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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건 없다

운전면허

by 무심한 째까니

“엄마, 이제 안 할래요. 안 하고 싶어요.”

“괜찮아. 떨어질 수도 있지. 다들 많이 떨어져.”

“싫어요! 안 할래요.”

큰아이는 단호하게 전화를 끊었다. 다시 걸었으나 받지 않았다.

집에 들어가 아이 방을 열었다. 이불을 뒤집어쓴 채 미동도 않는다. 자는 것 같진 않았으나 조용히 문을 닫았다. 이럴 땐 마음이 풀릴 때까지 내버려두는 게 낫다. 남편에게 알리니 왜 매사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냐며 투덜거린다. 작은아이는 웃음을 참느라 콧구멍이 벌렁거린다. 괜히 하라고 했나? 자책하며 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렸다.

그날 밤, 10시쯤 파마머리를 산발한 큰아이가 식탁에 앉는다. 눈도 약간 부은 것 같다. 뭐 좀 먹으라니 싫단다. 낮에 한 말을 다시 건네니 눈물을 글썽이며 정말 안 하면 안 되냐고 묻는다.

“운전을 하면 세상의 반을 가지는 거래.”

“면허증만 따. 누가 너 보고 운전하래. 그냥 장롱에 넣어 두면 돼.”

“면허증이 있는데 안 하는 거 하고 없어서 못 하는 거는 천지 차이야.”

“취업하려면 필수야!”

어떤 말에도 아이는 한숨만 푹푹 쉰다. 마지막 카드를 꺼내 들었다.

“수강료 아깝잖아. 적은 돈도 아닌데 다 날리면...”

“절반은 돌려준대요.”

참, 꼼꼼히도 알아봤네.

“그래? 음, 딱 한 번만 더 보자. 응?”

아이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어중간한 반응으로 답을 대신한다.

큰아이는 수능이 끝나고 친구들과 자동차 운전학원을 등록했다. 시에서 면허를 따면 지원금까지 주니 운전학원은 고3 아이들로 북적였다. 이틀 동안 오전 두 시간 주행 연습 후 바로 기능시험을 봤다. 연습 시간이 너무 짧은 게 아니냐고 물으니 먼저 본 친구들은 모두 백점으로 붙었단다. 그래서 백점까지는 아니지만 합격은 할 줄 알았다. 더 충격적인 것은 시작하자마자 실격을 당한 거였다. 내리막 구간에서 속도를 줄이며 좌회전하다가 블록을 넘어갔다. 후진 후 다시 진입하라는 강사의 말에 아이는 너무 당황해 시간을 초과했다.

재시험 날이 잡히고 공터에 가서 연습하자고 하니 예비 면허증이 없어서 안 된다며 펄쩍 뛴다. 준법정신은 출중한데 융통성이... 할 수 없이 코스 사진을 놓고 남편과 내가 돌아가며 핸들을 얼마만큼 돌리는지 모의 주행을 말로 가르쳤다.

“코너에서 핸들을 완전히 다 감았다 바로 풀면서 가.”

“5초 안에 어떻게 그렇게 해요?”

남편과 나는 서로를 바라봤다. 핸들을 감았다 푸는 시간을 재본 적은 없지만 5초면 충분했다. 아이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코스 사진을 뚫어지게 본다. 불안하다.

다음날,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 목소리가 밝다. 안심이다.

“저 또 떨어졌어요.” 여전히 밝다. 그 들뜬 목소리가 허탈에서 오는 헛웃음 같은 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장내 시험은 어떻게 통과했다고 쳐요. 도로주행은요? 도로에 나가서 사고 치면 어떡해요?’라며 첫 시험에 떨어지고 했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에고, 그래. 세상의 반을 꼭 운전으로 가지라는 법은 없잖아. 튼튼한 두 다리로 세상을 다 가질 수도 있지 않은가? 남은 학원비를 환불받으러 갔다. 내 팔짱을 낀 아이는 시험장을 힐끔거리더니 속이 울렁거린단다. 우리는 다섯 칸 중 두 칸이 ‘탈락’으로 선명하게 찍힌 서류를 안고 사무실을 나왔다. 조수석에 앉아 날 경이롭게 바라보는 딸을 태우고 가속 페달을 힘껏 밟아 스타벅스로 향했다. 속이 쓰릴 때는 달콤한 것들이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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