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높은 가치
'착하게 살아라'라고 배웠지만 정말 그렇게 살고 계신가요? 저는 제 자식이 공부는 못해도 착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착하다는 말을 온전한 칭찬으로 여기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언젠가 인생에서 가장 이상적인 가치가 뭘까 고민할 때 '선'이 떠올랐습니다. '선'은 '착함'과는 달리 순종보다 지혜에 가깝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가장 좋아하는 가치는 '사랑'이지만, 모두를 이해할 수는 있어도 사랑하기는 어렵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저의 첫 번째 신념도 [사랑하며 살자]이지만, 이는 짝사랑 같은 문장입니다.
그래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기 전에, 먼저 선을 좇는 사람이 되어보자 생각했습니다. '선'과 '사랑'의 차이가 적극성의 차이처럼 느껴졌거든요. 그런데 문제는 선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선'을 정의 내려보고자 했습니다. 사전에는 올바르고 착하여 도덕적 기준에 맞음, 또는 그런 것이라고 나와 있지만, 이는 불충분한 설명처럼 느껴졌습니다. 올바름은 절대적이지 않고, 착하기만 한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았거든요.
선이라는 건 악과 대비되는 개념이죠. 누군가에게 악하다는 건 그 상대가 피해를 입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저는 악하지 않은 것은 피해를 입히지 않는 것, 선은 이에 더 나아가 공존을 위한 노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만 생각했을 땐 다른 문제가 생겼습니다. '누군가의 선이 누군가에겐 악이라면?' 그래서 저는 선이 범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선의 최소한의 범위는 자기 자신입니다. 이를 최대한으로 확장하면 모든 생명체를 포함하게 되죠. 성인(聖人)들이 이와 같은 최대 범위의 선을 실천하려 했던 사람들입니다. 선의 범위에서 벗어난 구역에는 선의의 행동이 악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각자의 선의 범위를 결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누군가의 선의 범위를 섣불리 비난하곤 합니다. 그 사람이 최소한의 범위를 지키고자 했다면, 이를 받아들이는 것도 하나의 이해 방식일 수 있습니다. 자신만의 생존을 추구하는 사람은 이기적으로 비칠지 몰라도 본인 입장에선 유일한 구원자인 셈입니다. 사람들의 행동은 대체로 살아감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입니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죠. 무인도에 홀로 갇혀 살아남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 선택을 쉽게 틀렸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사회 속에서 이기적인 행동은 결국 자신에게 돌아오기 마련입니다. 더 넓은 범위의 '선'을 행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최소한의 선의 범위인 자신을 지키기 위해 선을 확장해야 합니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고, 사회적 연결이 촘촘할수록 삶이 단단해집니다. 선은 그 연결을 만들어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그렇다면 선은 항상 강함으로 이어질까요. 넷플릭스 예능 <OUTLAST: 끝까지 살아남아라>를 보면서 경쟁 사회 속에서는 선과 악 중 무엇이 더 강할까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OUTLAST는 알래스카의 혹독한 환경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는 팀이 승리하는 내용의 프로그램입니다. 도덕과 인간성을 지켜가며 정정당당하게 승리하고자 하는 팀이 있는 반면 약탈, 고의적 방해, 심리적 압박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팀이 있죠.
도덕과 인간성을 지키려는 팀은 상대적으로 약하고, 도덕적 판단을 차치한 팀은 강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비겁한 수를 쓰는 방식이 언제나 통하진 않았죠. 시즌2까지 보고 난 후에, 선함과 강함에 인과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강한 자의 선택이 모두에게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결국 우리의 선택입니다. 자신의 선의 범위를 정하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그 선택에 책임을 지며 살아가야 합니다. 물론, 범위를 확장하려 노력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상대도 선할 것이라 기대되는 세계가 더 안전할 테니까요. 지금껏 모호하게 생각했던 '착하게 살자'의 의미를 정의해 보면서 각자의 선을 찾아보면 어떨까요. 의미 있는 시간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생명체의 존재 이유는 생명을 얻은 대가로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라는 의미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