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시작
5년 지기 친구가 어느 날 대뜸 그런 말을 했다.
뭐가 변했냐고 묻자, 생각하는 거나 성격이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그 자리에서는 ‘그래?’ 하고 웃어넘겼지만 집으로 오는 길에 얼마나, 어떻게, 왜 달라진 건지 계속 생각해봤다. 집에 와서 옛날에 적어 놓은 글, 일기들을 살펴보니 이럴 때도 있었구나 싶다. 변했다는 친구의 말이 이해가 가면서 한편으로는 과거의 편협했던 사고방식이, 덜 사교적이었던 성격이 좀 부끄러워졌다.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겠지. 지금의 나도 언젠가는 이런 과거의 모습으로 남는 거라면, 그때는 지금을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해졌다.
친구와 함께 서울에 있는 남산을 걸어서 올라간 적이 있다. 처음에는 언제 저 정상까지 올라가나 했는데 40분 뒤, 바로 그 정상에 올라서 있었다.
‘언제 여기까지 올라왔지? 신기하다.’
결과적으로 내 위치는 산 밑에서 산 정상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하지만 순간이동처럼 한 순간에, 한 걸음에 산을 오른 것이 아니다. 작지만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갔고 그 움직임이 쌓여 어느 순간 산 정상까지 올라 있었다. 변화하는 순간은 마치 스위치가 눌리듯 찰나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계속해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 알아채지 못했을 뿐, 그 작은 변화들이 쌓이고 쌓여서 오늘의 내가 있고 더 나아가 내일의 내가 있을 수 있다.
한때는 이런 변화가 낯설고 또 무서웠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변한다. 나이가 먹으면서 변하고 환경이 달라지면서 변한다.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성격도 변하고 평생 옳을 것 같던 생각도 변한다. 어떤 변화는 간절히 원하던 것이지만 어떤 변화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일어난다. 자칫 잘못하면 시간에 휩쓸려, 주변에 휩쓸려 원하지 않았던 모습으로 바뀌어 있을 수도 있다. 물론 배가 잠시 파도에 휩쓸려 표류하듯 때때로 방황하기도, 뒤로 물러설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변화하는지, 어디로 변화하는지 자신의 위치를 알고 있는 게 중요하다. 위치를 알아야 다시 나아갈 방향을 정할 수 있다.
어린아이가 걸음마를 배울 때 수없이 넘어진다. 넘어지지 않으면 다시 일어서는 방법도 모를 것이다. 많이 넘어져야 잘 넘어지는 법도 알게 된다. 과거의 내가 어떠했든, 그런 과정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와 다른 오늘을 살 수 있다. 예전과는 다르게 지금은 변화가 무섭거나 두렵지 않다. 어제의 나는 사라지지만, 오늘의 새로운 내가 생겨나는 거니까. 사라지는 것을 자연스럽게 놓아주고 새롭게 나타나는 것을 흔쾌히 받아들일 줄 알아야 겠지. 그렇게 놓아주는 과거와 새로 받아들이는 현재, 모두 내 모습이니까.
만약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가 만나면 어떤 일이 생길까? 이어달리기에서 앞주자가 다음 주자에게 바통을 넘기듯,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에게 이런 말을 해 줄 것 같다.
‘어제는 어제부로 잊어버려, 오늘은 오늘부터 새로 시작하는 거야.’
"그래, 오늘부터 시작이야"
내일이 오는 게 싫을 때가 있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했다는 생각이 들 때 주로 그렇다.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왜 벌써 저녁이지? 특히 오늘 할 일이 빼곡히 적힌 리스트에 완료 표시가 하나도 없을 때면 더더욱 잠에 들기 싫다. 조금 늦게 자더라도 하나 정도 해 놓고 자야, 쓰레기 같다는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다. 도대체 잠을 왜 자야 하는 거야! 부지런하게 미리미리 하지 않은 과거의 나보다 ‘인간은 일정 시간 자야 한다’는 자연의 섭리를 탓하고 싶다. 자지 않고 살 수 있으면 그러고 싶을 정도니까. 그러다 보면 새벽 늦게까지 깨어 있거나, 아예 밤을 새기도 한다. 잠이라도 이겨볼 생각인가 보다.
오늘과 내일 사이에는 오늘의 밤과 내일의 아침 사이의 시간이 있다. 이 시간을 좋아한다. 밤의 고요함이 좋다. 낮과는 느낌이 전혀 다르다. 낮에는 여러 가지 소리가 겹겹이 쌓여 완성되는 오케스트라 연주가 들리는 반면, 밤에는 그 수많은 소리들이 사라지고 악기 하나하나 소리를 뽐내는 독무대가 펼쳐진다. 그래서인지 밤이 되면 온 세상이 거대한 울림통이 된 듯 조그마한 소리조차 그 무게감이 커진다. 낮에는 잘 들리지 않던 시계 소리, 선풍기 소리, 펜이 움직이며 내는 소리. 이런 고요함과 무게감이 좀 더 집중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이렇게 집중하다 보면 내 마음의 소리도 더 잘 들을 수 있지 않나 싶다.
어두워진 밤, 창 밖을 바라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텅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검은 공간만이 존재한다. 저 멀리 보는데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 공간에 혼자 깨어 있다고 상상을 하면 나 자신도 저 멀리 한계점 없이 뻗어가는 그림이 그려진다. 나를 가두고 있던 어떤 형상들이 보이던 낮과는 달리, 밤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게 없으니 더 대담해진다. 낮에는 하지 못했던 생각이 물밀듯이 밀려오고, 하지 못했던 행동들을 시도할 용기도 생긴다. 그래서 새벽을 감성에 젖는 시간이라 하고, 새벽에 쓴 글을 아침에 다시 읽으면
‘내가 쓴 글이 맞나’
갸우뚱하게 되는 걸지도. 스스로에게 쓸데없이 많은 한계를 지우곤 하는 나는 오히려 이런 시간이 필요하다. 술에 취하듯 어둠에 취하면 숨어 있던 용기가 하나둘씩 고개를 들고 마치 내가, 내가 아닌 느낌을 준다. 나는 그런 느낌을 즐기기라도 하는 듯 자주 어둠에 취한다.
어둠은 무한한 공간을 보여주는 동시에 끝이라는 시간을 상징하기도 한다. 영화, 드라마, 연극에서도 한 장면의 끝을 서서히 어두워지는 효과(페이드 아웃 Fade out)로 처리하는 걸 볼 수 있다. '오늘'의 장면이 끝나고 '내일'이라는 장면으로 전환되는 이 어두운 시간에 문득 그런 생각을 한다.
‘여기서 인생이 끝나면 어떻게 되는 거지? 그래도 괜찮아?’
그러면 불쑥 이런 말들이 터져 나온다.
‘아직 스카이 다이빙도 못해봤는데?’,
‘야, 죽을 때 죽더라도 캐나다는 가봐야지!’
신기하게도 평소에 듣지 못했던 목소리들이 들린다.
‘흠 생각보다 죽기 전에는 꼭 해봐야 할 일들이 많은데… 한 번 적어볼까?’
하고 버킷리스트를 적기까지 한다. 도대체 평소에는 어디에 숨어 있던 건지, 왜 그동안 잠잠하다가 끝을 생각할 때야 나오는 건지 모르겠다.
“내일부터”
“다음에”
“시간 있을 때”
나는 이런 단어를 쓸 때마다 조금 슬퍼진다. 이런 말들은 ‘(언젠가는 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안 해’라는 말을 다양하게 돌려서 표현하는 말이다. 그러니까 내일부터, 다음에, 시간 있을 때 하는 일은 오늘 당장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인 셈이다. 결국 내일이 돼서도 “내일부터 하지 뭐”라고 말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이런 식으로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일들이 많은데, 그중에 예전부터 꼭 이루고 싶었던 꿈들이 있는 게 더 속상하다. 언제부터, 왜 밀려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인생이 오늘 까지라면 그 꿈들을 이뤄보려는 시도라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끝을 생각하는 건 슬프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 오늘이 끝이라고 생각하는 게 오늘을 사는데 도움이 된다니 좀 이상한 말이다. 시간이 언젠가는 멈춘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남아 있는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고 그동안 가장 하고 싶은 일, 가장 좋은 일만 해야겠다는 다짐이 생긴다. 그렇게 삶의 우선순위가 정해지면 인생의 목표와 방향성을 정하기 쉬워진다.
"인생은 오늘부터 오늘까지"라는 말은 내가 만든 삶의 모토이다. 과거에 어떠했든 오늘부터 새롭게 시작한다는 마음가짐과, 인생이 오늘까지라고 해도 후회 없을 정도로 오늘을 알차게 살자는 뜻이다.
결국 내 삶은 오늘로 시작해서 오늘로 끝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