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미 Feb 10. 2022

나는 꼬라손을 모른다

탱고가 내게 왔다 

섹스의 목표는 오르가즘이다.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은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를 꿈꾼다. 프로 스포츠들은 승리가 목표다. 그럼 몸으로 하는 행위의 일환인 ‘탱고’의 목표는 어디에서 찾는가?     


탱고를 이루는 요소는 몇 가지로 압축된다. 함께 추는 이들과의 커넥션(신체-정서적), 아름다운 음악, 술, 탱고 아래에 깔린 특유의 정서 등. 

땅게로스들에게 ‘탱고의 목표는, 더 나아가 존재 가치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지자 각자 분분한 답을 내놓았다. 힘듦을 잊는. 재미가 있는, 사람을 찾는, 나를 찾는 춤이기에 춘다고 말한다.      


개인적인 입장에서 탱고의 목표 중 하나는 꼬라손(Corazón)이 아닐까 한다.     


*

Corazón : 심장, 마음, 사랑이나 애정, 용기, 열의 등으로 해석되는 이 단어는 ‘탱고에서 느낄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감각’을 뜻하는 말로 사용된다.     


‘시다, 차갑다’ 처럼 정형화된 감각이 아니기에, 꼬라손을 표현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20년 가까이 춤을 추고 있는 L은 꼬라손을 ‘세상은 다 흑백이고 나와 춤을 추고 있는 너와 나만 칼라인 것 같은 기분’이라 말했다. 

동갑 친구인 A는 ‘발바닥에서부터 피어 오는 미묘한 감각’이라 하기도 한다. 혹자는 그 많은 사람 사이에서 나와 함께 춤추는 둘만 다른 세상에 분리된 것 같다는 표현을 하기도 한다.      


이 말들을 합쳐보면 꼬라손은 춤을 추며 심장이 뛰고 가슴이 떨리는 꿈결 같은 순간이나 감각을 뜻하는 것 같다. 비현실적일 만큼 이 순간이 좋지만, 이는 연애의 감정과도 다르고 음악이 끝나면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얄궂은 점은 둘이 함께 춰도, 반드시 둘 다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설명만 듣고 보면 음악과 춤을 매개로 이뤄지는 열반(涅槃)인 것 같기도 하다.      


꼬라손이 오는 빈도도 사람마다 다르다. L은 몇 년에 한 번 오는 감각, A는 몇 주, 몇 달에 한 번쯤 느껴지는 감각이라고 말한다. 나의 탱고 스승 중 하나인 G는 “8년 동안 탱고를 추며 네 번 정도 꼬라손이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누구는 자주, 누구는 참 드물게 느낀다.      


*

나는 아직 꼬라손을 모른다. 

산타할아버지는 일 년에 한 번(?)이라도 볼 수 있지. 대체 내게 꼬라손은 언제쯤 오는 것일까? 초급 때부터 너무나 궁금해하고 있지만, 아직도 감각 대신 언어로만 알고 있다. 

최소 1주일에 3회 이상, 1년 반 넘게 밀롱가를 다니고 춤을 추고 있는데. 양으로는 어디 가서 부족하지 않은 데. 억울하기 짝이 없다. 히말라야의 빅풋이나 네스 호의 네시처럼 존재는 한다는데 본 적은 없다.      


*

어느 날 저녁, 밀롱가가 끝나고 대화 화제로 꼬라손이 올랐다. 억울하게도 못 느껴본 나는 꼬라손을 알콜성 부정맥이라고 말했다. 

“어, 술을 많이 마셔서 심장이 평소대로 안 뛰는걸 꼬라손이라 착각하는 거 아니에요?”

사람들이 빵 터졌지만, 누구 하나 꼬라손이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꼬라손이 오는지는 모른다.    

  

요새 눈을 감고 추는 법을 다시 익히고 있다. 눈을 뜨고 밀롱가의 많은 이들과 소통하는 것도 좋지만, 나와 함께 추는 바로 앞의 땅게로에게 좀 더 몰입해 보기 위해서다. 

술이 없으면 춤을 안 추는 사람이라 눈만 감으면 지구 자전이 고스란히 느껴져 쉽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노력 중이다. 이 눈을 감는 행위에는 ‘이렇게 하면 꼬라손이 오려나’라는 실낱같은 희망도 섞여 있다.      


밀롱가에서 우리는 서로 껴안고 있지만, 각자의 몸짓으로 하나의 동작을 만들어 낸다. 

하늘에서 내리는 수많은 눈송이의 모양이 전부 다르듯 밀롱가 안 모든 이의 표현과 해석이 다르다. 남자가 멈추면 그 공백 안에서 여자는 순간을 채워 나간다. 점이 선이 되듯, 탱고라는 시간을 채워 나가는 일련의 과정 안에서 우리는 꼬라손을, 더 나아가 열반을 추구한다.      


어떻게 보면 내가, 사람들이 탱고를 계속 추는 것은 구도(求道)의 길이 아닐까.      




*

1950년대 녹음된 Osvaldo Pugliese의 Adios Corazón. 

매거진의 이전글 한국인은 연애보다 탱고를 열심히 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