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욕심

by 묘연

“어머니 여기 좀 보고 가세요~ 어머! 너 몇 살이니?”

우유와 아이가 며칠 전부터 먹고 싶다던 초코픽 과자를 사려고 슈퍼를 가는 길. 마치 아는 사람처럼 눈을 반달처럼 예쁘게 뜬 여자가 우리 쪽으로 걸어와 말을 걸었다. 아이들에게 바람개비 하나씩을 쥐여주더니 나에겐 학습지 홍보가 담긴 책자를 하나 건넨다.

“어머니 이것 좀 읽어보세요. 아이들이 재밌게 할 수 있는 한글 공부 한번 시켜보세요.”

학습지다.

학습지라니... 어릴 때 매일 밀려서 책상 밑에 숨겨두고 있다가 선생님이 오시기 전날 점검하는 엄마에게 엄청 맞아가며 밤새 풀던 그 학습지다.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살아남은 이 학습지는 바퀴벌레처럼 생명력이 길었다.

‘학습지’라는 말만 들어도 두드러기가 날 것 같았고 조금 더 머물렀다가는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들어야 할 것 같아서 일단 그 자리를 피했다. 슈퍼에 들어가 아이가 그토록 먹고 싶어 하던 초코픽을 샀다. 이 초코픽도 한 30년 가까이 살아남은 과자다. 사실 내가 어릴 때 가장 좋아했던 과자였다. 이상하게 오늘따라 나의 어린 시절이 자꾸 떠오른다.


집으로 돌아와 아이가 먹다 남긴 초코픽을 오도 오독 씹으면서 가방에 무심코 접어 넣은 학습지 홍보 책자를 열었다. 안 받았어도 되는 거였고 안 보고 버렸어도 되는 거였지만 그러지 못했다.

우리 아이는 이제 다섯 살. 사실 어떤 교육을 시키기엔 아직 이른 게 아닌가 싶으면서도 이미 영어와 중국어를 시작했다던 남편 직장동료의 아이가 떠올랐다. 우리 아들과 같은 해 같은 달에 태어난 아이인데 조기교육을 시킨다 어쩐다 하면서 늘 우리의 교육관을 흔들던 인물이었다.


남편과 나는 종교와 정치 성향은 달라도 교육관 하나만큼은 같은데 그건 바로 ‘공부를 시키지 않겠다.’는 의견이었다. 물론 아이가 공부에 남다른 흥미와 재능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오히려 공부 말고 다른 쪽에 재능이 있다면 그것을 시키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기에 조기교육이나 공부는 본인이 하기 전까지 억지로 시키지 말자고 했다.

나도 그 의견에 동의했다. 내 아이의 어린 시절은 성공하는 어른이 되기 위한 참고 견뎌야 하는 공부로 얼룩진 괴로운 시간이 아닌 즐겁고 소중하고 예쁜 시절로 기억하게 하고 싶었다.

‘넌 참 어릴 때 똑똑했어. 5살에 한글을 쓰고 100까지 숫자를 읽었다니까~.’라는 말보다

‘넌 참 어릴 때 공룡을 좋아했어. 티라노사우루스를 좋아해서 사진을 찍는다고 하면 맨날 티라노의 짧은 팔처럼 손등을 가슴에 붙이고 공룡 소리를 냈다니까.’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더군다나 한글이나 숫자 따위 몇 개월, 몇 년 늦게 안다고 해서 사는데 큰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유치원이나 학교 가면 다 알아서 가르쳐 줄 텐데 굳이 부모까지 동참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아이가 학교에서 빨간 비가 내리는 시험지를 받아온다 해도 그 비 내리는 속상함을 공유하는 엄마가 되고 싶지 비 내리는 시험지를 비교 분석하는 엄마는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생각들은 어디 가고 팔랑거리는 얇은 학습지 홍보지 한 장에 흔들리는 얄팍한 교육관에 웃음이 났다.


그런데 또 그걸 그렇다고 말하고 넘겨버리기엔 흔들리는 마음이 조금 심각했다.

‘우리 애만 뒤처지는 것 아니겠지?’ 하는 불길한 생각과 요즘 글자와 숫자에 은근 관심 보이는 아이에게 조금 더 신경 써주면 정말 공부를 잘하게 되는 건 아닌지 하는 일말의 기대감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그 얇은 홍보지 한 장은 팔랑거리며 내 마음을 크게 부채질하고 있었다.


시켜야 하나 말아야 하나 생각을 하면서 초코픽을 씹어먹고 있는데 아이가 뛰어가면서 과자 통을 걷어차는 바람에 아슬아슬하게 세워져 있던 과자 통이 힘없이 나동그라졌다. 나어릴 땐 초코픽에 초코와 과자만 들어있었는데 요즘 초코픽에는 하얀 데코레이션용 설탕가루가 같이 들어있어서 과자를 초코에 먼저 찍은 다음 그 하얀 가루를 찍어 더 예쁘고 달콤하게 먹을 수 있다. 30년 살아남은 과자의 혁신적인 변화였다. 하지만 이 가루를 치워야 하니 보통 성가신 게 아니었다.

아이는 내 눈치를 슬금 보더니 앉아서 그 가루를 작은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주워 먹기 시작했고 치워야 할 생각에 갑자기 신경질이 난 나는 그 상황을 애써 무시하며 학습지 홍보지를 다시 처음부터 읽어보았지만 글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혼날까 봐 내 눈치를 보며 가루를 하나씩 주워 먹는 아이를 보니 엄마 몰래 밀린 학습지를 숨겨놓고 조마조마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홍보지를 거칠게 접어서 재활용 통에 갖다 버리고는 화를 내는 대신 아들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고는 괜찮다고 엄마가 치우겠다고 예쁘게 말했다.


아이가 발달이 늦거나 무언가가 부족하게 되면 부모는 괜한 걱정과 조바심이 난다.

우리 아들 녀석은 지금 돌이켜보니 발달이 느린 건 아니었지만 순간순간 그럴 때가 있었다. 6개월이 다 되도록 뒤집기를 못했을 때, 두 돌이 지나도록 "엄마, 아빠"를 하지 못했을 때, 세 돌이 다 되도록 기저귀를 차고 있을 때도 영유아 검진에서 사회성이 너무 부족한 아이로 나왔을 때도 걱정을 했다.

하지만 40개월이 조금 넘은 지금 아이는 잘 뛰어다니고 말도 잘하고 기저귀도 뗐고 사회성도 아이의 성향이나 성격으로 치부해버릴 만큼 좋아졌다.

결국 완전한 인간으로 완성되는 데 20년이 걸린다니 뭐 때문에 이렇게 조바심을 내고 걱정을 하고 있는 걸까. 이 예쁘고 귀여운 아이에게 뭘 더 바랄까? 이미 엄마가 무얼 싫어하는지 어떨 때 화를 내는지 다 알고 있는 이 똑똑한 녀석에게 내가 지금 뭘 바라고 있는 걸까?

어쩌면 똑똑하지 못했던 나의 부족함을 아이를 통해 채우려는 욕심은 아닌지.

아이는 자기의 속도대로 성장하는데 왜 옆에서 이렇게 재촉하고 채근하고 욕심내고 조바심 내고 있는지.

그런 마음이 괜히 우릴 불행하게 만드는 건 아닌지...

생각이 거기쯤 도달하자 옆에서 아직도 가루를 핥아먹고 있는 아이가 그냥 귀여워졌다.


그래 아들아~

똑똑하지 않아도 괜찮아.

지금보다 더 나아지지 않아도 괜찮아.

그저 옆에서 공룡 소리를 내는 네가 엄마는 너무 좋다.

근데 초코픽 사달라더니 왜 넌 안 먹어?

어쩌면 아이가 수없이 나열한 과자 중에 하나일 뿐인데 내가 좋아하는 과자라서 예민하게 집어 들은 건 아닐까.

하얀 가루는 모두 쏟아져 버렸고 과자는 딱 하나 남아있었다. 나는 남은 과자를 하나 들어 초코에 딱 찍었다. 그리고 미련 없이 내 입에 쏙 넣었다. 야무지게 오독오독 씹어 먹으면서 일곱 살 무렵 엄마를 졸라 초코픽을 먹던 어린이로 돌아갔다.

'난 그동안 얼마나 나아지고 얼마나 자란 걸까. '

어쩌면 학습지는 아들이 아니라 내가 해야 할 것 같았다.


더나은니가되지않아도괜찮아.jpg 더 나은 네가 되지 않아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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