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엄마가 된다.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내가 잘할 때도 못할 때도 그냥 보고만 계셨다.
그들은 내게 아무런 관심도 없어 보였다.
엄마가 되어 아이를 안고 그 집엘 갔다.
그들의 눈엔 아이만 보이는 것 같았다.
난 그저 아이를 매달고 온 투명인간 같이 느껴졌다.
언제부턴가 전화도 하지 않게 되었다.
찾아가는 것도 꺼려졌다.
운전을 하면 네댓 시간이 족히 걸리는 거리.
마음의 거리만큼이나 먼 시댁.
하지만 그 집에 들어서면 이상하리만큼 마음은 편했다.
둥지 같았다. 나를 위해 만들어진 둥지가 아닌 건 확실했지만
남의 둥지를 제 집처럼 여기는 뻐꾸기 같이 난 그곳에서 항상 편하게 잘 먹고 잘 잤다.
작고 허름한 집이었지만 집안은 언제나 깨끗하고 정갈했다.
언제나 부엌 한편 커다란 솥 안에는 고깃국과 밥이 가득 담겨있었고
촌스러운 싸구려 그릇이지만 흠집 하나 없는 희고 고운 밥그릇들이 예쁘게 줄 서있었다.
난 마치 처음부터 우리 집이었던 것처럼 익숙하게 그 밥그릇에 밥을 뜨고 솥 안에 국을 데워 국그릇에 정성스럽게 담아서 피곤한 몸과 마음을 씻어 내렸다.
배가 부르면 남편과 나는 종종 아무도 없는 거실 바닥에 드러누웠다. 누워서 찬찬히 이곳저곳을 살폈다.
20년이나 살았다지만 장판은 반질반질하고 먼지는 한톨도 없었고 벽지는 깨끗하고 주름 한 점이 없었다.
모든 게 새 것 같았다.
시부모님은 사시는 동안 이 집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아하시는 것 같았고 때를 묻히지 않으려고 하시는 것 같았다. 집뿐만 아니라 자식들에게도 어느 하나 간섭하고 참견하는 일이 없었다.
그런 부모님 밑에서 자란 남편은 불만하지 않았고 투정 부리는 법이 없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했다.
사실 크게 사랑한다고 표현한 적도 없었고 크게 불만을 이야기한 적도 없었지만 나는 남편이 나를 사랑한다고 믿을 수 있었던 건 무뚝뚝한 표정 속에 감춰진 사랑의 눈빛이 있었고
비싼 명품을 사준 적은 없었지만 추운 겨울에 데이트할 때 언제나 주머니 속에 넣어오던 따듯한 두유가 그의 마음의 온도같이 느껴졌었기 때문이었다.
어머님 아버님이 이 작고 허름한 집을 반질반질 닦고 아끼는 것처럼.
남편은 부족한 나를 언제나 닦고 아꼈다. 8년 넘게 사랑하면서 일 센티의 변함도 없었다.
남편이 왜 그런 방식으로 날 사랑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며칠 전 시댁에 갔다 집에 오는 길 가방에서 발견된 어머님이 몰래 넣어두신 떡 봉지를 보고는 남편이 데이트하면서 가져오던 따듯한 두유가 떠올랐다.
세상엔 사랑하는 마음은 다 가지고 있어도 그걸 표현하는 방식이 다 다르다는 것을, 그리고 그 방식은 부모님께 배우며 살아간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그날 그 떡 봉지에는 들어있는 어머님의 사랑을 맛있게 한입 베어 먹었다.
그리고 이제 내가 남편의 사랑의 방식을 이해했듯 시부모님의 사랑을 이해할 때가 된 것 같았다.
나 몰래 넣어둔 오메기떡 한 봉지 같은 사랑을.
맛있다는 말 대신 밥을 한 그릇을 더 먹는 것이
서로에 대해 관심을 갖기보다는 그저 서로 얼굴을 한 번 더 보는 것이
옆에 한 번 더 앉아있는 것이
그들이 사랑을 이야기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시댁에 갔던 날 난 아무것도 모른 채 어머님께 아버님께 노후생활을 좀 더 넓은 새 아파트에서 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드렸는데 20년 살아오신 이 집을 떠나는 것을 반대하셨다.
이젠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집을 아름답게 꾸미거나 인테리어를 멋들어지게 한 집은 아니지만
20년 동안 정성스럽게 닦고 닦은 집인 것을.
그렇게 사랑한 집인 것을.
이 집처럼 나도 언젠가는 어머님 아버님의 귀한 며느리가 되어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