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으로의 삶

by 묘연

조명이 켜진다.

밝아진 세상 밖으로 나와 눈꺼풀을 들어 올리니 모든 무대가 세팅되어 있다.

커튼이 올라가고 무대가 시작된다.

식탁에 차려진 따듯한 밥을 한 술 뜨는 일, 창밖을 내다보면서 커피를 마시는 일, 밖에 나가려고 운동화 끈을 매는 일, 하얀 노트에 검은 글씨로 마음을 불어내는 일...

역할은 운명이란 감독 아래 정해지고 사건과 상황은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일어난다.

그 무대의 주인공은 바로 나 자신.

세상은 나를 위해 준비되어 있다.

가족들은 나를 행복하게 하고 눈앞에 놓인 일은 나만이 할 수 있으며

내가 하는 이야기는 곧 삶의 의미가 된다.


1막이 내리고 2막이 열린다.

새로운 인물의 등장.

인꽃이라 불리는 존재.

아기는 모든 관객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다.

내가 낳은 아기.

열 달 고생해서 아이를 낳은 건 나인데 출산 직후부터 모두의 관심사는 내가 아닌 아이가 된다.

내가 아닌 나의 아이를 보기 위해 면회를 오는 가족들.

신생아실 유리창 너머 아이의 손가락 발가락 하나의 움직임에도 울고 웃는 사람들.

의미 없는 배넷 미소에 어쩔 줄 모르는 사람들...

그리고 나와 함께 지내는 아이가 궁금하고 보고 싶어 나를 만나러 오는 사람들.

일 년을 열심히 키워낸 아이의 생일잔치에서 아팠던 내가 아니라 아이가 박수받는 순간 삶의 주인공 자리를 아이에게 내어주었음을 인정한다.

관객들을 탓하지 않는다. 나 또한 아이의 팬이 되어 있으니까.


지금 내 역할은 아이를 키우는 것이다.

내가 없으면 굶어 죽을 수도 있는 나약하고 연약한 아이들을 위해 나의 육체와 시간이 존재한다.

전혀 빛나지 않는 시간. 전혀 주목받지 못하는 생활.

기꺼이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모든 걸 줘야 하는 상황.

조연이 된 사실은 조금 슬프지만 주연을 맡고 있는 아이가 나의 무대에서 내려가 자신의 무대에 스스로 설 수 있을 때까지 기꺼이 조연의 역할을 맡아야 한다.

지금 이 무대는 나의 이야기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리고 관객들은 조연의 감정과 상황에는 별 관심이 없다.

내가 먹고 싶은 것보다는 아이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들고

외출할 때에 예쁜 옷을 입기보다는 밖에서도 수유를 할 수 있는 옷을 입고

가방에 화장품과 향수 대신 아이의 기저귀와 여벌 옷 그리고 간식과 물을 챙긴다. 하지만 그런 일들은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다.

아이가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놀고 싶을 때 놀게 하는 것이 내가 맡은 역할이기에 내가 무얼 먹는지, 무엇을 입는지, 무엇을 들고 있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는다. 엔딩에 내 이름이 아닌 성현이 엄마, 하영이 엄마로 표기되는 2막...

그래도 괜찮은 건 2막의 무대는 언젠가 끝이 난다는 것이고 3막에는 다시 주인공을 하고 있을 나를 상상하기 때문이다.


주연은 방황을 하지만 조연은 방황을 하지 않는다.

주연은 연기력으로 빛이 나지만 조연은 존재감으로 빛이 난다.

주연의 이미지는 강렬하지만 조연의 이미지는 은은하다.

주연은 젊을 때 빛이 나지만 조연은 익었을 때 빛이 난다.

그리고 그렇게 열심히 내공을 쌓고 주인공이 된 다음엔

그 자리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노하우가 가득 쌓여 더 멋지고 풍성한 인생의 무대를 만들 수 있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 알게 모르게 커지는 나의 무대.

그래서 지금은 조금 초라하지만 엄마로서의 삶은 매우 의미가 있다고 쓴다.



엄마역할그림 사본.jpg


이전 21화엄마의 비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