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장난감 자동차를 집안에서 신나게 탄다. 코로나 때문에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집에서만 노는 아이들에게 이젠 ‘조용히 해라, 뛰지 말아라.’ 하지도 못하면서 아랫집이 신경이 쓰여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게다가 아이들이 먹고 난 밥상을 치우면서 아이가 흘려놓은 밥풀을 밟을까 노심초사하고 혹여나 아이들이 와서 이 난장판을 밟을까 싶어 재빠르게 닦으면서 설거지하기 전에 아이들 약을 잊지 말고 챙겨주자고 마음속으로 되뇌느라 정신이 나가 있는데 아이는 무심코 한마디 한다.
“엄마, 나 저 멀리 갈 거야.”
“그래. 그래그래. 근데 좀 조용히 타. ”
아이의 말을 못 들은 척 하기는 좀 그러니까 영혼 없는 말을 해 버린다.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다. 나는 원래 생겨 먹은 게 허술하고 허둥대고 잘 잊어버린다. 내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하는 내가 두 아이를 챙겨주려니 여간 바쁜 게 아니다. 그러다 보니 집안일을 하다 보면 아침에 돌려놓은 빨래를 잊고 있다가 저녁에 널거나 아이들 약을 빠뜨리거나 핸드폰으로 장을 보고 난 다음 결재도 하지 않고 기다리는 일들이 많아 무슨 일을 할 때마다 다음 해야 할 일이 뭔지 생각하고 잊지 않으려고 하다 보니 거의 정신이 반쯤 나가 있다. 그 와중에 둘째는 13개월이 지나 요즘 자기 주도 식사를 하기 시작했는데 말이 자기 주도 식사지 밥풀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꼼꼼하게 붙이고 앉아있다. 의자는 말할 것도 없고 식탁과 식탁 다리 그리고 바닥... 내 옷에 옮겨 묻지 않으면 다행이다. 게다가 큰 녀석은 밥을 잘 먹지 않아 먹여주는 일이 많은데 그렇게 두 아이의 식사를 도와주고 나면 정작 나는 밥을 한 그릇을 먹었는지 두 그릇을 먹었는지 모를 지경이다. 방금 먹은 밥이 체할 것만 같다.
근데 뭐라고? 멀리 간다고?
갑자기 그 말이 내 가슴을 퉁 치고 지나간다.
‘멀리 간다고? 어딜?’
아직까지 내 품에서 하루 종일 먹고 자는 녀석이 멀리 갈 거라니.
갑자기 예상치 못하게 마음이 시큰거린다.
첫째 아이를 낳고 사정상 조리원을 가지 못하고 집에서 조리를 하면서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연약한 아이 옆에 누워 엄청난 부담감에 눈물 흘리던 때가 있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너무 답답했고 감당할 수 없는 큰일을 저지른 것만 같아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다.
한 아이가 완성되는데 20년이 걸리고 육아는 20년을 바라보고 해야 한다는 오은영 박사님의 말을 들으면 ‘헐... 20년? 20년 동안 나 이 짓 해야 해???’라고 생각했다. 해야 할 일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은데 대부분의 시간이 육아로 소비되는 나의 인생이 가끔은 불행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생각보다 아이는 빠르게 성장하고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첫 출산이 어땠냐고 물어보면 붙잡고 앉아 하루 종일 어땠는지 이야기해줄 수 있을 만큼 기억은 생생한데 아이는 어느덧 커서 5살이나 되었다.
모든 부모가 그렇듯 나 역시 아이가 조금 더 똑똑했으면 좋겠고, 조금 더 키가 컸으면 좋겠고, 조금 더 힘이 셌으면 좋겠고, 조금 더 건강했으면 좋겠고, 조금 더 큰 꿈을 꿨으면 좋겠고, 조금 더 많이 성장하길 바랐다. 나의 마음이 보태져 아이가 더 멀리 그리고 높이 뛸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바람대로 아이는 빠르게 성장했고 스스로 걷고 스스로 말을 하고 스스로 화장실을 가고 스스로 옷을 입고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했고 결정하기 시작했다. 아직은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이 더 많지만 지금대로라면 분명히 아이는 훌쩍 자라 지금의 나보다 훨씬 더 나은 능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나보다 더 튼튼한 다리를 가지고, 나보다 더 높은 꿈을 가지고, 나보다 더 넓은 혜안을 가지게 되면 나에게서 멀리 갈 수도 있다. 아주 먼 얘기처럼 느껴지는 그 날이... 뜬금없는 아이의 말 한마디로 내게 훅 와 닿아 버린 것이다. 언젠가 이 작은 아이가 크게 자라 아주 멀리 도약할 수 있을 때, 혹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아주 멀리 떠나 버린다면 아쉽고 섭섭한 마음을 어찌 감당할 수 있을까.
사실은 이렇게 함께 살을 맞대고 함께 할 수 있는 이 시간이 얼마나 짧고 달콤한 순간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아이가 커가는 모습들을 놓치고 싶지가 않아서 핸드폰이 꽉 차도록 사진을 찍어대고 이렇게 글을 적어놓는 것을 보면 나는 아이를 키우는 기쁨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가끔씩 이런 생각을 잊고 익숙한 행복 속에서 투정을 부리며 불행하다고 여기는 나는 얼마나 이 행복에 무뎌진 걸까.
"엄마, 나 저 멀리 갈 거야."
"그래. 힘차게 가봐. 엄마는 태양처럼 따듯하게 늘 너를 비추고 있을 테니까."
'뜻하지 않게 멀리 가더라도 우리 지금 함께 한 시간이 닳지 않는 배터리처럼 삶의 원동력이 되어주기를...'
아이가 잡고 있는 치맛자락이 점점 길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