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되기 전까지 수유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가슴에서 젖이 나오면 어떤 기분일까? 어떤 느낌일까?
아이가 빨면 어떻게 자동으로 젖이 나올까?
젖이 유륜에서도 나오는 걸까?
남편이 조금만 애무해 줘도 간질간질 미칠 것 같은데 어떻게 아이에게 젖을 먹일 수 있을까?
경험해 보니 모유 수유는 인체 신비의 결정체였다.
아이가 배고플 때쯤에 젖이 돌았고
배고픈 아이를 보고 있으면 저절로 젖이 새어 나왔고
아이가 먹고 싶은 만큼 젖이 나왔다.
아이는 젖 냄새로 엄마와 엄마가 아닌 사람을 구분했고
울다가도 젖을 물리면 울음을 그쳤다.
엄마는 젖을 물리며 몸을 회복했고 아이를 키울 수 있는 마음과 힘을 길렀다.
서로 안고 안겨 있을 때는 심장이 천천히 뛰면서 서로에게만 집중하며 교감을 할 수 있는 최고의 시간이었다.
그렇게 수유는 신비하고도 신성했다.
첫 수유는 아이를 낳고 4시간 후쯤 시작되었다.
출산 후 무통주사가 조금 괜찮아질 즘 수유실에서 콜이 왔다. 수유실에 들어가 보니 처음 보는 엄마들이 소파에 둘러앉아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었다. 문 앞에 쓰여있는 대로 손을 씻고 세정제로 소독한 다음 소독솜으로 가슴을 소독하고 손목 보호대용 속싸개를 챙겨 신생에 실에 벨을 누르고 엄마들 옆에 앉았다. 머리의 지름이 10센티가 될까 한 작은 아이, 크게 벌려도 내 엄지손가락만 한 입을 가진 작은 아이가 간호사에게 안겨 나왔다. 처음이어서 나만 어색한 건가 싶지만 병원에서 수유를 하고 있는 엄마들도 경산 모를 빼고는 분명 다 처음이었을 거다. 어색하지만 자연스러운 풍경. 처음이지만 익숙한 엄마들의 모습이 어딘가 모르게 신기했다.
수유는 본능이라지만 간호사 선생님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자세가 적당한지, 가슴이 뭉친 곳은 없는지 조물조물 만져보시기도 하고 요리조리 유두의 모양과 상태를 체크하시고 자세를 권유해 주신다. 그리고 여러 가지 팁들을 알려주셨다.
아이의 입술 주변을 톡톡 두드리면 본능적으로 아이가 입을 벌리는데 그때 유두를 쑥 집어넣는다. 너무 얕게 물리면 가슴이 매우 아프므로 목구멍에 넣는다는 느낌으로 깊숙이 넣어주고 한쪽에 15분씩 양쪽을 골고루 물린다. 아이가 15분이 넘어도 쉬지 않으면 아래턱을 지그시 눌러 빼면 유두에 상처 나지 않게 자세를 바꿀 수 있다. 그렇게 신생아 때는 하루 대략 2시간 간격으로 먹게 된다.(경우에 따라 수유 텀은 각자 다 다르다) 신생아들은 잠을 많이 자기 때문에 수유하다가 잠드는 경우가 많다. 그럴 경우 아이가 배가 고파 짧게 자고 깰 수 있으니 수유하는 동안 아기의 귀를 만져주는 것이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 먹이는 동안 갓 피어난 잎사귀 같은 귀를 만지고 얇은 꽃잎 파리 같은 아이의 피부를 만져보면서 앞으로의 험한 세상에 의지할 수 있는 단단한 엄마가 되겠다는 다짐을 했다.
엄마의 몸이 곧 아이의 몸이다. 젖은 나의 몸이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식습관과 영양상태가 매우 중요했다. 아무거나 먹지 말아야 하고 몸이 아프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임신했을 때도 물론 중요하지만 수유기에는 아이의 영양상태는 곧 엄마의 영양상태이므로 골고루 잘 먹어야 하고 약이나 건강 보조제도 수유부가 먹을 수 있는 건지 잘 알아보고 먹어야 한다. 수유를 오래 하다 보니 술을 안 먹는지가 한참 되었다. 커피는 디카페인을 종종 먹기는 하지만 그나마도 커피를 마시고 수유를 할 때면 텀을 두거나 손으로 좀 짜 낸 다음에 먹이는 게 좋다. 경험상 커피를 마시고 수유를 하면 확실히 아이가 낮잠을 잘 못 자는 경향이 있었다. 이유식이나 다른 음식을 대체하지 못하고 오로지 젖만 먹는 신생아 기간에는 엄마가 특히 음식을 조심해야 할 것 같다.
첫애 때는 아토피로 고생을 했다. 가슴과 유륜까지 아토피가 심하게 와서 긁다 보니 진물이 생기고 시커멓게 피부가 변해 수유를 못할 상황이었다. 피부과에서는 무조건 단유를 하고 치료를 해야 한다 했지만 정말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아이는 굶으면 굶었지 분유는 한방울도 먹지 않아 할 수 없이 수유를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어떤 병원이든 아파서 가면 무조건 자신이 모유 수유 중이라는 것을 밝혀야 한다. 그래야 수유부도 먹을 수 있는 약을 처방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은 확인되지 않은 약들도 지어주는 경우가 있다. 확실히 모를 땐 마더세이프(1588-7309)에 전화를 걸어 처방전에 적힌 약들을 먹어도 되는 건지 확인해야 한다.
결국 한참 뒤에야 아토피는 자연치유가 되었고 괴롭고 긴 시간을 약없이 견뎌냈다. 엄마는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먹지 못하고 아파도 약을 먹지 못한다. 고로 엄마는 아파서도 안된다.
아이가 배고플 시간이 되면 저절로 젖이 흘러나와서 옷을 적셨다.
손목을 꽉 쥐었다가 풀면 전기가 찌릿 오는 것처럼 가슴에 전기가 흐르면서 젖이 돈다. 그럴 때 유두와 유륜은 딱딱하게 긴장 되고 마치 남자의 발기된 성기처럼 처진 유두가 봉긋 솟아오르고 사출이 시작된다.
사출이 너무 세면 젖이 일미터도 날아간다. 마치 무라카미 다카시의 작품 '히로폰'처럼 말이다. 이럴 경우 아이가 사레들릴 수 있으니 적당히 손으로 짜내고 물려야 한다.
따듯하고 작은 아이의 입속에서 가슴은, 아니 젖은 시원하게 비워진다.
신기하게도 손으로 짜내거나 유축기를 사용하는 것으로는 젖이 완전히 비워지지 않는데 아이가 빨아내면 정말 말끔히 비워진다. 그러고 나면 부풀었던 가슴이 진정되면서 매우 편안한 상태가 된다. 젖이 맥시멈으로 차오른 가슴은 평소보다 훨씬 커진다. 그리고 젖이 가득 차오른 다음에 알게 되었다. 내 가슴이 짝가슴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이 또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단유를 하고 나면 원래대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많이 커지는 쪽이 조금 더 우울해지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처음에는 젖양이 아이의 양에 맞춰지지 않아서 넘치거나 부족하거나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수유를 오래 할수록 아이가 필요한 양만큼 맞춰진다. 나는 두 번 다 1개월에서 3개월 사이에 아이가 먹는 양보다 젖이 너무 많이 돌아 고생했다. 아이는 그만큼 많이 먹기도 했는데 덕분에 백일 때 아이들의 사진을 보면 우량아도 그런 우량아가 없었다.
아이를 가슴팍에 안고는 젖을 물리면 아이는 세상 진지하게 젖을 빤다.
작은 입이 얼마나 귀여운지. 귀여워 보이지만 사실 이 순간은 생사의 문제로 작고 연약한 아이가 내 가슴에 매달려 목숨을 유지하는 아주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거다.
많이 지친다. 처음 몇 번은 신기한 마음에 힘든지 모르고 하지만 이게 일주일, 한 달, 일 년이 되면 힘이 든다. 아이가 아주 작았을 때는 수유쿠션을 이용해서 아이를 쿠션에 눕혀놓고 허리를 펴고 두 손 자유롭게 수유를 할 수 있지만 아이 몸집이 조금 큰 다음에는 쿠션이 너무 높아 사용할 수가 없어서 다리 위에 눕히고 구부정하게 앉아서 수유를 하기도 했다. 자세가 좋지 않으면 않을수록 오랜 수유를 하는데 빨리 지치는 것 같았다.
두 아이 모두 돌까지. 나름 오래 했다면 오래 한 모유 수유. 모유 수유를 고집한 이유는 나의 의지보다는 아이의 의지가 컸다. 모유 수유를 절대적으로 지지하기 때문은 아니었다. 엄마의 몸에 염증이 있거나 좋지 않은 바이러스가 있다면 분유 수유를 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모유 수유나 분유 수유는 밥을 할 때 콩을 섞을지 현미를 섞을지 정도의 차이일 뿐이니까. 어떤 수유든지 간에 이 일은 아이를 살리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가 담긴 엄마의 정성과 사랑이 담긴 일이 분명하다.
요즘 둘째의 단유를 시작했다. 우리 딸은 백일에 첫니가 났다. 몇 번 깨물리는 공포와 고통에도 이어온 모유 수유였는데 요즘 내 몸은 약해질 대로 약해져 병원에서 휴식과 단유를 권유했기 때문이다.
아직 젖을 말릴 수 있는 약을 먹지는 않고 분유 수유 횟수를 늘이며 모유 수유 횟수를 줄이고 있다. 이제 하루에 1-2번으로 횟수가 줄었고 분유를 먹이기 시작했다. 마음먹기 따라 달린 건지 단유를 결정하고 나니 젖이 자연스레 줄었다. 이 또한 너무 신기하다. 끊으려고 마음을 먹었고 젖양이 줄다 보니 아이가 젖을 빨고 있는 느낌이 간질간질 조금 불쾌하게 느껴진다.
젖병을 물지 않기 때문에 빨대컵에 분유를 넣어 먹이다 보니 안고 수유할 일이 별로 없다. 그리하여 잠잘 때는 여지없이 엄마의 젖을 물고 자려고 한다. 단호하게 끊어야 하지만 끝내 이기지 못하고 젖을 내어주고 만다. 사실 나는 아직 마음이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1년 가까이... 아이가 이 세상에 태어나고부터 함께했던 수유를 그만 둘 생각을 하니 서운하다. 이제 내가 없어도 굶어 죽지 않겠다 싶은 생각에 기쁘다가도 1년간 애써온 이 일을 아무도 공유하지 못하고, 아무도 모를 나만의 추억으로 남겨야 하는 것이 조금 서글프다. 작은 입으로 열심히 오물오물하면서 젖을 먹는 아이의 귀여운 모습. 따듯한 아이의 입속의 느낌, 젖 먹는 동안 내 머리카락을 만지며 놀던 아이의 사소한 습관들, 젖 먹다가 잠든 사랑스러운 모습, 서로의 살을 맞대고 삶을 지탱하던 이 소중한 수유의 시간들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거다. 나의 몸으로 자란 내 소중한 아이와의 기억. 아이는 엄마의 젖을 먹던 이 시간을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