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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묘연 Oct 16. 2020

지극히 사소한 이야기

에필로그

                                                                                                                                            

 하루의 마지막 미션인 아이들 재우기를 완수하고 찐득해진 몸을 샤워기로 씻어 내린다. 샤워기 소리인지 빗소리인지 모를 소리를 들으며 찌든 몸과 마음을 씻어내면 비로소 한나절 아이들만 바라보느라 바삐 돌아가던 눈동자가 멈추고 내 몸을 바라본다. 그리고 나면 잠시 잊고 있었던 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미치도록 하고 싶어진다.


‘오늘 오랜만에 머리를 빗었는데 열심히 빗고 나니 발밑에 상한 머리카락들이 목이 베인 죄수들처럼 짧게 짧게 끊어져서 떨어져 있지 뭐야. 그 꼴을 보니 내가 너무 나를 챙기지 못한 것 같아서 미안해졌어. 그래서 내일은 머리를 자를까 해. 근데 성현이가 내 긴 머리가 예쁘다고 말했는데 함부로 잘라도 되려나 몰라.’


뭐 이런 얘기들.

하나 마나, 들으나 마나 한 얘기들.

그렇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들.

젖은 머리카락과 어깨 사이 수건을 받쳐 놓고는 경쾌하게 컴퓨터를 켜서 오늘 써야 할 글의 주제를 정하고 주제와 상관없지만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주제에 끼워 맞추어 본다.

머리가 마를 동안 이 엄청난 수다를 펼쳐 놓고 첨가 할 문장은 티안나게 이어붙이기를 하고 상관없는 문장은 과감하게 잘라버린다.

그렇게 마치 처음부터 주제를 위한 글쓰기였던 것처럼 어색한 건 고치고, 첨가할 것은 덧붙여 그럴싸하게 만들어 본다.

결국 집에 갇혀 아무하고도 이야기하지 못하는 한 아줌마의 처절한 수다가 오랫동안 매달려 있다 끊어진 상한 머리칼 처럼 하얀 종이에 툭툭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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