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열등감

그렇게 엄마가 된다.

by 묘연

육아를 하면서 sns는 바깥을 나가지 못하는 엄마에겐 세상을 볼 수 있는 창문과 다름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아이에게 어떤 용품을 사주고 어떤 집에서 어떤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는지 훔쳐보는 재미는 아주 쏠쏠했다. 하지만 점점 sns에 빠져들수록 삼십 평생 가져보지 못했던 이상한 열등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항상 가진 것에 만족했고 가지지 않아도 행복할 줄 아는 나였다. 그리고 아무리 많이 가진다 해도 나의 삶이 크게 달라질 것 같지도 않았고 뭔가를 가지고 싶다고 생각해도 없어도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모든 게 깔끔하게 포기되기도 했었던 나였는데...


하지만 나의 자식으로 태어난 아이에게는 달랐다.

낡은 차 대신 좋은 새 차를 태워주고 싶고 sns에서 본 다른 부잣집 아이들처럼 너른 방 하나에 텐트도 쳐주고 싶고 해먹도 달아주고 싶고 아이가 가지고 싶어 하는 장난감들을 주머니 사정 헤아리지 않고 사주고 싶었다. 분유 하나도 제일 비싼 걸 먹이고 싶고 기저귀 하나도 제일 비싼 걸 사주고 싶었다. 해외여행을 밥 먹듯이 다니면서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비행기도 좋은 자리에 태워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이런 생각이 무방비 상태에 놓여있던 가난한 나를 저격했다. sns에 펼쳐진 세상들은 마치 ‘남들은 이렇게 많이 가지고 있는데 넌 가진 것 없이 정말 행복할 수 있겠어?’라며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아이를 낳기 전 난 한 번도 나 자신이 가난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부유한 환경에서 자라온 것도 아니고 돈을 많이 버는 직장을 다녔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나는 작은 학원에서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치며 소소하게 돈을 벌었다. 사실 돈을 벌러 다녔다기보다 나의 순수한 사랑과 마음을 의심하지 않는 아이들과 내가 좋아하는 그림을 함께 그리고 내가 어릴 때 꿈꿔왔던 작업들을 하나씩 하나씩 해보면서 그리고 아이들의 성장과정에 내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는 것에 큰 보람을 느꼈다. 그런 내게 부모님들은 무한한 신뢰를 보여주셨고 난 그것만으로 너무나도 행복하고 즐거웠다. 유명한 작가가 된다는 꿈을 이루거나 많은 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나는 누구보다 여유 있었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번 돈으로 월세를 내는 공동 작업실을 만들어 내가 하고 싶은 그림들을 마음껏 그리면서 꿈에 한 발자국씩 다가갔고 비행기를 타고 멀리 가지는 못했지만 가끔 고속버스나 기차를 타고 싸구려 모텔에서 잠을 잤지만 세상 자유로운 여행의 기분을 만끽하기도 했으며 시간이 나면 영화관이며 서점에 가서 아낌없이 돈을 쓰기도 했다. 그렇게 채워진 나는 너무나도 가득 차올랐다. 명품을 사진 못했지만 길거리에 파는 이쁜 옷도 사고 신발도 샀다. 친구들과 어울려 한 번씩 밥과 커피도 샀고 화방에 가서 쓸 것도 아니면서 이쁜 색의 물감을 사 오곤 했다. 한번씩 아이들과 맛있는 것도 사 먹었고 집에 가기 전 차비가 없다는 애들에겐 차비도 자주 줬다. 그렇게 마음을 나눈 아이들은 내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함께 울어주었고 결혼식 때 감동의 편지들을 써와서는 버진로드를 걷는 나를 보며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그런 마음들이 모여 호화스러운 호텔에서 하는 결혼식보다 더 호화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한 번도 내가 가난하다거나 돈이 없어 열등감을 느껴보지 못했다. 오히려 그때는 마음이 너무나도 여유로웠고 차고 넘쳤다. 그래서 그땐 유니세프에 기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지금도 그 마음처럼 살아야 하는 것을 아이를 낳고 무엇이 날 이렇게 만든 것일까.

남들보다 많이 가지는 것보다 나만 가질 수 있는 걸 가지는 게 더 낫다는 것을

남들보다 더 가지는 것보다 다른 걸 가지는 게 더 행복하다는 것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 가지고 있는 것보다 낫다는 것을

많이 가진 사람보다 많이 베풀 수 있는 사람이 훨씬 부자라는 것을

비어있는 주머니와 홀가분한 가방이 더 멀리 갈 수 있게 한다는 것을

잊어버렸다.


어쩜 내가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sns를 더 이상 보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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