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축해진 아기 엉덩이... 답답한 기저귀에 온종일 쌓여 있는 엉덩이가 불쌍해 잠깐 기저귀를 벗겨놓은 순간 아이는 바닥에 오줌을 갈기고 만다.
아휴 정말...
매트 밑으로 들어간 노란 오줌... 나는 아이 다리와 발도 닦여야 하고 방도 닦아야 하고 매트도 닦고 말려야 하고... 그러면서 아이가 저지레하지 못하게 말려야 하고 또 걸레를 빨아야 하고 널어야 하고...
그런 생각을 하니 가슴이 마냥 답답하다.
얘가 언제 커서 혼자 화장실 가서 오줌을 눌까.
아니 언제쯤 커서 자기가 알아서 모든 걸 하게 되는 걸까.
이제 겨우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를 보면서 까마득한 미래를 떠올리고는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엄마도 너네를 다 키워놨더니... 그게 인생의 전부더라. 인생 별거 없는 것 같아.”
그래. 그렇게 엄마가 마음을 다해 키우셨던 아이는 자라 또 다른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젊고 에너지가 넘쳤던 엄마는 이제 할머니가 되었다.
어느새 기억 속 첫 장에 있는 우리 엄마의 나이가 되어 엄마가 된 나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고 있노라니 여태껏 내가 살아온 인생과,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인생이 퍼즐처럼 맞추어져 한 여자의 일생이 함축된 지도처럼 펼쳐져 보인다.
그냥 이게 다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
인생 그렇게 특별할 것도 없다는 걸 알게 되는 것.
어릴 적 가지고 있었던 새로움에 대한 호기심들이 점점 무뎌지고 뻔해지고
새로운 것이 점점 줄어들어 사는 것이 따분해지기도 하는 것.
그게 어른이 되었다는 증거일까.
그렇다면 내가 어릴 적 그렇게 궁금했던 어른도 뭐 별것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막 세상을 알아가는 아이는 모든 게 신기하다.
매일매일의 바람과 해가 그리고 계절이 바뀌는 게 신기하다. 겨우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는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을 기뻐하고 집 밖에 있는 화단에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가 신기해 쉽게 지나치지 못한다.
매일 지나가는 아파트 앞 화단이지만 아이는 매일매일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꽃이 매일매일 신기한 모양이다.
무엇이 그렇게 재밌는 걸까? 아이를 따라 자세히 꽃을 보고 보니 같은 꽃이라도 한 번도 같은 모습일 때가 없고 한 송이 한 송이 똑같이 생긴 꽃도 없다.
아이는 그런 세상이 새롭고 신기해 만지려고 하고 보려고 하고 들으려고 한다.
또 어떤 날은 그런 세상이 미치도록 궁금한 나머지 쉽게 잠들지도 못한다.
나도 저만큼 어렸을 땐 저랬겠지.
세상엔 변하지 않는 게 없고, 같은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겠지.
그래서 너무 신기했겠지.
문득 앤디 워홀의 그림이 떠오른다.
공장에서 찍은 같은 것 같이 똑같아 보이는 작품들.
심지어 이미지조차 우리가 흔히 슈퍼에서 볼 수 있는 통조림이나 TV에서 볼 수 있는 스타들의 얼굴의 이미지를 차용했기에 난 그의 작품에서 감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 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작품은 마치 슈퍼에 파는 통조림처럼 나란히 진열되어 아무 감정도 없이 하나하나 팔려나갔다. 그래서 그런지 아무런 감동이 없는 그의 작품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예술작품이 ‘희귀템’ 이어서 가치를 인정받았던 시기에 예술작품을 공산품의 제작 방식을 도입하여 예술작품과 상품의 경계에서 예술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가치를 심어주었기에 유명해진 작가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같은 날 문득 그의 작품이 생각나는 걸 보니 그것만이 다는 아닌 것 같다.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그림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하나가 모두 다른 그림들.
종류가 다르고 색이 다르고 정도가 다른 그의 그림에서 사소한 차이를 느끼며 아들이 느꼈을 하루하루의 새로움을 문득 발견한다.
부끄럼이 많고 섬세하고 감수성이 풍부했던 작가 앤디 워홀이 숨겨둔 감성이 문득 다가온다.
세세한 차이에서 오는 감동...
그래. 그가 차가운 작품을 했을 리 없지...
‘세상에 똑같은 것은 없어.’
그의 그림에서 찾게 된 소소한 차이 읽게 되니 그의 조용조용하고 나긋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리고 아이가 세상을 바라보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이 떠오른다.
그래. 똑같은 꽃은 없다.
어제 핀 꽃과 오늘 핀 꽃이 다르거늘
하루가 다 같은 하루라고 착각했다.
내일도 오늘처럼 살 거라고 잘못 생각했다.
너와 나 우리가 영원히 살 거라고 착각했다.
나는 늘 이 나이 이대로 늙지 않을 거라고 착각했고
죽지 않을 거라고 착각했다.
아이의 하루하루의 성장이 나의 하루하루 죽어짐과 같다면 오늘 하루를 힘들고 지루하게만 바라볼 여유는 없을 텐데... 왜 요 며칠 아침에 눈을 뜨면 하루의 일과가 시작되는 게 버겁고 지루하게만 느껴졌을까.
별것 없는 인생이기에 사소한 것에 관심을 기울이고 하루하루 달라지는 햇살과 바람에 대해 이야기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하루하루 다르게 커가는 아이를 어제보다는 오늘 더 새롭게 사랑해야 한다는 걸 왜 잊고 있었을까.
걸레질을 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아이는 자신이 바닥에 싸놓은 오줌이 궁금해 또 손으로 이리저리 만져보고 축축해진 발로 요리조리 걸어본다.
그래도 괜찮아.
지금만 할 수 있는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