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엄마가 된다.
아이가 태어나고 온통 ‘처음’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겪는 엄마.
엄마는 처음이지만 처음이 아닌 듯해야 하고 엄마보다 더 낯설어하는 아이를 세상에 적응시키기 위해 엄마는 늘 처음부터 엄마였던 것처럼 행동해야 하거늘
아이의 첫 고통 앞에,
익숙하게 지나갈 수 없었다.
어젠 작은 사고가 있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흔히 겪는다는 낙상사고...
우리 아이는 육 개월이 지나도록 뒤집기를 잘 하지 못했다.
어제도 여느 날처럼 새벽에 수유를 마치고 부부 침대에 뉘이고 혹시나 뒤집고 되집고를 하더라도 떨어지지 않게 침대 깊숙이 밀어 넣고는 라디오를 틀고 빵을 구워 잼을 바르는 찰나..
쿵! 처음엔 의심스러웠다. 설마 아이가 떨어진 걸까...
아이는 어느새 뒤집어 배밀이를 하며 뒤로 밀려내려 왔던 것이다. 다리부터 떨어진 데다 머리가 반쯤 열려있던 장롱에 부딪힌걸 보아 별로 충격은 크지 않았던지 안아주니 금세 울음을 그쳤다. 하지만 내 마음은 ‘쿵!’ 소리와 함께 바닥에 세차게 떨어져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아이에겐 아무것도 아니라고 꼭 안아주며 안정을 시켰지만 나도 모르게 덜덜 떨리는 손은 숨길 수가 없었다. 아이는 울음을 그치자마자 배시시 웃으며 잘 놀았지만 난 그날도,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아이에 대한 미안함과 자책감과 속상함이 뭉쳐 아이가 떨어지던 그 소리와 함께 하루 종일 수 만 번은 더 떨어졌다.
작은 해프닝.
그래 이건 작은 해프닝이었다.
그런 일이 있고 나니 앞으로의 일들이 더욱더 두려워졌다.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의 고통을 지켜봐야만 하는 엄마들...
어쩌면 우리네 엄마들은 아이가 작은 주사를 하나 맞는 날에도,
잘 놀던 아이가 넘어져 무릎이 까진 날에도,
감기에 걸려 학교를 못가는 날에도,
엄마의 마음은 중환자실에 누워있고 싶을 만큼 많이 아플지 모른다.
그리고 많이 아픈 아이를 키우는 엄마 마음은 하루하루 죽어져 무너져 내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겨우겨우 살아가고 있을지 모른다.
우린 그런 걸 아픈 손가락이라고 하는 걸까.
오장육부의 기가 들어있는 손바닥처럼 엄마의 마음은 아이가 온전히 들어있는 손바닥과 같아
아이가 아플 때면 마음이 꾸욱 꾸욱 눌러져서는 제대로 펴지 못한 채 평생을 살아야 할 수도 있다.
살면서 내가 겪었던 만큼 아이도 많은 고통을 겪게 될 텐데...
그럴 때마다 마음에 꽂아 치료하는 수지침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
아이도 나도 아프지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