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찐 옥수수 맛을 흉내내보다.
임신 중, 옥수수가 유난히 생각났다. 5천 원을 건네고 뜨끈한 옥수수 세 개를 받았다. 연이어 먹었지만, 이상하게도 허전했다. 초여름이면 냉동고에 차곡차곡 쟁여 두던 엄마의 옥수수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우리 집 냉동고는 작은 창고 같았다. 여름 내내 꺼내 먹을 수 있는 옥수수가 그뜩그뜩 들어 있었다.
“엄마, 도대체 몇 개나 먹은 거야”
다이어트를 하겠다며 쌀을 줄이겠다고 말하는 엄마 앞에는 족히 열 개가 넘는 옥수수 대가 놓여 있었다.
엄마는 여름마다 옥수수를 따기 위해 외할머니 댁으로 향했다. 햇빛이 쏟아지던 밭에서 수십 개의 옥수수가 우수수 쏟아지면, 그 순간이 꼭 파도가 출렁이는 것 같았다. 비닐하우스로 가져온 옥수수. 엄마는 그 자리에서 초록색 겉잎을 벗기고, 다시 연 노란 속껍질까지 벗겨냈다. 허연 속살이 드러난 옥수수 열몇 개를 들고 주방으로 향해 질박한 냄비에 담고 물을 붓고 옥수수를 삶았다. “엄마는 왜 이렇게 옥수수를 좋아해?” 내 물음에 엄마는 잠시 웃었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옥수수는 시골 육 남매가 겨우 누릴 수 있던 유일한 간식이었다. 엄마에게 옥수수는, 천진난만했던 웃음과 두려움 없던 어린 시절을 함께 떠올리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육 남매 중 맏딸이었던 엄마는 늘 먼저 어른이 되어야 했다. 엄마의 청춘은 교복 자락보다 먼저 일터의 먼지를 뒤집어써야만 했다.
나는 엄마가 좋아하던 옥수수를 병원으로 가져가고 싶었다. 오일장에서 처음으로 헌 포대에 가득 담긴 옥수수를 샀다. 껍질 사이에 숨어 있던 애벌레를 툭툭 털고, 껍질과 수염을 정성스레 떼어냈다. 사소하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손길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냄비에 옥수수를 담고, 뉴수가와 소금을 적당히 넣는다. 팔팔 끓이다 집안에 단내가 풍기면 뭉근한 불로 줄여 삶는다. 수십 년 동안 엄마의 수고가 배어 있던 그 맛을, 이제야 나는 내 손으로 따라 해 본다. 따뜻한 옥수수를 보자 못 참고 한입 베어 물었다. 엄마가 찐 달보드레한 옥수수와 닮은 맛이다. 엄마는 항상 알이 크고 벌레 먹은 곳이 없는 성한 옥수수를 골라 자식에게 주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때로는 애써 좋은 걸 찾는 엄마의 마음이 성가시게만 느껴졌다. 내가 원한 게 아니라 그저 엄마가 하고 싶은 일이라고 여겼다. 옥수수를 건넬 때면 “나는 옥수수 안 좋아하는데...” 하며 트적지근한 마음을 내비쳤다. 그런데 임신을 하고 나서야 알았다. 내가 매해 허기짐 없는 여름을 지낼 수 있었던 건, 엄마가 찐 옥수수 덕분이었다는 것을. 엄마의 옥수수는 땀과 여름의 시간이 배어 있었다.
나는 뜨끈한 옥수수를 수건으로 싸 보온 가방에 담아 병원으로 향했다. 조금의 온기도 날아가지 않기를, 온기가 엄마의 몸으로 전해지기를 바랐다. 매일 네 시간씩 재활하는 엄마의 지루한 여름. 엄마가 나에게 주었던 달콤함을 이번에는 내가 돌려드리고 싶었다. 병원 로비에 들어서니, 휠체어에 앉아 나를 향해 다가오는 엄마가 보였다. 그 순간 나는 옥수수가 식을까 봐, 엄마의 손이 차갑게 느껴질까 봐, 가방을 더 꽉 끌어안았다. 로비에 앉아 엄마와 나란히 옥수수를 먹었다. 엄마 앞에 하나둘 쌓여 가는 옥수숫대는, 엄마가 지나온 여름의 시간처럼 단단하고 묵묵히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