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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묘연 Mar 27. 2023

우리의 컨디션

D-39

 "오늘도 엄마랑 자고 싶어."

하영이는 오늘도 엄마바라기. 출산 전까지 남편의 따듯한 품에서 자고 싶은 나의 마음은 고이 접어 베개밑에 넣어놓고 아이의 요청에 일찌감치 잠자리에 든다. 

잠깐 누웠다가 아이를 재우고 씻어야지 하는 결심은 온데간데없고 너무나 피곤하고 지친 나머지 아이보다 일찍 잠이 들어 결국 아이가 엄마를 재운 꼴이 되어버린다. 

다섯 살 하영은 그럴 때마다 내게 이불을 고쳐 덮어준다거나 아픈 허리를 토닥여 준다든지...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나는 잠결에 느꼈던 그 손길이 너무 좋아서 이렇게 깨고 나면 아이의 손을 슬쩍 잡아 본다. 이불밖으로 나온 손이 차가우면 그 작고 차가운 손을 내 목에 갖다 대며 따듯하게 데우면서 아이의 사랑에 보답한다. 작디작은 손에서 나오는 엄마에 대한 커다란 사랑에 비해 줄 수 있는 게 체온 밖에 없는 나는 그걸로 아이에게 따듯함을 준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컨디션을 챙긴다. 


오늘도 자다가 어김없이 일어났다.

몸은 점점 붓기가 심해지고 누우면 호흡이 곤란해지는 증세 역시 심해진다.

나도 모르게 헉헉거리며 집안을 돌아다니고 할머니처럼 슈퍼를 갔다 오는 길에도 벤치에 앉아 한 번 쉬었다가 집에 돌아와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의 몸에서 하나의 인격체가 만들어지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익히 알고 있지만 그 대가가 나의 몸의 모습과 컨디션을 이렇게 바꾸어 놓는다는 게 세 번째여도 영 익숙해지지 않는다.

기다란 막대기를 들고 내 배를 꾹꾹 찌르는 듯한 태동으로  가끔 이것이 수축이 아닌가 느껴질 정도로 아프다.

그래도 이것이 아이가 살아있음을 표현하는 메시지라는 걸 알기에 오히려 안심이 되는 아픔이다. 그럴 때마다 배를 톡톡톡 치면서 살살하자고 이야기한다. 그러면 아이는 알아 들었다는 듯이... 다른 곳을 찌른다.


앞선 두 번의 임신과 출산에서는 정말 나의 고통만을 생각하며 지냈다.  다시 나의 리즈시절로 돌아오지 못할 것 같은 괴로움에 우울했던 적도 있었다. 임신은 여성성의 절정이라고는 하지만 생각보다 그 여성성의 절정은 아름답지 못하기에 임신 내내 그리 즐겁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이제는 그것들을 신경 쓸 겨를도 없거니와 영문도 모른 채 세상에 나와 엄마라는 존재를 제일 커다랗게 생각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이 정도 고통은 하찮게 느껴진다. 



어제 대뜸 하영이가 내 배를 쓰다듬으면서 물었다. 

 “엄마 뱃속에는 빛이 들어와?”

 “그러게. 두꺼운 옷을 입고 있어서 빛이 들어오지 않을 수도 있겠다.”

라고 대답을 하고 돌아서면서 이 작은 아이의 컨디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탯줄 하나로 삶을 의지하고 있는 이 작은 아이에게 매운 음식과 커피를 제공하고, 자는 동안 서너 번씩 깨서 화장실을 가면서 잠을 방해하고 조심성이 없어서 자꾸만 어디 부딪히고 까지고... 큰애들 챙기느라 온 동네를 활보하면서 가끔은 뛰기도 하고... 그래도 살아있다고 꼬물거리면 배를 톡톡톡 두드리는 나의 행동들이... 모든 컨디션과 아픔을 함께 느꼈을 아이에게 너무 미안해졌다. 

 정말 영문도 모른 채 내 뱃속에 갇혀 이리저리 따라다니며 바삐 성장하고 있을 아이.

나의 선택과 결정으로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갈 아이. 

부족하고 모자란 엄마를 세상에서 제일 의지하고 살아갈 아이. 

그 아이를 생각하니 애틋함이 온몸을 감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하게 열심히 성장하고 있는 내 작은 아기.

결국 나를 내가 좀 더 챙기고 사랑하면 되는 일인데... 왜 그런 일들이 이렇게 어렵게 느껴지는 걸까. 

어쩌면 임신하는 동안 이 작은 아이는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일은 오전에는 아이들 등교할 때 너무 서두르지 말고 조금 넉넉하게 준비해서 살살 걸어가야지. 그리고 애들 보내놓고 얇은 옷만 입고 창가에 앉아 뱃속의 아이에게 따듯하고 밝은 햇살을 느끼게 해 줘야겠다.

이 세상 태어나 처음 밝은 빛을 봤을 때 많이 놀라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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