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지 않는 것

by 묘연

엄마가 아프다.

며칠 전 무릎 관절이 안 좋아지셔서 수술을 하시게 되었다.

엄마는 수술을 앞두고 두려움에 떨고 계셨다.

마치 학교에서 줄 서서 차례대로 주사를 맞았던 날 내 어린 날처럼.

애써 담담한 척. 별거 아닐 거라고 말하면서도 사실 나도 무서웠다.

수능시험 보던 날처럼 긴장이 됐다. 물론 생명에 지장이 있거나 큰 수술은 아니었지만 엄마가 아무 의식 없이 마취약에 취해 있는 모습을 보는 게 너무 무서웠다.

아빠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일까.

우리 언젠가 이 모습으로 만나야만 한다는 잔인한 사실을 부정할 수 없어서였을까.

...

......

어쨌든 다행히 엄마는 수술을 잘 마치셨고 마취에서도 금방 회복이 되셨다. 나는 아이를 데리고 엄마 병간호를 했다. 물론 밤엔 동생이 엄마와 함께 있어주었지만 18개월 된 아이를 데리고 엄마를 간호한다는 건 사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새벽 네 시에 일어나 글 작업을 한두 시간쯤 하고 남편 아침을 챙겨 출근시키고 엄마 죽을 끓이고 아이 아침을 먹이고 청소와 빨래를 해놓고 병원에 가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호기심을 채우는 아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도 엄마 약을 챙기고 움직이는 걸 도와줘야 했다. 그렇게 밤까지 하고 나면 남편이 병원으로 와 나와 아이를 데리고 집에 가는 것이 일과였다.

그렇게 며칠이... 기억나지도 않은 며칠이 흘렀다.

사실 몸이 힘든 것도 힘든 것이었지만 병상에 누워있는 작아진 엄마를 인정해야 하는 게 힘이 들었다.

난 우리가 영원하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빠가 어느 날 예고도 없이 사라지신 것처럼 언젠가는 헤어지고 언젠가는 사라져 없어져버린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근데 병원이란 곳은 그런 사실을 더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곳이었다.

난 여느 때보다 더 일찍 일어났고 여느 때보다 더 열심히 하루를 보냈다. 차라리 몸이 너무 바쁘고 괴로워서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길 바랬는지도 모른다.

그곳에선 모든 게 씁쓸했다. 젊은 날 굵은 다리 때문에 미니스커트를 입지 못했던 엄마가 가장 작은 사이즈의 다리 보조기를 사야 했을 때 모두가 말라서 좋겠다는 소리를 했을 때도, 병원에서 한 신체검사에서 엄마가 알고 있던 키보다 2센티가 작게 나왔다며 자존심이 상한다며 깔깔대고 웃으실 때도 난 쉽게 웃을 수가 없었다.

엄마가 작아져서 없어져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

엄만 무사히 퇴원을 하셨고 난 친정에서 며칠 더 머물다 집에 돌아왔다.

딸이 아닌 엄마의 자리여야 하는 우리 집. 난 집에 돌아와 아주 오랫동안 잠을 잤다. 그리고 꿈을 꾸었다. 비 오는 날 엄마와 함께 우산을 쓰고 가는 어린 날의 꿈이었다. 엄마 키가 너무 커서 엄마가 들고 있는 우산을 올려다보니 우산이 너무 작아 보여 날 가리고 있지 않은 것 같아 불안해하는 그런 꿈이었다.

잠에서 깨보니 엄만 온데간데없고 언제부터 이러고 있었는지 내 옆에 누워 내가 깨기까지 나를 지켜보고 있는 아이가 있었다.


아! 내가 엄마가 되었구나...

아이 눈을 보니 내가 살아온 길고 길었던 인생이 하룻밤 같이 느껴진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까만 눈동자.

맑다 못해 푸르게 보이는 하얀 눈동자.

긴 속눈썹에 가려있지만 반짝이는 눈.

그리고 나도 어떻게 알았는지 알 수 없는 나를 향한 동공.

그렇게 눈이 마주치자 우린 함께 웃어본다.

힘겹게 뜨고 있다가 다시 감은 눈엔

얼굴을 씰룩 거리며 웃어 보이는 아이의 얼굴이 잔상으로 남는다.

슬며시 다문 입술이 옆으로 당겨진다.


우리의 삶은 생각보다 짧다.

예고 없이 어느 순간 끝나 있을 것이기에

사라지고 또 사라질 것을 알기에

우린 반복되는 하루를 통해 존재를 증명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는 동안 우린 짜증도 나고 화도 나고 지겹고 지치게 되겠지만

서로에게 따듯한 눈빛을 보내는 건 잊지 말자.

어느 순간 삶이 끝나 눈을 감게 되어도

우리가 나눈 눈빛은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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