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무너지지 않도록 붙드는 힘

by MINUIT

관계에 관해 단단히 착각했던 시절이 있었죠. '어차피 혼자 왔다 혼자 가는 인생인데, 최소한의 관계만 유지해도 괜찮은 거 아닐까.'라고요. 바보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관계라는 건 일종의 자원이었어요. 나를 지치게 하는 관계를 끊어내고,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를 줄이려는 의도였지만, 사람으로부터 얻는 것이 많다는 사실을 간과했습니다.


사람마다 인간관계용량이 다릅니다. 깊은 관계의 한 사람만 있어도 삶이 충만해지는 사람이 있지만, 어떤 사람은 여러 번 스크롤을 내려야 하는 친구 목록을 볼 때 행복을 느낍니다. 저는 굳이 따지자면 전자에 가까운 사람이라 관계가 중요하지 않다는 착각에 빠졌던 것 같습니다. 그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은 건 꽤 시간이 흐른 후였습니다.


당시에는 여러 이유로 인간관계에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사람 만나는 자리를 피했죠. 그런 시간이 이어지다 보니 언제부턴가 조금이라도 어색한 사람과 대화할 때면 과도할 정도로 긴장이 됐습니다. 목이 빳빳하게 굳고, 목소리가 떨리며, 눈을 마주치는 것도 어려워졌었죠. 친하게 지냈던 친구를 오랜만에 볼 때에도 같은 증상을 겪었습니다. 들키지 않으려 끙끙대는 모습이 더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리 외향적인 사람은 아니었지만, 여태껏 당연하다고 느껴왔던 사회성이 사라진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던 시기에 우연한 계기로 짧은 심리 상담을 받게 되었습니다. 전문 상담가에게 받은 상담은 아니었기에 별 기대는 없었습니다. 저는 힘듦을 숨기지 못하고 티를 내는 성향이라 가까운 주변인들에게 적절한 위로와 공감을 받고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격려와 설득이 저에게 좀처럼 와닿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당연히', '으레'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모르는 사람의 공감을 들으니 좀 더 와닿았습니다. '힘드셨겠어요.'라는 말을 들을 때 '힘들어도 되는 일이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었고, '마음이 아프네요.'라는 말을 들으며 강한 지지를 느꼈습니다. 항상 따져보길 좋아하는 성격이어서 그랬을까요. 위로와 격려에도 객관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사사로운 일에 객관성의 잣대를 들이밀다니 웃기죠.


언제 한 번은 단출한 술자리에서 중학교 동창이었던 친구에게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날도 자기 연민에 빠져 바보 같은 소리를 해대고 있었고, 친구는 저를 위로하기 위해 제 좋은 점들을 꺼내주고 있었습니다. 잘될 거라는 긍정적인 확언도 빼놓지 않고요. 그러나 그때에도 저는 이를 축소시키거나 부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친구가 하는 말이 "네가 남들 위로할 때 하는 말도 다 진심 아닌 거야? 다 거짓말하는 거라고 생각해?"라고 묻더군요.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배은망덕하게도 자기 생각에만 빠져 주변인들의 진심을 짓밟고 있었던 겁니다.


얕은 관계와 깊은 관계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기둥이 됩니다. 깊은 관계가 나를 이해하고 붙들어 주는 축이라면, 얕은 관계는 나를 환기시키고 세상과 이어주는 통로가 됩니다. 우리는 이 두 관계 속에서 자신에 대한 믿음을 키우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습니다. 저는 관계가 무너진 뒤에야, 홀로 버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나를 붙들어 주고 있던 것이 누군가의 따뜻함과 인정, 공감과 사랑이었다는 사실도요. 소중한 관계를 지켜내기 위해, 각자에게 필요한 관계의 형태를 한 번쯤 떠올려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최우식 주연의 영화 <거인>을 보며 남겼던 코멘트를 마무리 글로 남겨봅니다.



영재야. 말뿐인 위로와 조언밖에 해줄 수 없어서 미안해. 성장이라는 게 뭘까. 주저앉지 않고 다시 일어나는 힘은 어디서 올까. 내가 누군가에게 물었을 때, 그는 사람이라고 대답했어. 근데 말이야. 나는 주저앉히지 않는 환경이라고 생각했어.


난 너를 돈으로 구원할 수도, 마음으로 위로할 수도 없을 거야. 상처 난 마음이 쉽게 아물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어. 사람이 사람을 세울 수 있냐는 질문에 난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심리학을 전공하고도 상담으로의 진로는 거부했었지. 우리는 사람에게 기대하고, 기대고 사랑받고 싶어 하지만 기대는 쉽게 충족되지 않잖아. 다들 사랑을 뺏기고 싶지 않은 게 아닐지 생각해. 사람 사는 세상에 사랑이 부족해. 사랑은 단순한 미소가, 같잖은 동정이, 일시적인 관심이 아닌데. 우리는 너무 쉽게 사랑을 흉내 내려고만 하나 봐.


그럼 내가 말한 환경이 답일까. 개인의 노력만으로 버티기 어려울 때, 최소한 넘어지지 않도록 받쳐주는 구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 근데 그것도 사실 완전한 답은 아니더라. 너도 알겠지만 누구도 고통받지 않는 유토피아를 만들 순 없잖아.


그럼 결국 혼자 힘으로 버텨내야 하는 걸까. 많은 책과 연설이 자신을 사랑하라고 말하잖아. 근데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 온전히 자신에게만 달려있지 않아. 불행하게도 '나'라는 존재는 성역이 아니야. 사람들은 여전히 너의 옆을 지나가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너의 상처를 건들 거고, 네 생각의 깊은 뿌리 안엔 타인이 존재할 거야. 원하지 않아도 너의 속을 헤집어놓고 나가겠지. 그래서인지 자신을 꾸준히 사랑하는 일이 쉽지 않아. 타인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게 되니까. 쉽게 흔들리고 또 무너져 내리게 돼.


그래서 그럴 때 너를 지지해 줄 기둥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인정하기 싫지만 그게 사람인가 봐. 네가 하는 일들이 멋지다고, 어떻게 그렇게 반짝이는 생각을 할 수 있냐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길 바라봐. 살아가는 일이 지난하다고 느껴질 때 너의 방패가 되어줄 거야. 나도 그렇게 살아. 누군가의 말로 슬픔을 틀어막고, 누군가의 방패가 되어주기도 하면서. 운 좋게도,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니까.


그래서 그도 사람이라고 답했을까. 어쩌면 우린 같은 답을 한 걸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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