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하루의 마지막 미션인 아이들 재우기를 완수하고 찐득해진 몸을 샤워기로 씻어 내린다. 샤워기 소리인지 빗소리인지 모를 소리를 들으며 찌든 몸과 마음을 씻어내면 비로소 한나절 아이들만 바라보느라 바삐 돌아가던 눈동자가 멈추고 내 몸을 바라본다. 그리고 나면 잠시 잊고 있었던 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미치도록 하고 싶어진다.
‘오늘 오랜만에 머리를 빗었는데 열심히 빗고 나니 발밑에 상한 머리카락들이 목이 베인 죄수들처럼 짧게 짧게 끊어져서 떨어져 있지 뭐야. 그 꼴을 보니 내가 너무 나를 챙기지 못한 것 같아서 미안해졌어. 그래서 내일은 머리를 자를까 해. 근데 성현이가 내 긴 머리가 예쁘다고 말했는데 함부로 잘라도 되려나 몰라.’
뭐 이런 얘기들.
하나 마나, 들으나 마나 한 얘기들.
그렇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들.
젖은 머리카락과 어깨 사이 수건을 받쳐 놓고는 경쾌하게 컴퓨터를 켜서 오늘 써야 할 글의 주제를 정하고 주제와 상관없지만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주제에 끼워 맞추어 본다.
머리가 마를 동안 이 엄청난 수다를 펼쳐 놓고 첨가 할 문장은 티안나게 이어붙이기를 하고 상관없는 문장은 과감하게 잘라버린다.
그렇게 마치 처음부터 주제를 위한 글쓰기였던 것처럼 어색한 건 고치고, 첨가할 것은 덧붙여 그럴싸하게 만들어 본다.
결국 집에 갇혀 아무하고도 이야기하지 못하는 한 아줌마의 처절한 수다가 오랫동안 매달려 있다 끊어진 상한 머리칼 처럼 하얀 종이에 툭툭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