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된 엄마의 낮과 밤

예상하지 못한 순간을 마주했을 때

by 윤미진

점심을 먹고 휴게실 소파에 몸을 눕히려던 순간, 주머니 속이 심하게 떨렸다. 낮에 전화할 리 없는 엄마였다.

“엄마.”

“응, 미진아. 놀라지 말고 들어... 아빠가 쓰러졌어.”

낮은 목소리로 단숨에 말을 삼키는 엄마의 숨결이 귀에 와 박혔다.

아빠는 삼십 년 가까이 몇 번의 입원과 그만큼의 퇴원을 반복했다. 이번에도 몇 년에 한 번씩 으레 겪는 병치레라고 생각했다. 며칠만 지나면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나 “언제 오냐”하고 잔소리를 할 거라 믿었다. 나는 제주도에서 3년째 살고 있었다. 몇 달 전부터 아빠가 아프다는 말에 제주도 생활을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마음을 고쳐 잡던 참이었다.


그러나 아빠는 끝내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아빠에게 하고 싶은 말을 오롯이 중얼거렸다. 하지 못한 말은 입 속에서 맴돌다 사라졌다. 소리 내지 못한 이야기들이 목 안에서 부서져 흩어졌다. 엄마는 남편을, 나는 아빠를 잃었다. 집에 아빠만 없을 뿐인데, 밤마다 바깥에서 스치는 부스럭거리는 작은 소리도 거대한 파도처럼 느껴졌다. 지붕 없는 집에 홀로 앉아 비를 맞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방을 둘러봤다. 나보다 더 애처로운 얼굴로, 같은 비를 맞고 있는 여자가 있었다. 엄마였다.


아빠의 부재는 뜻밖에도 두 여자의 마음을 가깝게 잇는 시작이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같은 이불속에서 잠들기 시작했다. 우리는 아빠 없는 자리를 애써 대화로 채우려 했다. 엄마와 나는 한번 이야기가 시작되면 몇 시간이 부족했다. 없지만 있는 것처럼 밤새 이야기를 하며, 아빠의 빈자리를 말로 메웠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탐스러운 벚꽃을 보기 며칠 전, 문득 생각했다. ‘이 계절이 끝나도록 우리의 말은 끝이 없겠지’라고. 엄마와의 수다가 그렇게도 좋았다.


갑자기 엄마의 한쪽 팔이 잘 움직이지 않았다. 몸에 이상이 생긴 후 이틀 뒤, 엄마는 대학병원에서 ‘길랑-바레 증후군’이라는 희소병 진단을 받았다. 팔과 다리에 오던 마비 증상은 목 근육까지 전이되어, 엄마의 목소리를 앗아갈 상황에 놓였다. 엄마는 고요한 병실에 홀로 있으면서 벼랑을 마주했을까, 아니면 희망의 바다를 바라봤을까. 나을 수 있는 병이니 가벼운 일이라 생각했을까, 세상 모든 불행이 자신에게만 들이닥친다고 노여워했을까.


봄날의 햇살이 손안에 다다랐다고 생각했는데, 우리는 예상하지 못한 순간을 마주했다. 나는 말할 수 있을 때 충분히 말하지 못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제야 나는 침묵 속에서도 마음만은 전해지기를 간절히 바랐다. 말이 줄어들수록 서로의 숨결로, 눈빛으로 마음을 붙잡기로 했다.

이전 02화엄마의 오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