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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린 Lily Aug 26. 2024

뒷모습

어떤 등에는 구겨진 시간이 실려있다.


뒷모습에는 많은 이야기가 있다. 표정이 명확치 않아 바라보는 이만 상상할 수 있는, 내밀한 감정이 서려있는 등. 나는 종종 노인의 굽은 등에서 쾌활함을, 네 살배기 아이에게서 느른한 고달픔을 발견하곤 한다. 이런 모순을 마주할 때면 그 모습을 사진으로 붙잡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결코 해명되지 않을 미지의 표정을, 선연하게 담아내고 싶다고 말이다.

아는 사람 중 얼굴보다 더 많은 표정의 등을 지닌 사람이 있다. 뒷모습으로 말하는 사람. 구부정하게 걷다가도 금세 꼿꼿하게 바로 세우는, 그 작지만 딱딱한 등에는 숱하게 견뎌온 시간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어릴 적에는 그저 든든한 존재로 느껴졌던 그 등은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엄마는 말수가 적은 편이다. 매사에 구체적인 언어로 말을 이어가기 보다, 감정과 생각을 뭉퉁그리며 조용히 삼키는 것을 택한다. 그런 엄마를 보며 참 맹탕 같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생략된 마음들을 헤아릴 수 있을 만큼 나의 마음이 크지 못했을 때, 홀로 그렇게 단언하곤 했다. 엄마는 덜 표현했고, 나도 그런 엄마를 따라 덜 표현하는 딸이 되었다. 그렇게 누구도 알아주지 못한 채 생략된 문장들은 엄마도 모르는 사이, 뒷모습에 켜켜이 쌓여 엄마의 표정이 되어갔다. 언젠가부터 나는 엄마를 뒤따라 걸을 때, 부엌에서 규칙적인 소리를 내며 양파를 썰 때, 이부자리에 옆으로 누워 티비를 볼 때, 엄마의 등에서 무언의 묵은 문장들을 본다.

그럴 때면, 엄마의 구겨진 시간들이 실린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오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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