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처음엔 뱃속에서 열 달 키운 정으로 간신히 예뻤고
서른 시간이 넘는 진통 속에서 낳은 아이 었기에 성취감이 컸을지도 모른다.
내 몸의 한 조각 같아서 그랬을지도 모르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면서 품에서 세상 편하게 잠들어 있는 여린 아이를 보면서 꼭 예뻐해 줘야만 하는 어떤 의무감 같은 것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세게 안으면 부서질 것 만 같은 작은 아이, 온몸이 여리디 연한 속살로 쌓인 것 같은 연한 풀잎 같은 한 아이가 차가운 세상이 무섭고 낯설어 목청껏 울어댔다.
아이는 최선을 다해 울었지만 그 목소리마저도 연약하게 들렸다.
그런 아이에게 나는 따듯하고 든든한 존재가 되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야.”
따듯한 목소리로 아이를 덮어주고 따듯한 가슴과 팔로 아이를 수도 없이 안았다.
그렇게 아이는 나를 통해 세상에 적응하고 난 아이에게 적응해갔다.
서로의 삶에 스며들어가면서 서로에게 길들여졌고 맞춰졌다.
그러는 사이에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찐득하고 진하고 강한 감정들이 우리 사이에 엉겨 붙었다.
아이가 숨 쉬는 모습만 보아도 좋았고 어떤 날은 아이가 너무 예뻐서 심장이 간질거렸다.
안 그래도 예뻐서 미칠 것 같은데 이 아이는 작고 연한 입으로 밥도 잘 먹고 우유도 잘 먹고 심지어 예쁜 똥도 싸고 예쁜 색의 오줌도 누었다.
그리고 날 보며 웃었고 가끔은 나보고 “엄마~”하면서 따듯하게 불러주었다.
그럴 때면 기뻐서 눈물이 날 때도 있었다.
물론 잘 먹지 않을 때도 있고 아플 때도 있고 사고를 칠 때도 있었지만 그런 힘든 시간을 지나 언제나 자는 모습을 보면 아직 길들여지지 않은 깨끗하고 순수한 영혼이 내 등을 토닥였다.
너무 예뻤다. 이렇게 예쁜 애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 같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말...
눈에 넣기에 모자라 그렇게 예쁜 모습을 기억하기 위해 64기가가 넘는 핸드폰을 아이의 사진과 동영상으로 가득 채우고 sns에 아이 사진을 도배했다.
그것도 모자라 스튜디오에서 성장앨범을 계약하고는 아이의 중요한 기념일마다 사진을 찍어주었다.
지난 주말은 그렇게 다가오는 우리 아이 첫 생일을 위해 사진을 찍는 날이었다.
수 백장의 사진을 받아서 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그렇게 예쁜 아가는 아니라는 것을. (특히 남편은 아이를 모델시켜야 한다며 커트라인 없는 팔불출 아들바보였다.)
“여보, 성현이 그렇게 예쁜 애는 아니었네,.. 우리 눈에만 예뻐 보이는 거겠지?”
남편과 나는 아주 냉정하고 객관적인 평가 뒤에 서로를 보며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 아이는 그냥 우리 둘을 반반 닮았을 뿐이었기에.
우리 아이가 세상 예쁘게 보였던 이유는
나와 남편이 사랑한 남편과 나를 반반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작은 얼굴에서 서로의 얼굴을 보고, 자신의 모습을 보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 수많은 사람 중에 나를 엄마로 선택했고 믿을 수 없는 확률 속에 우연적인 만남이 소중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세상 외롭게 살아가던 나에게 떨어지지 않는 껌딱지의 존재가 되어 더 이상 외롭지 않게 해 주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의심 없이 사랑할 수 있게 해 주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이 아이는 정말 눈코입이 예쁜 아이일 수도 있다.
그렇게 아이가 예쁜 이유를 나열하자면 수백 가지가 넘을 테지만
아이는 나를 의심 없이 ‘엄마’라고 부르면서 이유 없이 나를 사랑하고 있기에
상처 받을 생각 따위 하지 않고 마음껏 예뻐하고 사랑한다.
그리고 사랑한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한 이 마음이 날이 갈수록 진해져만 간다.
매일매일 그 농도의 최대치를 경신한다.
아마 진짜 그런 마음이 눈에 보이는 어떤 것으로 존재한다면 아마도 그건 씻어도 씻어도 씻기지 않는 찐득 거리는 접착제 같고 물에 풀어도 풀어도 연해질 줄 모르는 잉크 같을 것이다.
이렇게 진한 사랑을 하며 하루하루, 한 살 한 살 쌓아 나가는 마지막엔 아이가 얼마나 더 예쁘고 사랑스러워질까..
그렇게 세월이 켜켜이 쌓이고 우리 사이에 찐득한 사랑이 더 짙어지면
그땐 무뎌질까? 아니면 사랑의 농도는 한없이 짙어져 감당할 수 없게 되는 걸까?
시간이 지나면 알겠지만 문득 그런 게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