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다는 건

by 묘연

어쩌다 보니 결혼을 하고 애를 낳아서 그렇지.

‘엄마’라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어서 그렇지.

그냥 나보다 더 미약한 존재를 키워야 해서 그렇지.

사실 엄만 아직도 너처럼 사탕과 젤리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고 과자와 아이스크림이 제일 좋아.

낮엔 낮잠도 자고 싶고 아홉 시에 자서 일곱 시에 일어나면 하루를 정말 신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아.

자고 일어나 아무 걱정 없이 내가 좋아하는 인형들을 거실 바닥에 쫙 깔아놓고 하고 싶은 얘기도 하고 역할놀이도 한번 해보고 싶어.

누군가가 나를 서운하게 하거나 세상의 벽이 높다는 걸 실감하게 되는 날은 그냥 이불에 얼굴 파묻고 소리소리 지르면서 분이 풀릴 때까지 울어보고 싶고 그럴 때 누군가가 내 어깨를 토닥여 주었으면 해.

안아달라고 하면 누군가가 날 덥석 들어 안아주었으면 좋겠고 가끔은 누가 날 안고 빙빙 돌려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도 있어. 그러면 누구보다 높은 목소리로 신나는 기분을 표현하게 될 것 같아.

길을 가다 발이 아프거나 다리가 아프면 누가 날 업어줬으면 좋겠고 어떤 날은 유모차에 반듯이 누워 하늘을 보면서 집에 오고 싶을 때가 있어.

시간이 허락한다면 티브이도 마음껏 보고 싶고,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는 대신 네가 보는 만화영화도 같이 보고 싶어.

스마트폰도 마음껏 하고 싶지. 누가 그만 하라고 할 때까지 말이야...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깔깔대고 웃고 싶고, 그 웃긴 일을 무한 반복하고 싶어. 더 이상 웃음이 나지 않을 때까지...

먹고 자고 숨만 쉬면서 사랑받고 싶어.

내가 오늘 뭘 했는지 보다 어떤 기분이었는지가 더 중요하고 싶어.

나도 어릴 땐 마냥 그랬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네.

넌 아직 모를 거야. 어른이 된다는 게 어떤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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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면서 달라진 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전보다 훨씬 줄어들었고, 꿈보다 현실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매 순간 깨닫게 돼.

그리고 내키는 대로 행동하면 안 되지. 내 기분과 내 상태를 숨겨야 한다는 거야.

참고 또 참아야 해. 예를 들면 힐을 신고 밖에 나갔다가 뒤꿈치가 까져도 아프다고 울면 안 되는 거지.

그리고 나보다 잘난 인간들이 지천에 널려서 가끔은 나 자신이 이 세상에서 더 이상 쓸모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이는 일이 많아졌다는 거야.

그런데 꼭 나쁜 것만은 아니야. 어른이 되니 어렸을 땐 몰랐던 사랑을 원 없이 할 수 있게 되었거든.

어렸을 땐 느껴보지 못한 판타스틱한 오르가슴이나 성생활을 즐길 수 있게 된 건 아주 좋았지.

물론 좋았던 만큼 아프고 힘들게 너를 낳고 상상하지 못할 무거운 책임감들이 나를 ‘엄마’라는 이름으로 강제로 서있게 만들긴 했지만 말야.

너와 함께 웃고 즐기는 시간 동안에도 난 늘 너의 밥, 너의 기저귀, 너의 컨디션을 걱정한다는 게 많이 다르겠지만 그래도 함께 있을 땐 걱정거리와 생각들을 잠시 내려놓고 네가 꾸며가는 세상에 함께 있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

상처받을까 두려워 다른 사람들에겐 함부로 나눠주지 못했던 진심을 너와 아낌없이 나누면서 순수하고 솔직한 내 모습을 발견하는 시간이 너무 좋았지. 어쩌면 이러다가 문득 나도 모르게 잃어버린 순수함을 다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

너와 같이 과자도 먹고, 사탕도 먹고, 젤리도 먹고, 만화영화도 같이 보고, 그림책도 같이 보고, 레고도 같이 하고, 인형 놀이도 같이 하면서 비슷한 놀이를 반복한다 해도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하줄 알게 되었지. 그리고 너와 함께 웃는 순간엔 그 웃음을 계속 반복해서 웃고 싶어서 웃는 이유를 반복하며 웃고 또 웃었어. 그렇게 반복할 때마다 새롭게 웃는 것이 너무 좋았어. 웃을 때마다 표정 관리하지 않아도, 훤히 드러나는 잇몸을 가리지 않아도 되는게 너무 좋았지.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밤이 되면 잠자는 너의 얼굴을 보면서 우리의 행복한 시간을 이야기 하고 우리가 만날 수 있었던 행운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었어. 아무래도 어른이 되면 가장 좋은 점은 엄마가 되어 너와 함께하는 ‘이 시간’이 진짜 좋은 시간이라는 걸 알게 된다는 거야.

넌 이 시간이 얼마나 행복한지, 또 얼마나 소중한지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어른이 된다는 것.jpg 고마워...날 어른으로, 엄마로 만들어 주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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