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by 묘연

며칠 전 남편의 큰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코로나 때문에 나와 아이들은 집에 남았고 남편은 안동으로 가서 하룻밤을 지내고 돌아왔다.

세상에 영생할 사람은 없으니 죽음이란 게 그렇게 지독하고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지만 내겐 인간의 죽음이란 늘 슬프고 맵고 아픈 것이다. 그가 누구였는지 간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극악무도한 범죄자조차도 마음 한구석이 아려오는 건 우린 이 세상에 태어난 같은 인간이고 나도 언젠가는 사라지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데 하물며 남편의 큰아버지라니... 사연이 있어 나는 한 번도 뵙지 못했지만 그렇게 가까운 핏줄의 죽음은 내게 작지 않은 바람이 불었다.

바람이 불면 내 마음은 얇디얇아서 심하게 펄럭거리는 경향이 있지만 남편의 마음은 두꺼운 판지처럼 흔들리지 않는다. 똑같은 사건을 두고도 남편은 담담했고 그의 죽음을 슬퍼하고 힘들어하기보다 남은 사람들의 삶을 생각하는 편이었다.

그런 남편이 장례식을 다녀와하는 담담하게 꺼낸다는 말이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만약 죽을병에 걸리게 되면 연명 치료하지 말고 편안하게 그냥 보내달라고 하시더라. 그 말을 온 식구들 앞에서 하신 건 꼭 그래 달라는 뜻인 것 같았어. 나도 그래. 내 대소변을 누군가가 다 받아줘야 하고 아무런 생각도 느낌도 없이 살아간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 나중에 운이 나빠 그렇게 된다면 내 뜻에 따라줘"였다.

안락사에 대한 이야기는 중고등학교 때부터 무수히 토론해온 주제라 사실 그런 말들이 크게 와 닿지는 않았고 나 또한 그런 상태가 되면 그렇게 해달라고 간단히 대답을 했다. 하지만 막상 그날을 상상해 보니 나는 절대 전혀 그렇게 해줄 마음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약 사랑하는 사람이 병상에 사경을 헤매고 있다면 어느 누가 쉽게 산소 호흡기를 제거할 수 있을까?

이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그저 이 땅에 같이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우린 서로에게 큰 의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발끝에서부터 뜨거운 것이 눈까지 올라와서 쏟아질 지경이었다.


"여보, 나는 그럴 수 없을 것 같아. 너 절대 그냥 못 보낼 것 같아."


그렇게 울음을 간신히 참으면서 대답했는데 남편은 너무 놀라면서 왜냐고 물었다.


"존재만으로도 선물이잖아."


오글거리는 멘트를 했지만 마음은 전혀 오글거리지 않았다.

그날 밤 내내 나는 깊은 곳에서부터 차올라 찰랑거리는 눈물을 참느라 혼이 났다.

언젠가는 서로를 놓아주고 보내주어야 하는 날이 올 거고 누가 먼저 떠나든 그런 순간이 온다고 생각하니 요 몇 년을 서로의 존재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날 저녁 아이들을 먹이고 씻기고 하면서 이 지겨운 일상이 슬금슬금 행복하게 느껴졌고 매일 하는 잔소리를 하면서도 마음이 싫지 않았다.

"여보, 환풍기 좀 꺼. 이 환풍기 전기세 얼마나 잡아먹는지 알아?!"

신경질적이게 이야기했지만 그래야지 차오른 눈물이 진정될 것 같았다.

남편도 그 마음을 알았는지 잔소리에 고분고분 환풍기를 껐다.

아이를 씻기고 재우고 하는 일들이 그날따라 힘들지 않았다. 아이의 몸에 물기를 닦으면서 보드랍고 예쁜 살결에 입을 맞추었다. 이렇게 서로 입을 맞추고 안아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커다란 행복인지 뼈저리게 느껴졌다.

우린 그날 밤 애들을 재우고 마치 그날이 마지막인 것처럼 사랑을 나눴다.

마지막인 것 같은 마음이 얼마나 우리를 뜨겁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우리가 한 수백 번째의 섹스였고 특별할 것 없었지만 서로 사랑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생각에 불을 끄고 서로를 열심히 느꼈다. 따듯한 손과 입 그리고 가슬 거리는 턱수염이 생생하게 느껴졌고 서로의 몸속에서 꿈틀거리는 에너지가 생생하게 전해져 서로의 존재가 강하게 느껴졌다. 우리 서로 건강하게 살아 서로를 보듬어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좋아서 하마터면 정신을 잃을 뻔했다.



사랑합니다.(밉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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