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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묘연 Mar 31. 2023

You are amaizing!

아이들을 다 보내놓고 하루하루 이제 내가 하지 못할 일들을 하나씩 해나가고 있는데

그것이 딱히 대단한 일이라거나 멋진 일은 아니다. 

아침에 카페에 가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책을 읽는다거나

아무도 없는 집에 앉아 영화 한 편을 보기도 하고

따듯한 물을 받아놓고 족욕을 하기도 하고

매우 떡볶이를 사다 먹는다거나

뭔가 어렵지 않은 저렴한 사치를 누리고 있다.. 

따지고 보면 아이를 낳고 누리지 못할 일들이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다.


오늘은 그중에 영화 보기를 했던 날. 

 <더 웨일>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종교적 이념과 반하는 사랑을 하면서 괴로움에 말라가던 애인을 떠나보내고 폭식증에 걸려버린 그는 과거 아내와 자식을 버리고 떠난 죄책감에 대해 뒤늦게 솔직한 마음을 전하며 구원을 얻는 내용이다. 

 폭식증에 걸려 화장실도 마음대로 갈 수 없는 커다란 고래 같은 주인공을 보면서 둔해져서 빠릿빠릿하게 움직일 수 없는 내 상태와 동일시되었다. 물론 지금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풍선만 한 배를 껴안고 비스듬히 누워 스스로를 짐승 같다 여기는 이 아름답지 못한 모습이, 카메라가 고장 났다 핑계를 대며 까만 화면을 띄우며 수업을 하는 주인공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도 못하면서 그는 에세이를 가르치며 자신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인정하고 사랑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영화 후반부 후줄근한 현실을 몇 줄로 쓴 학생들의 글을 보면서 주인공 역시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공개하겠다며 카메라로 자신의 모습을 비춘다. 이 장면을 보면서 엄마는 아이를 사랑으로 키워야 하는 사람이기에 어쩌면 열 달이라는 임신기간 동안 못나지는 나 자신을 솔직히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연습을 누군가가 시키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까매진 겨드랑이와 사타구니, 터져 나갈 듯한 배와 튼 피부, 부어오르는 성기, 소양증에 긁어서 딱지가 진 피부, 퉁퉁 부은 손과 발, 그리고 숨겨지지 않는 살들... 나열하자면 너무나도 아름답지 못한 이 시기의 자신의 모습을 쓰다듬으며 역겹지 않다고, 이 모습 또한 아름다운 나의 모습이라고 보듬어주기 위해 나 자신을 얼마나 사랑해야 하는 걸까. 그런 마음이어야 내 몸에서 나온 나의 자식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아이를 키우다 보면 원하지 않던 모습을 보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마다 아이의 부족한 모습을 보면서 비난하고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나에게서 왔음을 인정하고 사랑하려면 나부터 내 부족한 모습부터 사랑해야 함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이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주인공이 몇 번이고 딸에게 외쳤던 대사 " you are amazing!"가 계속 마음에 남았다. 그것은 딸에게 외치는 아버지로서의 큰 메시지였으나 결국 폭식증으로 아름답지 겉모습을 한 자신에게 한 말이 아니었을까. 마음의 상처로 생긴 폭식증 그리고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살들. 숨기고 싶은 상처와 추함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래도 우린 모두 사랑할 자격이 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you are amaiz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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