 미역 된장국을 심심하게 끓여서 반찬 없이 밥을 말아먹곤 한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속이 평정을 찾는다. 마음에 기운이 빠질 때도 그래서 몸이 맥을 못 출 때도 미역 된장국을 끓인다.
찬물에 미역을 불려 적당한 크기로 뜯어 놓은 것을 체에 거른 된장국물에 넣는다. 국물이 끓어오르면 약불에서 진중하게 끓여준다. 조용히 천천히 끓게 한다. 미역국은 두 번째 끓였을 때 맛이 더 난다. 어느 정도 달인다는 느낌으로 끓이는 게 좋다. 미역 본래의 맛은 조미료의 역할을 한다. 된장 외에 다른 것을 넣지 않아도 감칠맛이 난다. 미역 된장국의 맛은 부드럽고 연하다. 아픈 위장을 달래주고 지친 마음을 위안한다.
음식이란 뭘까? 음식에는 먹고사는 것 말고도 정서라는 게 있다. 의욕적으로 맛있는 음식을 찾을 때는 양념이 강하고 개성 넘치는 새로운 것이 좋다. 뭔가 쓸쓸해서 가라앉은 마음을 일으켜 주어야만 할 때는 자극 없이 조용하고 순한 것이 좋다.
나에게 미역 된장국은 그런 것이다. 괜찮아라며 손잡아 주는 것. 어서 와 이제 돌아왔구나 웃으며 자리를 내주는 것. 음식에 마음이 있다. (201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