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예방 접종을 위해 병원에 왔다.
예진표를 작성하며 보호자 란에 내 이름 석자 커다랗게 꾹꾹 눌러쓴다.
너무 힘껏 썼는지 아랫장에 삶의 무게에 눌린 내 이름이 남는다.
다른 엄마가 그 위에 또 자기의 이름 석자를 꾹꾹 눌러쓴다.
그렇게 엄마들은 다른 엄마들이 남긴 삶의 무게의 흔적 위에 다시 까맣고 굵은 글씨로 자기 이름을 꾹꾹 눌러 적는다.
바르게 쓴 이름 옆에 사인은 이상하게 갈겨도 처음부터 우린 아이의 보호자였기에 의심의 여지를 두지 않는다.
나는 보호자다.
아이는 말할 것도 없고 여태 나를 철통같이 보호해주던 엄마도 이젠 내가 보호해야 할 대상이 되었고 늘 의지의 대상이었던 남편도 돈 벌어오는 일이 아닌 다음에는 다 내가 챙겨야 할 대상이 되어버렸다.
어느 순간 온통 세상엔 내가 보호해야만, 내가 챙겨야만 할 것들로 가득했다.
마치 무거운 껍질을 지고 사는 달팽이 같았다.
조금은 무겁고 조금은 거추장스럽고 조금은 버거워서 빨리 걸을 수 없었지만
그래도 그 속에서 즐거웠고 안락했고 행복했기에 괜찮았다.
가족들은 나에게 무척 의지했고 내가 없으면 안 되는 것처럼 살았다.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하루 세끼 다른 메뉴로 차려내기 너무 힘들어 사본 시판 이유식을 맛이 없어 돌처럼 씹어 삼키는 아이 볼 때.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늘 누군가와 상의가 필요한 엄마를 볼 때.
용돈이 없어 굶고 다니는 어린 남동생을 볼 때.
주말에 하루쯤 외출을 다녀오면 집에서 혼자 라면을 끓여먹고 있는 남편을 볼 때.
특히 그랬다.
사실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정말 별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조금 애쓰면 다 해결될 일들... 오히려 모른 척하는 것이 더 힘들 수도 있다.
까짓 거 조금 일찍 일어나면 되는 일이었고 까짓 거 조금 부지런하면 다 할 수 있는 일들.
하지만 그까짓 것들이 티끌모아 태산이 되어 어느새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쌓여있었다.
만성피로는 이제 피로를 느끼지 못할 만큼 만성을 넘어 일상이 되었고
힘들다고 말하기엔 그 말을 너무 많이 해서 정말 힘든지도 의문이 들 정도가 되어서야
몸이 망가졌다는 신호가 직접적으로 나타났다.
난소에 이상이 생겨 한 달 동안 생리를 세 번이나 해서 눈 밑엔 다크 서클이 거멓게 내려와 며칠째 화장을 지우지 않고 잔 다음날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허리와 배가 끊어질 듯이 아팠고 기분은 고장 난 기계처럼 제어할 수 없이 오락가락하고 있었다.(어쩌면 아이가 이런 날 무서워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리 넘쳐흘러도 쉽게 나약함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오늘은 더군다나 아이의 예방접종을 위해 병원에 왔고 이곳에서 내가 아프다고 말해봤자 누구 하나 너의 무거운 등껍질을 내려놓으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프다고 칭얼거려도 이상하지 않을 병원이었지만 나는 환자 일 수 없었고 아이는 보호자가 될 수 없었다. 아직 연필도 못 쥐는 어린아이에게 보호자 란을 들이밀며 이름을 써보라고 할 순 없는 거였다.
그렇게 아무도 내 아픔을 덜어가지는 못했다.
내가 아프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프다고 해서 아이가 시판 이유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것도 엄마가 중요한 일을 나와 상의하지 않는 것도 남편이 혼자 라면을 끓여먹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서러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난 이 고통에 이미 중독되어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약에 중독된 것처럼 나는 그들과의 행복에 중독되어 아파도 힘들어도 내려놓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일들은 사실 까짓 거 별것 아닌 그런 일들이니까.
그저 틈 날 때마다 괴로운 나를 달래면서 바빠서 정리하지 못한 길고 긴 손톱을 씹었을 뿐이었다.
그러다 아무렇게나 뜯겨나간 손톱이 예기치 않게 내 약한 마음을 긁어대면, 예전 같았으면 가스러진 손톱을 보며 눈물이라도 흘렸을 텐데 이젠 그러지 않았다.
크고 강한 손톱깎기를 꺼내 까슬까슬한 손톱을 가차 없이 매끈하게 깎아버렸다.
그리고 아이가 예방주사를 맞는 동안 나는 짧고 매끈한 손톱을 가진 손으로 아이의 팔을 꼭 잡아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