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생 온 힘을 바쳐 사랑해야 하는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인생을 살면서 한 번쯤은 고찰이 필요한 주제입니다. 저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궁금해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인생이 그랬거든요. 툭하면 성격 테스트를 해서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 정의하고자 했고,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리스트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대학에서는 심리학을 전공했고, 믿거나 말거나인 사주에도 관심을 쏟았습니다.
하지만, 살다 보니 생각보다 자신에게 관심 없는 사람들도 꽤 있더군요. 의외로 그들은 자신의 인생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중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자신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 이유에 관해 물었더니, 이미 잘 알고 있기에 파고들어 정리할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때 제 목표가 바뀌었습니다. 자신에 대한 완벽한 정리본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구태여 되새길 필요 없이 자신을 잘 느끼고,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요.
사실, '정의, 정립, 정리'에 가장 집착하던 시절은 가장 어둡고 안개 낀 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고정해 두지 않으면 어딘가로 날아가 버릴 것만 같은 가볍고, 흐릿한 나날이었죠. 열심히 자신을 탐구했던 일은 쉽게 흔들리는 생각과 감정에 휩쓸리지 않으려는 노력의 일환이었습니다. 그 노력 안에서 한 가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나'에 대해 탐구하며 얻었던 작은 배움을 담았습니다.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는 과정에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나]와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나]가 다르고, [현재의 나]와 [되고 싶은 나]가 다릅니다. 남들이 부정적으로 말하는 나는 내가 아니었으면 좋겠고, 내가 선망하는 다른 이의 모습은 나이기를 바라죠. 수많은 나 중 어떤 내가 진짜인지 판단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자아상을 만들고 그 안에 자신을 끼워 맞추려 합니다.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하기에 앞서 ‘나'에 대한 다른 정의를 말씀드려 볼까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발달 과정 속에서 남과 자신을 구분할 수 있게 됩니다. 18~24개월에 자신을 타인과 분리된 존재로 인식하기 시작하고, 만 4~5세에 타인이 다른 관점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죠. 나의 의식으로 남을 통제하거나 조종할 수 없기에 남과 나의 구분은 당연해 보입니다. 하지만 사전적인 개념에서 벗어나 당연해 보이는 정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는 의식으로 탄생하여 기억으로 만들어집니다. 신체가 의식을 깨우면, 환경과 합세하여 기억을 만들어냅니다. 그렇기에 환경은 [의식의 주체로서의 나]와 밀접한 관련성을 갖습니다. 환경을 나와 분리해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환경이 없는 나는 존재할 수 없고, 내가 환경을 변화시키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환경도 나를 구성하는 일부라고 정의했습니다. 환경이 나에 속한다면, 그 경계는 어디까지일까요? 내 방, 이 도시, 지구 — 이를 끝까지 확장하면 우주가 됩니다. 결국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은 아주 급진적이고, 낯설고 이상하게 들리는 문장이 됩니다. '나는 우주입니다.'
현실성 없는 소리처럼 들릴 수 있지만, 이 관점은 한 가지 현실적인 장점을 가집니다. 바로, 좀 더 건강한 마음가짐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이유가 되어줍니다.
1. 우주는 통제 대상이기보다는 받아들이는 대상입니다. 자신의 존재를 누군가에게 증명하지 않아도 되고, 행위를 정당화할 필요도 없죠. 우주와 마찬가지로 나의 존재 또한 자연 그 자체일 뿐입니다.
2. '나는 우주'라는 말은 자신이 신이라거나, 그와 견줄 만큼 대단한 존재라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생각보다 별거 아닌 존재라는 말에 더 가깝습니다. 그러므로 역설적으로 너무 애쓸 것 없이, 걱정 없이 살아도 됩니다.
3. 항상 우주의 셀 수 없는 상호작용 속에서 가장 그럴듯한 선택을 내릴 뿐입니다. 많은 일들이 예측할 수 없고, 본인만의 책임은 아니며, 돌이켜 보면 사소한 일일 확률이 높습니다.
4. 사회를 하나의 유기체로 본다면, 개인은 그 안의 세포 하나입니다. 세포는 몸 전체의 흐름을 혼자 결정하지 않습니다. 그저 제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할 뿐이죠. 그렇기에 모든 것을 책임질 필요도, 혼자 감당할 이유도 없습니다.
조금은 도움이 되는 문장들이었을까요. 물론, 지나치게 확장된 시야는 이상에 가깝습니다. 나의 행복을 바란다고 온 우주의 행복을 끌어낼 순 없으니까요. 다만 이 관점이 언젠가 한 번쯤, 살아가면서 숨통을 틔워주는 순간을 만들어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어서, 남과 구분되는 '나'를 파악하는 방법도 알아보겠습니다.
살아감은 그저 한 편의 영화를 찍는 일이 아닐까 싶다. 영화감독이 되어 나라는 배우, 동시에 나라는 카메라를 써서 경험을 담아내는 일 말이다. 잘 연출해서 가장 멋진 순간을 담아내면 된다. 누구에게나 언제나 고유한 작품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