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모르는 우주

그렇게 엄마가 된다.

by 묘연

‘오리 안녕? 나 오늘 또 왔어. 딱 하루 만에 보는 거네. 어제 얘기 다 못하고 헤어져서 얼마나 아쉬웠는 줄 알아?

오늘은 뭐하고 지냈어? 난 오늘 엄마랑 집 뒤에 있는 놀이실에 다녀왔어. 다른 친구들도 많았는데 난 왜 그런지 나보다 큰 누나와 형들은 조금 무서워. 하지만 금세 적응이 됐지 뭐야. 거기에 장난감이 아주 많은데 난 특히 편백나무 풀장이 제일 좋아. 나무 조각들이 부드러우면서도 딱딱해. 하나 맛보고 싶었는데 엄마 몰래 입에 하나 넣었다가 엄마가 손가락을 넣어서 강제로 빼는 바람에 모두가 보는 앞에서 울어버렸지 뭐야. 그래도 엄마가 재밌게 놀아주셔서 너무 재밌었어.

갔다 와서 엄마가 밥을 주셨는데 오늘따라 날이 너무 더워서 그런지 입맛이 별로 없는 거 있지. 먹기 싫다고 말했는데 억지로 내 입에 숟가락을 찔러 넣으셨어. 그러는 바람에 오늘 저녁 내내 기분이 별로야.

그래도 지금 널 만날 수 있어서 나 너무 기뻐!

오늘은 물이 어제보다 조금 더 따뜻한 거 같아. 어제보다 안 춥게 놀 수 있겠어.

우와! 샤워기에서 비가 내린다! 이 비가 그치지 않고 계속 내렸으면 좋겠어. 내가 이 비 한줄기를 잡을 수 있을 때까지 말이야. 비 잡아 봤어? 잡고 나면 무슨 모양일까? 무슨 맛이 날까?

오리 친구! 넌 어떤 느낌인지 내가 입으로 확인해봐야겠어.

엇 미안해. 결국 널 깨물고 말았네. 하하하 그래도 안 아프지? 나 네가 너무 좋아. 우리 밤에 잠도 같이 자면 안 돼?

그냥 이대로 오늘 밤새 같이 놀았으면 좋겠......‘


“성현아 이제 나가자~!”


‘싫어요! 아직 친구들과 얘기도 다 못했고 인사도 못 나눴다 구요.

조금만 더 있다가 나가고 싶어요. 지금은 아니라고요. 엄마~제발요.

지금 나가면 저 내일 이 시간까지 기다려야 하는 거잖아요. 싫어요. 싫어.'

세상이 무너진 듯 우는 아이를 달래고 또 달래고 오늘도 이렇게 아이와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고서야 목욕이 끝이 났다. 물이 싸늘하게 식어 몸을 덜덜 떨면서도 나오기 싫어하는 아이.

감기가 걸릴까 봐 염려하는 내 맘을 알까.

울어서 빨간 눈을 해서는 물에 불어 쪼글쪼글해진 손으로 오리를 꼭 쥐고 놀고 있는 모습을 보니 어김없이 또 나를 돌아보게 된다.


돌이켜 보면 나도 꽤나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였다.

이불 한 장이 뗏목이 되었다가 하늘을 나는 양탄자가 되었다가 매일매일 자기 전 나만의 세상을 여행했다. 엄마를 졸라 야광별을 사다가 온 벽에 붙여 놓고는 환상적인 여행도 했고 알라딘 주제곡을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틀고 되감고 또 틀면서 내가 공주가 되어 하늘을 날았다.

인형들을 줄 세워 놓고 이름을 하나하나 지어 대화도 나누고 인형에게 엄마 옷을 입혀봤다가 내 옷을 입혀봤다가 수건을 고무줄로 묶어놓고는 드레스라며 혼자 좋아하기도 했고 레모나를 물에 타다가 주스라며 아이들입에 한 모금씩 먹여서 찐득해진 인형을 보며 혼자 좋아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내 우주는 언제나 엄마의 등장으로 한순간에 사라지곤 했다.

엄마는 내 우주를 언제나 ‘지저분’하다고 하셨고 ‘어질렀다’고 표현하셨다.

엄마 눈엔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가 어질러놓은 집안일뿐이었다.

그렇게 엄마는 늘 내가 만들어놓은 세상을 탐탁지 않아하셨다. 그래서 난 언제나 엄마가 외출하시기만을 기다렸다가 엄마만 나가시면 기다렸다는 듯이 혼자 집안에 나만의 우주를 차려놓고는 그 속에서 내가 되고 싶은 것과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물론 엄마가 들어오실 때면 달그락 거리는 현관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내가 만든 세상과 친구들은 별안간 사라지곤 했지만 한 번도 그것이 귀찮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때의 엄마를 원망하고 싶지 않다. 나 또한 아들의 우주를 아무 생각 없이 싹싹 치우는 매정한 엄마가 되었으니까.

아이의 호기심 가득한 행동들이 내겐 치우고 닦아야 할 숙제로 밖에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아이가 만들어가고 있는 세상을 난 오늘 매정하게 몇 번을 치워댔을까 생각하니 사소한 오늘의 일들을 반성하게 된다.


‘작은 욕조가 너에겐 바다였고 장난감들은 너의 친한 친구들이었구나.

그래. 아들아 내일은 바다에 들어가면 친구들과 오늘보다 더 오래도록 놀 수 있게 물의 온도를 조금 더 따듯하게 맞춰줄게.

엄마가 네 친구들에게 그간 미안했다고도 말할게. 그리고 자기 전 작별인사도 완벽하게 하고 나오자.

그리고 너의 바다에서 엄마도 같이 놀자.'


그렇게 지나간 하루를 반성하고 있자니 아이의 손에 들린 오리가 날 슬며시 쳐다보며 씩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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