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바다에서 사는 아이.

그렇게 엄마가 된다.

by 묘연

며칠 전 엄마가 해주신 파김치 한 그릇에 매료되어 파김치를 담그러 아이를 데리고 친정에 갔다. 파가 어찌나 싱싱하고 매운지 눈물을 흘리면서 열심히 파를 깠다.

연신 눈물을 훔치며 훌쩍거리며 파를 까는 내 모습이 엄마 눈에는 너무 처량해 보였나 보다. 나더러 청학동에서 오셨냐며 입으로는 농담을 하셨지만 안쓰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일 년 넘게 만지지 않아 시커멓고 뻣뻣하게 자란 머리를 질끈 묶고 화장도 제대로 하지 못해 누렇게 뜬 얼굴로 젖이 묻은 티를 입고 파를 까면서 눈물을 훔치는 내 모습...

사실 내가 봐도 처량하다.

엄마는 그런 내게 파마라도 하고 오라고 하셨다.

안 그래도 아이를 낳고 엉망이 된 머리카락을 조금 회복해볼까 싶어 또 언제 엄마에게 아기를 맡기고 머리를 할까 싶어 이 기회를 놓칠세라 파를 까다 말고는 미용실로 신나게 뛰어갔다.

마치 머리를 매우 자주 했던 사람처럼 능숙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 머리에 롤을 말고 잡지를 뒤적거리며 요즘 나온 신상과 패션 트렌드를 읽고 미용실에서 준 오렌지 주스를 홀짝거리며 아껴 마시고 있으니 마치 다시 아가씨가 된 기분이었다.

그런 기분도 잠시 엄마의 급 호출.

한 시간째 울고 있는 우리 아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울음은 언뜻 들어도 사단이 난 것 같았다. 엄마의 목소리는 아이보다 더 다급했고 어쩔 줄 몰라하셨다.

“웬만하면 너한테 전화 안 하려고 했는데, 애가 어디가 아픈 것 같아. 아니고서야 이렇게 오랫동안 자지러지게 울 수 없는데...”

“알았어.”

라고 전화를 끊고 나니 내 머릿속엔 객관식 시험처럼 명확하게 보기가 주어졌다.

1. 파마를 중단하고 얼른 씻어내고 집에 간다.

2. 머리에 롤을 만 채로 집에 간다.

3. 그냥 모르는 척한다.

4.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미용실로 오신다.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1번이었지만 거의 2년 만에 하는 파마라 그러고 싶지 않았고 2번을 선택하자니 머리에 보자기를 쓰고 뛰어갈 우스꽝스러운 내 모습이 상상되어 엄두가 나지 않았다. 3번을 하자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엄마에게 전화를 다시 걸어 미용실로 오라고 말했지만 유모차도 아기 띠도 없이 엄마가 안고 오기란 쉽지 않았다.

‘에잇. 그냥 집에 가자.‘

손에 땀을 쥐면서 고민 끝에 미용실 원장님께 빨리 집에 가봐야 한다며 재촉의 재촉을 하며 머리를 빨리 풀어달라고 하고는 마무리 짓지 못하고 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현관문에서부터 들리는 아이 울음소리..

얼른 들어가 아이를 불렀다. 한 시간 반 동안 울어서 부어 터진 눈과 쉬어진 목소리 지칠 대로 지친 모습으로 그리고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우리 엄만 그 짧은 새 몇 년은 늙으신 것 같았다.

‘내가 대체 뭘 하고 온 거지... 잘난 파마 한 번 해보겠다고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이 두 사람을 시험에 들게 하다니...’


아이는 내가 안자마자 울음을 거짓말같이 그쳤고 금세 싱긋 웃어 보이기까지 했다.

아이의 침과 눈물이 범벅이 된 옷을 입고 울먹이던 우리 엄마는 아이의 미소에 허탈함을 감추지 못하셨다.

아이에게 어떤 약보다 더 명약이라는 나의 젖.


젖을 물리고 나니 아이는 금세 컨디션이 돌아왔다.


난 아마도 아이가 이 분리 불안을 극복하는 날까지 두 번 다시 파마를 하지 못할 것이다.

출산 후 3일 입원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모유 수유를 했고 조리원 대신 집에 와 옆에 끼고 육아를 한 탓일까. 우리 아이는 나와의 애착이 유난히 일찍 형성되었다.

어떤 날은 샤워하는 내가 보고 싶어 울면서 아빠에게 업혀 욕실까지 들어오는 지경에 이르렀고 남편은 내게 ‘너만 바라보는 한 남자’가 있는 기분이 어떠냐며 농담도 던지곤 하지만

가끔 이런 애착이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나는 초보 엄마다.

부담스럽고 가끔 두렵고 무거운 책임감에 가슴이 답답해지기도 하는 그런 엄마.


그런 부족한 초보 엄마인 나를 전부라고 여기는 이 딱한 아이를 위해

가끔씩 터져 나오는 한숨을 삼키고

나도 모르게 지어지는 난감한 표정을 숨겨본다.

아무렴 괜찮은 것처럼.

마치 처음부터 엄마였던 것처럼.

그렇게 육아는 내 사랑의 한계를 시험하는 일이 되었다.

내가 가진 사랑의 크기와 깊이를 가늠하는 일.

웬만하면 가늠되지 않을 만큼 크고 깊었으면 좋겠다.

아이가 나의 사랑을 무한한 바다같이 느낄 수 있도록 말이다.


오늘 하루도 내 사랑의 바다에서 헤엄치고 놀 이 작은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해 본다.

그렇게 엄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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