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오이지

오이지 속으로 스며든 소금처럼, 고스란히 내게 배인 마음

by 윤미진

엄마는 우리 가족이 먹는 밥상에 참 많은 정성을 쏟는 사람이었다. 매 끼니, 남편과 자식을 위한 밥상을 차리는 일에 진심이었다. 가족의 밥심을 책임지는 게 본업인 듯, 한 끼도 허투루 넘긴 적이 없었다. 국이나 찌개를 필두로 고기나 생선 요리를 만들고, 계절을 담은 나물까지 곁들였다. 집 냉장고에는 할머니가 짜준 들기름과 고소한 국내산 깨가 마를 날이 없었다. 며칠씩 먹어도 또 밥상에 놓고 싶은 바삭한 멸치볶음과 쫄깃한 진미채도 늘 한편을 차지했다. 나는 엄마의 밥상 위에서 계절의 생생함과 시간의 변화를 느끼며 자랐다. 향긋한 냉이가 올라오면 날이면 설레는 마음으로 봄을 맞았다. 부침개가 부쳐지는 날이면 옷차림이 한결 가벼워질 날이 머지않았음을 떠올렸다. 한여름, 땀이 뻘뻘 흐르던 날에는 고춧잎 무침이 밥상 위에 놓였다. 알싸한 고춧잎 맛이 입안을 가득 채우면, 한여름 더위쯤은 물리칠 수 있을 것 같은 단단한 마음이 섰다. 달큼한 가을무가 푹 졸여진 밥상을 보며, 나는 지나가는 가을빛 시간을 푸근하게 붙잡았다.

그래서 나도 결혼하면 엄마처럼 매 끼니 국과 반찬을 만들고 남편과 나눠 먹을 거라 믿었다. 그저 받아먹던 밥상이었으니, 그 준비에 엄마가 얼마나 많은 시간이 쓰이는지 알지 못했다.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남편에게 말했다.

"오빠, 결혼하면 아침은 내가 한식으로 준비할게"

그러다 남편의 출근 시간이 새벽으로 당겨졌고, 아침을 함께하자는 약속은 없던 일인 양 기억 속으로 사라졌다. 아침을 먹지 않자, 나를 걱정한 사람은 뜻밖에도 남편이 아니라 엄마였다. 혼자 아침과 점심을 해결할 딸 걱정에 "만드는 김에 조금 더 했어"라며 딸이 부담을 느끼지 않게, 묻지도 않은 말을 덧붙이며 엄마는 계절을 담은 반찬들을 보내주었다.


작년 봄, 엄마는 갑작스럽게 희귀병인 '길랑바레 증후군' 진단을 받고 병원에 입원했다. 행여 자식에게 피해를 끼칠까, 엄마는 최선을 다해 재활치료에 힘을 쏟았다. 만약 '가장 열심히 운동한 환자'에게 상을 준다면 엄마는 틀림없이 후보에 올랐을 것이다. 봄을 지나 무더운 여름이 왔고, 다행히 병세는 조금씩 나아졌다.

재활 치료를 마칠 무렵,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미진아, 오이지가 먹고 싶은데..."

더운 여름 땀을 많이 흘리니 짠 음식이 당겼을 것이다. 삼십 년 전, 결혼한 엄마에게 시어머니가 해준 오이지. 충청도에서 자란 엄마가 경기도에서 자란 아빠를 만나면서 처음 접한 반찬은, 시간을 거쳐 우리 집 여름 밥상의 대표 음식이 되었다.

엄마와 통화를 하며 오이지 만드는 법을 메모했다. 깨끗이 씻은 오이를 김치통에 소금과 번갈아 켜켜이 쌓는다. 끓는 물에 소금을 풀고, 소금이 다 녹으면 오이 위에 붓는다. 끓는 물을 오이 위에 붓는 순간 김이 확 올라오고, 소금 냄새가 방안에 퍼졌다. 일주일에서 열흘의 시간이 지나면 오이가 소금을 먹어 꼬들꼬들해진다. 그중 두세 개를 꺼내 송송 썰어 시원한 물에 담으면 아삭한 오이지가 완성된다. 먹기만 했던 오이지가 이렇게 긴 시간을 품어야 완성된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새삼 엄마가 자식들의 입을 채우고 허기를 달래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을 썼을지 고마운 마음이 든다. 삼십 년이 넘어서야 말이다. 불효녀도 이런 불효녀가 없다.


더운 여름, 재활운동을 이어가던 엄마에게 하루라도 빨리 오이지를 가져다주고 싶었다. 그러나 숙성에는 최소 일주일이 필요했다. 세상 더디게 흐른 일주일이 지났다. 병원에 있는 엄마가 끼니마다 먹기 편하게 1~2분씩 나눈 오이지를 담아 병원으로 향했다.

"엄마 어때?"

"정말 시원하고 맛있다. 운동하고 먹으니 어찌나 맛있던지 한 그릇 다 먹었어"

심심하고 간이 덜 된 병원밥을 먹다가 짭짤한 오이지를 먹으니 입맛이 돌았을 것이다. 내 솜씨 덕이라기보다 병원밥과의 대비 덕이겠지만. 그 여름, 나는 비로소 알았다. 엄마가 삶의 시간을 잘게 썰어 우리 밥상에 마음을 올렸다는 것을. 그 사랑은 오이지 속으로 스며든 소금처럼, 삼십 년 동안 내 안에 오랫동안 배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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