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샤오강의 작품에 대한 엄마의 이야기
아이와 눈이 마주친다.
나도 모르게 눈이 커지고 동공이 열린다.
눈 따라 마음도 무방비 상태로 열린다.
시선을 피하지 않고 계속 눈을 쳐다보고 있으면 아이 역시 내 눈을 빤히 쳐다본다.
깜박임도 없이 서로를 보고 있지만 시선을 회피하고 싶다거나 불쾌한 느낌은 전혀 없다.
서로의 눈을 통해 바라본 것이 서로의 생각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이기에 머뭇거림이 없다.
그렇게 눈동자 뒤에 있는 아이의 영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이도 내 눈동자 뒤에서 미소 짓고 있는 나를 바라본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아이는 따라 웃는다.
생각하지 않는 눈.
말하지 않는 눈.
바라지 않는 눈.
그렇게 바라보는 눈.
아이들의 눈은 그래서 참 투명하다.
아기들도 눈에서 나오는 파장에 담긴 사랑을 느낀다.
서로의 눈을 쳐다보고 눈빛을 나누고 미소 짓는 행위가 거듭될수록 아기들은 포동포동 사랑이 찐다.
이런 행위는 점점 발전해서 놀이가 된다.
사랑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놀이.
서로의 눈을 가리고 있다가 순간 눈을 마주치는 놀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게 되는 놀이.
서로의 마음을 발견하게 되는 놀이.
서로의 눈빛을 기억하게 되는 놀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을 확인하는 놀이가 있다.
바로 ‘까꿍 놀이’다.
아이는 자신을 바라보는 내 눈을 발견하게 될 때면 세상 기쁘게 웃었고 행복해한다. 새까맣고 깨끗한 동굴 속에 담겨있는 아이의 마음이 저벅저벅 걸어와 내 혼탁한 동굴을 두드릴 때면 꽉 다물어진 자물쇠가 스르륵 그냥 열린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아무것도 섞여있지 않은 웃음을 웃었고 아이는 아무 의심 없이 따라 웃었다.
그렇게 눈은 서로의 마음을 전달하는 중요한 매개체가 된다.
아이의 까만 눈동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한 그림이 떠올랐다.
흐릿한 장면 속에 또렷한 눈망울들이 그려진 그림. 인물에 등장하는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까맣고 또렷한 눈동자. 그것을 통해 발견하게 되는 존재의 생명력을 표현한 그림이 있다.
옛 사진 같은 오래된듯한 흑백 그림에 선명하게 지금껏 살아있는 눈동자를 그린 그림. 장샤오강의 그림들이다. 장샤오강은 1958년에 중국에서 태어난 갓 환갑이 넘은 아저씨다. 우리나라도 환갑에 접어든 아줌마 아저씨들이 그랬듯 격동의 시대를 지냈던 분이다.
역사적으로 1960-1970 마오쩌둥이 사회주의를 주장하던 문화 대혁명이 있었던 시기였고 1989년엔 민주화를 주장하는 천안문 사태가 있었다. 사회적으로 이념들이 서로 맞서고 이랬다 저랬다 방황하는 동안 중국의 많은 국민들은 상처를 받았고 서로 헐뜯고 다치고 죽었다. 이런 풍파를 겪고 살아낸 그가 그린 가족사진을 그린 그림은 뭔가 모르게 짠하다. 우연히 발견한 옛 가족사진을 모티브로 그렸던 개인들의 사소한 모습들이 감수성으로 받아들이기 이전에 그림에 나타나 있는 분위기와 메시지가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색깔이 스며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이미 지나간 기억들, 흉터로 남아있는 상처들을 안고 살았던 그들. 이제는 자글자글한 주름과 거친 피부 결이 그간의 삶의 흔적들을 이야기하겠지만 그의 작품에 나타난 옛 사진들의 사람들에겐 주름도 거친 피부도 없다.
상처가 되는지도 몰랐던 옛날의 그때, 그저 절제된 표현으로 끔찍한 환경을 이겨낸 그들의 먹먹함과 무심한 표정들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더 마음을 울리게 만든다.
그런 걸 다 모른다 해도 이 그림 한 장은 역사적인 사실과 사연을 떠나 그의 그림에서 표현된 뿌연 그림 속 뚜렷한 눈동자는 흐릿한 기억과 또렷한 마음으로 표현되어 작가가 표현하고 싶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메시지가 나의 눈을 통해 마음으로 전해진다.
그저 사진사가 시키는 대로 카메라 앞에 무표정한 채로 앉아있는 가족들... 그렇지만 눈빛만큼은 생생하게 살아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
삶에 대해, 인생에 대해, 역사에 대해, 문화에 대해 그리고 그 속에서 아프고 힘들었던 사연에 대해, 그리고 그 뒤에 숨겨진 생명력과 마음에 대해.
그의 작품을 보니 아이와 눈 마주치며 나눈 사랑의 이야기가 우연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눈은 생각이 아닌 마음을, 사실이 아닌 진실을, 상황이 아니라 상태를, 기억이 아니라 추억을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감각이 아닌 감정을 움직인다.
그래서 아이와의 눈 마주침은 매우 중요하다. 언어로 배울 수 없는 것들을 서로 나누고 표현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나눈 눈빛은 잊히지 않으니까 말이다.
시간은 정처 없이 흐르고 그 속에서 나이가 들어가고 생각이 바뀌고 모습이 변하지만 한 가지 오래 남아 있는 건 우리가 살아가면서 나누는 따듯한 눈빛이다.
장 샤오강의 그림에 보이는 것처럼 특히나 눈에 담긴 진실한 마음은 영원히 남는 것 같다. 살면서 가장 중요한 건 서로 나누어야 하는 따듯한 눈빛이라는 걸 알게 하는 그의 작품이 오늘따라 마음에 와 닿는다.
아이의 까맣고 깊고 순수한 눈.
아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깊고 맑고 순수한 검은 눈동자에 사랑 한가득 담아지도록...
비록 내 눈은 혼탁하고 어지러울지라도 최대한 따듯함을 담아 아이에게 보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