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고는 사실 처음엔 그렇게 재미있지 않았다. 지루한 박자의 걷기 연습곡에 맞춰 앞뒤로 걸어야 하고, 스페인어는 하나도 알아듣질 못하겠으며, 평생 운동과 거리를 두던 몸은 정말 더럽게도 말을 안 들었다.
나는 주 1회 있는 초급 수업이나 성실히 출석했을 뿐이다. 연습실에 갈 때마다 있는, 주 4~5일씩 탱고에 매달리는 이들을 보며 ‘저 사람들은 퇴근하고 다른 건 안 하나?’ 싶은 생각만 들 뿐이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이왕 시작은 했으니 끝까지는 들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견뎌낸(?) 시간이었다. 남의 팔을 잡고 걷는 것이 익숙해질 때쯤, 단톡방에 한마디 말이 올라왔다.
“다들 공연하셔야죠?”
“공연이요?”
한 달 뒤 공연을 하란다. 뭘 배웠는지도 모르겠는데 벌써 공연을 해야 하나? 우리가 배운 걸로 공연이 가능은 한가?
머릿속에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그래, 까짓거’라는 마음으로 하겠다고 덜컥 손을 들었다.
시큰둥할 줄 알았으나 의외로 학구열이 높았던 동기들은 앞다투어 공연을 하겠다 나섰고, 8쌍이나 되는 인원이 모였다.
나에게도 무려 ‘선생님이 엮어 준’ 탱고 공연 파트너가 생겼다.
파트너 B는 40대 초반의 깨방정(?)이 포인트인 사람이었다. 몸보다 입으로 탱고를 추는 타입이라고 해야 하나? 몸은 나와 같은 저렴한 스펙으로 춤은 둘 다 참 꽝이었지만 탱고 하는 친구를 따라온 처지라 춤에 관심은 참 많았다.
나와 B가 파트너가 된 이유는 단 하나였다. 키가 비슷해서.
음악도 정해졌다. 무려 <Por una Cabeza>. 여인의 향기에 나오던 그 곡이다. ‘간발의 차이로’라는 뜻이라는데, 음악은 제목과 달리 느긋하고 우아하며 격정적이다.
일요일 낮마다 연습실에 모여 연습이 시작됐다. 선생님이 안무를 시연하는데도 모르겠다.
'뭐 이리 어려워? 이런 포즈를 하라구요? 무릎 아파요'
초등학교 학예회 이후로 남 앞에서 공연이라는 것을 할 일이 없었던 나는 여전히 난감했고, 내 파트너였던 B는 더욱 난감해했다.
모일 때마다 ‘다른 커플들은 잘 하는데 우리는 왜 엉망진창인가’ 라는 생각이 들며 더욱 짜증이 났고, B는 “L이 여기서 실수하는 거잖아”라고 했다.
“B님이 리드를 그렇게 하니 내 발이 거기 있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요?”
“선생님 불러와요”
“아니 여기서 이게 아니잖아요”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됐다.
공연을 2주 남긴 일요일. 아무리 호도과자를 입에 넣어도 짜증이 가시지를 않았다.
B에게 폭탄선언을 했다.
“순서도 못 외워오시며 남 탓하실거면 지금이라도 그만두시죠. 저는 이렇게는 못 하겠습니다”
“내가 열심히 외워 올게. 미안해…”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B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안무 자체가 어려웠으며 내 몸도 저질이었고, 여기에 B의 남 탓이 더해진 것이었다(심지어 그 뒤로 다른 동호회에서 B는 한 번 더 내 동기가 되었다. 아, 이 돌고 도는 탱고판이란. 돌아와요 B!).
그리고 연습은 계속됐고, 참 내 몸은 마음대로 움직이질 않았다. 그래도 십수 년 만에 남 앞에서 공연이라는 것을 하려니 마음은 설레 드레스를 고르고 구두를 새로 사기도 했다.
공연 당일. 오후 마지막으로 안무를 맞춰 보고, 드레스룸에서 오랜만에 긴 속눈썹을 붙이고 진한 화장에 머리까지 손을 봤다. 다 같이 여자는 빨간 드레스, 남자는 흰 셔츠에 까만 바지, 보타이를 맸다.
우리는 줄지어 입장해 동그랗게 원을 그리고 섰다. 나를 탱고에 밀어 넣은 C도 시간을 내 공연을 보러 왔다. 이렇게 고마울 줄이야. 사람들이 각자 휴대폰을 들고 앉아 있다.
‘영상 매체가 이렇게 발전해서야… 흑역사가 그대로 기록되는구나’ 따위의 생각을 했다.
음악이 나온다.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어려운 동작에서 난 또 틀렸고, 군무이기 때문에 매끄럽게 돌아야 할 원은 연습 때 에이스였던 K반장의 교통체증 유발로 찌그러졌다.
그래도 공연이 끝났다. 후련하다. 박수가 나오고 사람들은 연신 즐거운 얼굴이었고, 사진을 몇 장 찍고 동영상은 기억의 저편으로 묻어뒀다.
그날 공연이 끝나고 선물 받은 파란 장미가 참 좋았다.
*
그 뒤, 40명 가깝던 동기의 70%가 증발했다. 이유도 다양했다.
“남자친구가 탱고 추는 걸 싫어해서요”
“나 사람하고 가까이 얼굴 대는 건 못하겠어~”
“저는 탱고보다 바차타가 더 맞는 것 같아요”
“이제 안식년이 끝나서…”
“춤이 너무 어렵네요”
“지방으로 전근을 가서요”
나는 좀 더 해보기로 했다. ‘탱고가 재미있어서?’ 라기엔 탱고와는 아직도 먼 사이였다.
그렇지만 이왕 한 거 좀 더 해보자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다음 클래스에 등록을 했고, 월요일 연습에(술을 걸치고) 나가기도 했다. 여전히 어려웠지만, 다음 기수로 들어오는 과거의 나처럼 서툴고 딱하게 걷는 사람들을 보며 조금 치사한(?) 마음의 위안을 삼았다.
몇 달이 지나자 오며 가며 인사하는 아는 사람들도 생겼고, 생존한 내 동기도 있었다. 수요일, 토요일에는 강습을 듣는 이들이 모여 탱고를 추는 곳에 병풍처럼 앉아 있었다.
그렇게 또 3개월이 지나갔다. 여름 더위가 가시기 전 시작한 탱고라는 취미가 추운 겨울이 되도록 계속되고 있었다. 중간의 희로애락이 많았지만 뭐, 남들도 살면서 그 정도는 겪고 사니까.
*
이 지긋지긋하게 늘지 않는 수업을 계속 들어야 하나 싶은 고민이 슬슬 되고 있던 시점에, 사람들이 드레스룸 너머로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동호회 이야기였다.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소셜댄스니까 당연히 동호회가 있을 텐데. 동호회 키워드만 듣고 다음 카페에서 폭풍검색을 했다.
여긴가? 아니, 여긴가? 사람들이 이야기하던 곳이 여기가 맞는 것 같다.
때맞춰 초급 기수를 모집한다기에, 정성껏 사진과 자기소개를 적어 메일을 띄웠다. 그렇게 탱고를 오래 췄지만 동호회에는 가입한 적 없던 C도 함께였다. 같이 듣자 해놓고 신청을 차일피일 미룬 C를 들볶아 마지막 날 저녁 쌀국수집에서 지원서를 내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