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길랑-바레라는 이름 앞에서

길랑-바레 증후군, 낯선 병명의 무게

by 윤미진

외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홀로 남은 외할머니는 육 남매 중 맏이인 엄마와 더 가까워졌다. 두 사람 모두 이제는 남편이 없는 여자들이었고, 같은 결핍은 끈끈한 온기로 이어졌다. 하루가 멀다 하고 통화를 했고, 한 달에 두어 번은 시골집에서 함께 밥을 먹었다. 소리 한 점 없이 길게 이어지는 시골의 밤이면, 엄마는 외할머니 곁에 누워 안부를 묻곤 했다.


그날도 벚꽃을 볼 예정이었다. 그런데 엄마가 팔이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전날 잠을 잘 못 자서 담이 걸렸을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나이가 들수록 엄마는 종종 어디가 아프다고 말을 했다. 일부는 믿었지만 가끔은 엄마의 ‘꾀병 섞인 이야기가 아닐까’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러나 주말 사이, 엄마의 몸은 무너져 내렸다. 혼자 차에 오르는 일조차 힘겨워했다. 나는 엄마의 한쪽 팔을 들어, 내 어깨 위로 올렸다. 엄마의 허리를 감싸 안고 팔에 힘을 줬다. 엄마와 내 몸이 이렇게 가까이 닿은 게 언제였던가 떠올려 보려 해도 기억나지 않았다. 키가 크고 몸무게가 더 나가는 딸이, 드물게 쓸모 있는 순간이다. 그런데도 내 팔에 실린 엄마의 무게가 낯설고 두려웠다. 병원 대기실에서 엄마는 간호사가 부르는 소리에 쉽게 발을 떼지 못했다. 낮은 둔덕조차 장애물처럼 보였다. 불완전한 사람에게 세상은 얼마나 불친절한가. 그 생각에 서러움이 밀려왔다.

동네 병원은 상황이 좋지 않다며 대학병원으로 갈 수 있는 진단서를 내주었다. 공기마저 무거워져 두 어깨에 돌덩이를 올려놓은 듯 빠르게 엄마와 나를 감쌌다. 병원에서 엄마를 감싸 안고 나와 차에 태운 뒤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동네 병원에서 대학 병원까지는 40분. 머릿속에서는 온갖 두려운 생각이 휘몰아쳤다. 대학병원에 도착 후 정확한 진단을 위해 신경과, 정형외과 등 여러 선생님의 진료가 이어졌다. 몇 시간이 훌쩍 지났다. 임신 4개월 차인 나는 엄마를 기다리다 몰래 잠이 들었다. 엄마의 이름을 부르며 보호자를 찾는 방송이 울렸다. 다시 병실 안으로 향했다.

“말초신경에 염증이 퍼져서 마비가 오는 길랑-바레 증후군 같아요. 자가면역질환의 일종으로, 몸의 면역체계가 잘못 작동해 신경을 공격하는 겁니다. 확진을 위해 척수액 검사가 필요합니다.”

보호자 동의가 필요해서 나를 불렀던 것이다. 나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병명에 멍해졌다. 희귀 질환, 그것도 엄마일지도 모른다니. 엄마는 몸을 웅크린 채 누운 자세로, 15cm는 되어 보이는 긴 주삿바늘로 척수액을 뽑았다. 의사는 “많이 아플 거예요”라고 말했지만, 엄마는 “괜찮아요”라고 답했다. 그 말은 마치 나를 안심시키려는 마지막 버팀목 같았다. 침묵 속에서 엄마는 아픔보다 무너져 가는 자기 몸을 더 두려워하는 듯 보였다. 아프다고 말하지 않는 엄마의 말이 더 슬프게 꽂혔다.


어제까지 튼튼한 나무 같던 엄마는, 순식간에 뿌리 뽑힌 채 바람에 쓰러진 나무가 되었다. 건강했던 엄마는 하루아침에 대소변조차 혼자 해결할 수 없었고, 수저를 드는 일도 남의 손에 맡겨야 했다. 평범하던 사람에게 셀 수도 없는 불운이 하룻밤 사이에 폭풍처럼 몰려왔다. 전화기도 가지고 있을 수 없는 중환자실, 엄마의 이름은 지워지고 차가운 병명 하나가 엄마를 대신했다. ‘길랑-바레 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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