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쯤 게을러도 될까

그렇게 엄마가 된다.

by 묘연

아이를 낳고 나서 나의 생활은 크게 바뀌었다.
문장에 다른 문장을 끼워 넣듯 내 삶의 옳은 문장은 아이가 되었고 나의 삶은 곳곳에 끼워 넣기 바빴다.
그 가운데 아침 시간은 아이가 서너 시간씩 잠을 자는 시간이라 온전히 내 시간으로 만들어 쓰기 최적의 시간이었고 남편이 일곱 시 전에 출근하고 나면 느지막한 오전이 되기까지 나만을 위해 집중할 수 있는 그런 꿀 같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감기 기운으로 인해 그 황금 타임을 늦잠으로 날려버리고는 누군가에게 소중한 물건을 빼앗긴 사람처럼 멍하니 소파에 앉았다.
아직 하루의 절반 이상이 남은 시간이지만 뭔가 오늘 하루는 다 망쳐버린 것만 같은 기분.
아직 그림을 그리지 않은 도화지에 시커먼 먹이 한 방울 떨어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사실 늦잠을 잔다고 해서 딱히 안될 것도 없는 생활.
그래 하루쯤 늦잠자도 괜찮아.
하루쯤 아침을 먹지 않는다고 해서 아이에게 줄 젖이 모자란다거나 골다공증이 생기진 않을 거야.
하루쯤 샤워를 하지 않아도 내게 냄새난다고 할 사람은 없어.
하루쯤 글을 적지 않는다고 해서 내 글을 기다릴 사람은 없어.
하루쯤 그림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여태 고민해온 것들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지.
오늘 하루쯤은 게을러도 돼. 나는 아픈 사람이니까.
하루쯤 마루를 닦지 않아도 되고 설거지하지 않아도, 빨래를 하지 않아도 돼.
하루쯤 우는 아이를 방치해도 되고
하루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침대에 누워있어도 돼.
이런 생각으로 멍 때리며 다시 침대에 누웠는데 언제 깼는지 눈을 말똥히 뜨고 나만 바라보는 아이를 보며...

정말 하루쯤 이래도 될까 싶었다.

.

게으르.jpg


매거진의 이전글잠의 강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