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엄마가 된다.
아이를 키우는 일.
매일매일 같은 생활.
행복한 일이 분명하지만 어떤 날은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기도 한다.
어떤 날은 아이가 하루 종일 칭얼거려서
또 어떤 날은 아이가 아파서
아님 아이가 잘 먹지 않아서
잘 싸지 않아서
잘 자지 않아서
아이의 이가 삐뚤게 자라서
아이의 발가락이 하나가 휘어진 것처럼 보여서
아이의 머리카락이 잘 자라지 않아서
모든 게 엄마의 마음엔 부족함 투성이.
내가 뭘 잘 못한 건 아닐까. 어떻게 해야 이 아이를 잘 기를 수 있을까
이런 고민으로 지극정성으로 아이를 키우며 낮시간을 보내고 밤에 자려고 방안에 누우면
온몸이 아프고 녹초가 되어버려 손가락 하나 들어 올릴 힘도 없다.
그러고 있자니
아까 힘들게 일하고 들어온 남편에게 살갑게 하지 못했던 말들이 떠오르고
낮에 걸려온 자신의 커리어를 잘 쌓고 있는 친구의 전화도 생각이 나고
엄마는 어떻게 잘 지내셨는지.
시어머니한테 전화를 언제 드렸더라...
아이에게 정신 팔려 주변 사람들에게 잘 하지 못했던 것들을 생각해 본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내 생각 속엔 내가 없다는 걸 문득 깨닫게 된다.
'난 오늘 하루 잘 살았나?'
나 몸이 많이 아프지. 주말에 한 번씩 침을 맞아도 낫지 않은 어깨와 허리.
산후 풍인지 뭔지. 이 여름에 반팔을 입고 자면 시린 내 팔. 괜찮은 걸까.
며칠째 화장실을 못 갔더라...
아까 샤워하다 문득 수북하게 자라난 겨드랑이 털과 제모하지 못한 다리가 거슬렸지만
시간이 없어 대충 씻고 나온 게 마음에 걸린다.
나도 모르게 생겨버리는 주름살과
출산 후 튼 뱃살과 거칠어진 피부는 관리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게 마음에 걸린다.
그래 나 이렇게 망가졌지...
내 모습은 그렇다 치고 내 커리어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니 잠이 쉽게 오지 않는다.
힘들다고 해서 아프다고 해서 그만둘 수도 없는 일인데 이렇게 하루하루를 큰 숙제처럼 살아야 하는 게 버겁다.
누군가가 내게 휴가라도 주면 좋으련만 누구에게 하나 부탁할 데 없는 독박 육아 신세인 내겐 그 어떤 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내가 오늘 하루 종일 뭘 했는지 떠올려 보니
그저 이 작은 집안을 미친 듯이 돌아다닌 것 같다.
세상에 태어나 가보지 못한 곳이 얼마나 많은데 작은 집안에서 바삐 왔다 갔다 하느라 밤만 되면 씻을 힘도 없이 녹초가 되는 이 삶이 갑자기 너무 슬퍼졌다.
아이와 함께 밖에 나갈 수 있다면 좀 나아질까.
우리 함께 새로운 것들을 보면서 살아갈 수 있다면 괜찮아 질까.
매일매일, 시시각각 변하는 같음이 없는 자연 속에서 바람과 하늘과 해를 이야기하며 살아가면 좀 괜찮아 질까.
나도 나지만 아이에게 세상에 밟아보지 못한 땅을 밟으면서 매일 새로운 것을 보여주고 이야기하고 싶어 졌다.
더러운 공기 속에 층층이 칸칸이 작은 집에 갇혀서 이렇게 하루하루 미친 듯이 살아가는 게 정말 옳은 삶일까.
이렇게 살아서 더 육아가 힘든 것만 같다.
이런 생각이 떠오르면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대화 상대는 늘 회사에 가있는 남편뿐.
새벽에 출근했다 밤늦게 돌아오는 남편을 어떤 날은 출근한 순간부터 기다린 적도 있다.
어젠 밤늦게 퇴근한 남편에게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나의 마음에 대해 이야길 했다.
남편은 처음엔 넓은 집으로 이사 가자고 했다.
언제나 그랬듯 늘 말뿐인 처방이다.
그런 말을 들어도 하나도 힘이 나지 않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회사 동료가 준 거라며 홍차 티백 하나를 주머니에서 꺼내어 준다.
한 잔 따듯하게 타서 마셨더니 세상 처음 맛보는 홍차다.
"맛이 좋네."
그리고는 다시 나의 투정 아닌 투정을 남편에게 쏟아부어본다.
잠자리에 들 때까지 내 마음은 큰 바위에 깔린 것 마냥 무겁고 답답하고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남편도 일에 치여 피곤함을 이기지 못하고 잠자리에 들면서 내 이런 기분이 안쓰러웠는지 한마디 툭 내뱉는다.
"내일 홍차 사가지고 올게."
'홍차...'
왜 그 단어가 울음 포인트였는지 알지 못했지만 나는 그 단어에 눈물이 왈칵 났다.
어두운 방에 숨죽이며 울고 있으니 남편은 그저 뒤에서 그런 날 안아준다.
그리고 몇 분 후 잠이 막 들려고 할 때 아들이 잠에서 깨어났다.
홍차고 뭐시고 언제 그랬냐는 듯 아이를 안아 달래고 달래 다시 잠을 재웠다.
그렇게 밤을 보내고 아침이 되었고 또 똑같은 하루가 시작된다.
다만 어제와 다른 건 남편이 사 올 홍차를 기다리며 하루를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냥 이런 우리네 엄마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멋들어진 여행이나 화려한 휴가가 아닌
향이 좋은 홍차 한잔 일지 모른다.
우리 남편. 그러고 보니 꽤 좋은 처방을 해 준 것 같았다.
오늘, 육아 스트레스에 고생하고 있는 엄마들과 홍차 한 잔 에 푸념을 나눠 마시고 싶어 지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