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하면 안 되나요?

by 묘연


“안돼. 하지 마!, 하지 말라고!!! 하지 말랬지!!!!!!!!!!!.”
결국 큰소리를 내고 말았다.


뒤돌아서서 쿵쾅대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미안해서인지 자책감을 떨쳐 버리고 싶어서 애써 변명거리를 생각해 본다.
'난 엄마지 신이 아니니까. 엄마도 사람이니까. 엄마도 처음이니까. 서툰 게 당연해... '
그렇게 변명거리를 찾아내고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는 건.
내 큰소리에 깜짝 놀라 흔들리던 아이의 커다란 눈동자가 내 마음에 들어와 자꾸만 흔들리고 있어서이다.
한 번만 더 참을걸...
안된다는 말을 민감하게 생각하는 아이인 줄 뻔히 알면서.
아직 자기 자신을 컨트롤할 줄 모르는 아기인 줄 뻔히 알면서.
왜 아이맘을 내 맘같이 생각했을까.

대부분의 소리 지르면서 하게 되는 말은 "안돼! 엄마가 하지 말랬지!” 다.
뭘 그렇게 하지 말라는 건지... 진지하게 따져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절박하게 우는 아이 앞에서 냉정하게 거절해야만 했던 내 마음에 대한 스스로의 확신이 없어서였다.
정말 하면 안 되는 일이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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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은 애가 아니라 내가 부린 것 같다.
괜히 속상해져 한구석에 앉아 핸드폰을 열어 그림을 검색하고는 나선형이 복잡하게 그려진 그림 하나를 골라 눈으로 그 나선을 따라가본다.
그렇게 그림에 집중하고 나면 마음이 스르륵 나도 모르게 풀린다.
이 그림의 작가는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작가 훈데르트 바서 Friedensreich Hundertwasser(1928-2000)다.
내가 이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건 아래 사진을 통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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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에 휘어져있는 자를 가지고 있는 작가의 얼굴은 무엇이 우리 삶의 기준이어야 하는지를 묻고 있었다. 그리고 인간이 만들어놓은 반듯한 자는 더 이상 그에게 있어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듯했다.
이 사진을 보고 나니 작가의 작품들이 몹시 궁금해졌고 전시를 보고 책을 보면서 접한 그의 수많은 작품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회화 작품이나 건축에는 인위적인 반듯함이나 직선 대신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선들이 사용되었고 그 작품들 속엔 늘 인간과 자연이 섞여 어우러져 있다. 예를 들면 잔디밭이 건축물의 지붕이 되거나 건물 밖에 나뭇잎들이 무성히 나있어 마치 나무 같은 건물들, 혹은 인간의 얼굴과 자연이 섞인 회화 작품들이 많은데 그것을 보면 그가 작품을 통해 전하려고 했던 메시지가 어떤 것이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그건 인간과 자연이 함께하는 삶. 분류되고 분리되지 않은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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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하루에 열두 번은 더 안된다고 말하면서 그게 옳은 일인지 의문이 들 때가 많지만 그렇다고 내버려 두면 너무 제멋대로 커버릴까 걱정이 된다. 늘' 적당히'가 답이겠지만 쉽지가 않다.
그럴 때면 이 작가의 생각들을 곱씹어 보면서 보게 된다. 내게 이런 고민이 있다고 얘기하면 그는 뭐라고 했을까?
"위험하지 않다면 그대로 놔둬도 괜찮아요. 멋대로 자라는 게 아이입니다. 크면서 이런저런 경험을 하면서 알아서 깎이고 알아서 닳고 알아서 동그랗게 변할 거예요. 그리고 당신의 기준이 정말 맞는 건지 한번 더 생각해보세요."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훈련되지 않은 순수한 선으로 평생 그린 작품들을 보면 그는 분명 아이를 자연스럽게 두라고 말했을게 분명하다. 만들지 않아도 만들어지는 것을 보여준 작가니까 말이다.
그리고 엄마들에게는 아이의 행동을 제재할 땐 그게 정말 하면 안 되는 위험한 것인지 혹은 자기가 만들어낸 아집에 쌓인 잣대인지 생각해보라고 했을 것 같았다. (자를 휘어 보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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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늘 자연과 함께 자연스러운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살고 싶어 했고 자연스럽게 순환하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는 자신의 이름 또한 Friedensreich Hundertwasser 평화로운 대지에 흐르는 백 개의 물이라는 뜻으로 순환하는 물의 의미를 담아 이름을 지었다. 그리고 작품엔 나선의 형태가 많이 나타나는데 그것은 순환하는 삶과 죽음의 메타포로서 불교의 윤회사상과 많이 닮아있다.(실제로 그림에 한문으로 된 사인도 있는 것으로 보아 분명 동양 사상에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마음이 복잡할 때 그의 작품에 나타난 나선을 눈으로 쫓아가며 커다란 인생을 생각하고 작은 순간의 평온을 찾는 것이 우연의 일치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마치 불교의 만다라 같은 느낌이었다.
그의 작품을 보면 늘 양보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인간이 자연에게, 자연이 인간에게, 건물들이 자연에게, 자연이 건물들에게 서로 양보하면서 자잘하게 밀고 당기면서 생기는 삐뚤삐뚤한 선들은 쿨하거나 아찔하진 않지만 우리의 삶의 모습과 같아서 괜히 마음이 놓인다.

속상한 건 늘 사소한 일들이다.
바쁜 아침에 모르고 열어놓은 쌀통에 쌀을 한줌 한줌 꺼내고 있던 아이에게 소리 지른 게 너무도 미안하게 느껴진다.
작은 일에 일희일비하는 나 자신이 문득 우습게 느껴진다.
쌀을 퍼내고 퍼 담아보는 일이 어떤 건지 다 알고 있어서 우린 거기에 더 이상 호기심이 없다. 너무도 잘 안다. 어떤 촉감인지, 어떤 냄새인지, 어떤 맛인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치워야 할지도...
다 알고 있다는 것은 우리도 언젠가 다 한 번쯤은 해봤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아이에겐 그 모든 게 처음인 것을.
정말 의문이 든다.
여태 아이에게 하지 말라고 했던 일들...
정말 하면 안 되는 것이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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