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도 되는 일, 하면 안되는 일, 그리고 하고 싶은일

그렇게 엄마가 된다.

by 묘연

‘엄마 나 핸드폰 만져보고 싶어요.’

‘전선은 무슨 맛이 나요?’

‘휴지도 먹어 보고 싶어요.’

‘선풍기와 공기 청정기와 에어컨은 엄마가 켤 때마다 신기해요.’

‘엄마 칫솔로 양치를 해보고 싶어요.’

‘로션은 먹으면 안 되는 거예요?’

‘밤에 엄마 젖 물고 자면 안돼요?’

‘엄마 내 눈앞에서 사라지지 좀 마세요.’


아이는 말을 못 하지만 그의 눈으로 손짓으로 울음으로 표현할 수 있는 때가 되었고 나 또한 모든 걸 알아들을 수 있는 때가 되었다.

세상이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는 아이들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들.

그리고 딱히 위험한 것 빼고는 안 될 것도 없는 일들.

하지만 뭔가 어른의 사고방식으로 갇혀버린 나는 오늘도 “안 돼.”, “지지.” 라며 단호하게 모든 걸 거절했다.

아이는 슬퍼했고 화가 났고 짜증이 났고 그렇게 며칠째 우린 서로 다른 언어로 보이지 않는 싸움을 이어나갔다.


그러던 중 아이의 분노가 폭발하는 일이 일어났다.

목욕을 하고 나온 아이는 물놀이를 더 하고 싶다는 제스처를 했지만 잘 시간이 임박했다는 이유로 단호하게 물을 닦여 나온 것부터가 화근이었다. 날씨가 더운 탓도 있었고 목욕 후에 바르는 로션이 신기해서 한번 맛보고 싶은 아이의 마음 탓도 있었다.

아이는 분명히 내게 로션 뚜껑을 연채로 만져보고 싶다는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나는 단호하게 안 된다며 로션 뚜껑을 매몰차게 닫아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폭력적인 행동이라고 생각되지만 나도 하루 종일 징징 울면서 안 되는 일들을 하겠다고 떼를 쓰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밤까지 참아온 인내심이 폭발한 순간이었다.

“안 돼. 안 돼. 안 돼.”

아이도 분명히 내 말을 알아듣는 것 같았다. 멈칫, 멈칫하면서도 로션을 필사적으로 입에 넣는 아이에게 나는 “엄마가 지지라고 했지!”라며 큰소리를 치고 말았고 아이는 지지 않고 우렁차게 울고 말았다. 그 와중에 남편은 로션 뚜껑을 열어 아이에게 건넸고 나는 아무렇지 않게 로션 뚜껑을 다시 한번 매몰차게 닫았다.

세상이 무너져라 우는 아이는 자기 분에 못 이겨 꼴깍꼴깍 넘어가고 말았고 한 5초쯤 숨을 쉬지 않는 상태가 되어서는 아이의 입술이 새파래졌다. 새파래진 아이를 안고 들었다 놨다 등을 때렸다가 소리를 질렀다가...

그 5초가 내겐 10년 같았다.


무서웠다.

아이가 내 눈앞에서 죽을까 봐 두려웠다.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아이가 너무 미웠다. 처음으로 가져보는 이 미움의 감정은 너무도 낯설고 어색했다. 아이의 웃는 얼굴을 보아도 웃음이 나질 않고 울음소리엔 너무 예민해져서 그저 한 숨만 나왔다. 밉다기보다 아이가 무서웠던 것 같다.


‘내 앞에서 죽을 생각이었을까...’,

‘목숨을 담보로 나랑 기싸움을 하자는 건가.’

‘나한테 왜 그런 모습까지 보여 준 걸까.’

‘무슨 표현을 하고 싶었던 거지?’

‘왜 그렇게 화가 났던 거지?’

‘싫은 표정을 지어도, 징징거려 보아도, 크게 울어도 안돼서 그렇게 화를 낸 건 아닐까.’

‘왜 나는 아이의 표현을 잘 캐치하지 못했지?’

‘이 사람이 내 아이가 아니라 친구였다면, 애인이었다면, 부모였다면 나 또 이렇게 행동했을까?’

‘아이도 사람이지.’

‘나 왜 이 아이를 무시했지?’


수만수천 가지의 말들이 하루 종일 맴돌았다. 처음엔 아이가 원망스럽고 이제 이 고집 센 아이를 어떻게 키울지가 걱정되었지만 자꾸만 그날의 무심히 로션 뚜껑을 닫던 내 거친 손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누군가에게 이 사건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아이가 왜 그렇게 까지 울었는지에 대해 설명할 때에도 아이의 극한의 모습보다는 아무 거리낌 없이 아이가 그렇게 하고 싶다는 일을 단호하게 거절하던 내 모습이 밟혔다.

크고 거칠고 못생긴 손으로 아이의 상상력을 꾹 닫아버린 그날.

후회스러웠다.


좋고 싫음이 생기고 세상이 호기심으로 가득 찬 한 사람으로 성장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게 옳았다.

그리고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를 위해 섬세하게 아이의 언어를 살폈어야 했다.

마치 어릴 때 엄마 기분을 살폈던 것처럼 아이의 기분을 살폈어야 했다.

생각해보니 어릴 때 세상에 엄마가 전부인 그때를 되돌아보면 엄마의 기분을 꽤나 섬세하게 살폈던 것 같다. 그런 내 맘을 몰라주는 건 언제나 어른이었지...

아마 내 아이는 이미 나를 그렇게 섬세하게 살피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젠 남편한테 장난으로 우는 척을 잠깐 했더니 세상 서럽게 따라 우는 아이를 보면서 난 또 한 번 아차 싶었다.

아이가 내 기분을 살피는 것만큼만이라도 아이의 마음을 이해해주자.

아이가 날 사랑하는 만큼만 나도 아이를 사랑해 주자.


내 마음이 그렇게 변하니 며칠간 죽도록 힘들었던 아이의 떼쓰기는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나 얼마나 이 아이에게 세상엔 안되고 더러운 것들로만 가득 차있는 것 같이 말했던가.

나도 모르게 처음 세상을 대하는 아이에게 세상은 안 되는 게 많고 더러운 게 많은 거라는 부정적인 세계관을 심어주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따지고 보면 세상엔 안 되는 일도 있긴 하지만 죽어지고 아파지는 일 빼고는 딱히 안 될 일도 없는데 말이다.

아이에게 로션을 빼앗고 뚜껑을 닫는 대신 아이 손에 로션을 묻혀 내 얼굴을 비비게 해 주고 먹고 싶어 하는 젖을 한껏 먹이고는 엄마 냄새 맡으며 자길 원하는 아이가 푹 잠들 때까지 같이 누워 평온한 밤을 보내는 오늘.


이렇게 또 아이에게 세상을 배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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