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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 Nov 18. 2021

하루키와 우드스탁


시작은 아주 사소했다. 

튀김 맛집을 찾다 흘러 흘러 도착한 커피숍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 장편소설을 출간 순서대로 읽는 모임이 있었다. 나는 거기서 C를 만났다. C는 우리 독서모임의 회장이자, 청운동에서 독립 서점을 막 열 준비를 하고 있었으며 먹는 것과 노는 것에 진심인 사람이었다.      


C와 친해져 ‘회장님’에서 ‘언니’로 호칭이 바뀔 무렵이었던가. 한강에서 함께 술 마시자고 데려간 곳에서 I를 만나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그 뒤 셋은 신촌의 오래된 술집 우드스탁에서 만났다. 주말마다 우리는 신청곡을 적어 내고, 데낄라를 샷으로 마시고, 마돈나의 Material Girl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술집 테이블과 테이블 사이에서(원래 이런 집이다).      


한창 떠들썩한 파도가 지난 뒤 C가 뜬금없는 말을 꺼낸다. 


“그냥 탱고를 배워보지 그래?”

“탱고요?”     


우리는 그 전까지 탱고의 'ㅌ'도 서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나는 C와 그렇게 열심히 놀았지만, 그녀가 탱고를 시작한 지 8년 차였고 고일 대로 고인 물이었단 사실을 그때까지 알지 못했다.     


“춤에 흥은 있는데 근본은 없네~ 이참에 한 번 배워봐 좋아할 것 같아”

“저 막춤밖에 못 추는 거 아시죠?”     


이 여자가 갑자기 무슨 소린가. 나처럼 몸 쓰는 데 재주 없는 사람한테.


“홍대에 배울 곳이… 음 초급은 여기가 좋겠어. 여기 들어가 봐”

“요즘도 다음 카페 쓰는 사람이 있어요?”     


음악을 좋아하지만 나의 페이보릿은 재즈와 팝이었고, 탱고는 ‘쉘 위 댄스’와 ‘여인의 향기’에서 나오는, 혹은 TV에서 붉은 드레스를 입고 입에 장미를 물고 나와 고개를 박력 있게 흔드는 여자 정도가 떠오를 뿐이었다. 갑자기 탱고라니?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렇게 내 2년 3개월이 사라졌다.

맛집 투어, 가죽공예, 독서모임, 커피, 사진, 하드웨어… 오만 취미를 다 갖고 있고 주말이면 24시간이 모자라게 다양한 카테고리로 놀던 내가 모든 취미를 접고 탱고에 매달리게 됐다.     



탱고수업을 등록하고 개강하기 2주 전(월초에 개강을 한다). 평일 낮, 잠깐 시간을 내 C와 만났다. C와 함께 간 곳은 염천교의 수제화 거리였다. 용산에 살며 질리도록 지나간 거리지만 차를 타고 지나친 것이 아닌, 신발을 사러 이곳에 온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좁디좁은 계단을 올라가 서로 마주 보는 두 가게인 ‘가르방’과 ‘왕관.’ 댄스화를 파는 곳이란다. 남녀 구두가 어지럽게 널려 있고 하이힐은커녕 높은 굽 구두를 아예 못 신어 운동화나 신고 다니는 처지에 구두를 사러 왔다.



가르방 사장님 내외가 주시는 요구르트를 마실 틈도 없이 구두는 참으로 현란해 눈을 빙빙 돌게 했다. 세상의 모든 반짝이는 것들이 구두에 죄다 붙어 있었으며 남자 구두에 체크무늬와 얼룩말 무늬, 금색 구두까지… '이런 건 다른 곳에선 못 신겠다' 싶었다. n년간 심플함을 추구해온 내 삶에 이것들은 정말 내 취향이 아니었다. 

 

“댄스의 세계는 이런 것인가요?” 라 물으니 “이거 살사화야” 라는 답이 돌아왔다.

살사화와 탱고화는 또 무슨 차이인가... 싶었지만 내 요청은 단 하나였다.      


“여기서 굽이 낮고 가장 심플한 디자인으로 주세요”

“화려한 게 더 좋을 텐데?”

“아닙니다. 저는 심플한 게 좋아요. 제일 여기서 얌전한 디자인으로 주세요”     


내 첫 탱고화는 얌전한 핑크빛 구두였다. 

맞춤으로도 제작이 가능하다는 이야길 들었으나 한 달 듣고 말 취미에 몇만 원을 더 쓰고 싶진 않았다. 

또 사람이라는 것이 간사해 새 신발을 신어보고 나니 새삼 개강이 기다려졌다.      


회사 책상 옆에 신발주머니를 걸어두고 과연 저긴 시작하면 어떨지… 




생각하긴 무슨 그냥 술 먹고 뛰어놀며 개강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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