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집에 왔다 가시면 아이는 가는 할머니를 붙잡고 그렇게 운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라고 생각했는데 이 녀석도 만남과 헤어짐에 대한 감정이 생기나 보다.
어찌나 애절하게 우는지 그렇게 우는 아이를 보니 내가 다 눈물이 난다.
그럴때마다 쉽지 않은 이 감정을 어떻게 만져주어야 할지 고민이 된다.
나역시 그게 쉽지 않은 사람이었기에.
지난 십여년 동안 미술학원에서 강사로 일을 하면서 그곳에서 많은 인연들을 만나고 헤어졌다.
학원이라는 데는 만남과 헤어짐이 유난히 잦은 곳이었다. 그 만남과 헤어짐이 이해관계로 얽혀 더욱더 가볍게 그 일들이 일어났다.
하지만 나에겐 결코 가볍지 않았다. 선생님의 입장이었지만 처음 만나는 아이들이 나도 똑같이 어색했고 서로 적응해가고 친해지면서 이해관계를 넘어 정이 들었다. 그리고 나와 만나게 된 인연을 소중히 생각했고 진심으로 아이들이 잘되길 바라면서 가르쳤기 때문에 늘 아이들과의 헤어짐은 어렵고 힘들었다.
아직도 나를 만난 아이들의 얼굴과 이름이 정확하게 떠오르는 걸 보면 난 정말 아이들을 진심으로 대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게 그들을 만나는 일은 일이 아니라 곧 내 삶이었다.
개인차는 있었지만 아이들은 어릴수록 헤어짐에 더 쿨한 것 같았다.
어린아이들은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어제를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제가 있어서 오늘이 있고 오늘이 있어서 내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몇몇의 친구들은 이별에 대해 슬퍼하고 힘들어했다.
그럴 때마다 난 우리 다시 만나자는 말을 하며 기약 없는 약속으로 힘든 감정들을 애써 무시했다.
사실 우리가 언제 다시 만날지도 모르는데... 그런 말로 서로를 위로한다는 게 가끔은 너무 가볍게만 느껴졌지만 너무나도 힘든 만남과 헤어짐 속에서 서로를 달랠 수 있는 최선의 말들이었다.
그렇게 만남과 헤어짐에 아프지 않은 방법을 서서히 찾아갈 갈 무렵 최악의 사건이 있었다.
너무나 사랑했던 아빠가 어느 날 간다는 말씀도 없이 홀연히 떠나셨던 것이다. 마치 이별은 익숙해질 수도 없고 무뎌질 수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하는 것 같았다.
아무런 준비를 하지 못한 탓도 있었고 마지막 인사도 못한 탓도 있었지만 갑자기 맞이한 이별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몰랐기에 충격과 고통은 더욱더 견디기가 힘들었다. 언젠가가 되어도 다시 만나지 못한다는 사실이 너무 가혹하게 느껴졌다. 아빠를 보냈음에도 그 부재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나는 지난 5년 동안 매일 아빠를 찾았다.
보다 못한 아빠는 꿈에 나와 냉정한 모습을 보이시며 더 이상 자신을 생각하지 말 것을 당부하셨다.
하지만 내 마음속 어린아이는 아직도 매일 밤 몰래 아빠를 찾고 있다.
아빠가 계시는 동안엔 왜 이런 일이 우리에겐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생각지 못한 이별 앞에 당황했고 당황스럽게 맞이한 이별을 적응하느라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빠와의 시간은 헤어지던 그날 머물렀지만 나의 시간은 멈추지 않고 계속 돌아서 지독하게 그리워하는 동안 결혼도 하고 출산도 하고 그렇게 소중한 인연들이 새로운 목록에 저장되었다. 지독하게 그리워하는 동안 얻은 인연들이라 늘 이별이 두려워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늘 끝을 염두에 두고 하루하루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에 흠뻑 빠져 살았다. 이 시간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도 알았고 우리가 쌓는 이 시간이 다시 그리워질 거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행복이 예고 없이 끝나기 전에 내 아이들에게 꼭 이야기해주리라 마음먹었다. 우린 언제든 헤어질 수 있고 그래서 이렇게 사는 동안 함께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건지, 그 소중함을 잃지 않기 위해 사는 동안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 그리고 안타깝게 잃고 나면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를... 말이다. 그렇게 누군가를 미치도록 그리워하면서 알게 되었다. 우리가 아이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무언가’가 아니라 ‘무언가를 대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말이다.
장자를 읽어보면 부모의 죽음 앞에서도 의연해질 것을 이야기한다. 삶과 죽음은 모아졌던 기가 흩어지는 하나의 자연법칙일 뿐이니 슬퍼하지도 기뻐하지도 말라고 한다. 그리고 강신주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우리가 죽음에 슬퍼하는 이유는 우리가 영원히 살 것처럼 착각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아무리 그런 말을 들어도 마음이 영 나아지지 않았다. 난 절대 의연해질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아직도 한 번쯤은 아빠를 만나보고 싶고 아빠 냄새를 한 번이라도 더 맡아보고 싶다.
동화책 샤를로트 문드리크의 <무릎 딱지>에 보면 죽은 엄마를 그리워하는 아이의 이야기가 나온다.
처음 겪어보는 이별 앞에 어쩔 줄 모르는 아이는 화를 내기도 하고 엄마의 냄새를 잃지 않기 위해 창문을 꼭꼭 닫고 다친 무릎의 딱지를 계속 떼어내기도 한다. 아빠 역시 짜면 물이 뚝뚝 나올 것처럼 매일 울기만 한다.
딸을 잃어버린 할머니는 손자와 사위가 있는 집에 온다.
늘 괴로운 하루하루를 보내는 이 부자에게 할머니는 사랑하는 이가 죽고 나면 주변 사람들이 가져야 할 마음에 대해서 가르쳐 주신다. 아이에겐 엄마는 가슴에 있다며 이곳(아이의 가슴)을 떠나지 않는다고 가르쳐주시고 사위에겐 빵을 반으로 갈라 꿀을 지그재그로 바르는 일을(매일 딸이 했던 행동) 가르쳐주신다.
이 두 가지만의 처방으로 부자는 다음날부터 예전과 같은 생활을 하게 된다.
비록 곁에 엄마는 없지만 그 둘은 다시 예전처럼 잘 살아간다.
할머니는 사위에게 그리고 손자에게 자신의 딸의 존재를 잃어버리라거나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저 간단한 방법으로 가슴에 남아있는 엄마의, 아내의 온기를 오래 간직할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그 동화 속 할머니처럼 아이에게 우리 가슴에 그리워하는 사람의 온기를 오랫동안 남길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엄마로서 아이에게 꼭 가르쳐야 할 일이란 걸 깨닫게 된다.
우린 언제고 헤어질 수 있지만
그래서 지금 이렇게 함께할 때 열심히 그리고 많이 사랑해야 한다고.
그렇게 나눈 사랑이 진하면 진할수록 서로가 나눈 온기는 오랫동안 영원할 거라는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