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두가 익을 때까지

글...

by 무심한 째까니

“엄마, 계단 옆 나무요. 벚나무가 아닌가 봐요?”
“무슨 소리야? 조그만 나무?”
“네, 열매가 커요”
“버찌가 큰 것도 있어.”
“엄지랑 검지를 동글게 만 크긴데요.”
“뻥치지 마. 무슨 버찌가 그렇게 커?”

학원에서 돌아오던 아이는 자신이 발견한 것을 전화로 열심히 알려 주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말고 얼른 들어와.”라며 전화를 끊었다. 아이가 말하는 그 나무는 올 봄에도 아파트 단지 내 다른 벚꽃보다 훨씬 빠르게 꽃을 피웠다.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있어서 좀 이르게 피는 거 같았다. 가냘픈 가지마다 총총히 꽃을 매달고 있어 더 기억이 난다. 아이도 벌써 벚꽃이 피었다며 좋아했다. 이팝나무 꽃이 날리고 장미가 울타리마다 봉오리를 밀어 올리면 벚나무는 거대한 초록을 품은 작은 숲이 된다. 그러면 우리는 팝콘처럼 터지던 꽃은 잊어버린다.

“봐요.” 아이가 그 나무 아래로 이끈다. 나는 의심 가득한 눈으로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저녁 해가 넘어가는 중이라 가지 사이가 어두웠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에 동전 크기만 한 열매가 선명하게 보였다. “어머, 자두네.” 그건 말도 안 되게 큰 버찌가 아니라 피자두였다. 아이가 옆에서 “내가 봄에 잎이 좀 빨갛다고 하니까 엄마가 그런 것도 있다고 했잖아요.”라며 이른 봄에 묻어둔 억울함까지 풀어낸다. 나는 괜히 미안해져서 익으면 따 먹자고 꼬드겼다. 내 자두나무도 아닌데 말이다. 아이는 웃으며 좋단다. 우리는 자두나무 아래서 비밀스럽게 약속하고 킥킥거렸다. 자두 서너 개가 웃음소리에 곧 떨어질 듯 위태롭다.

찬바람에 휘청이던 게 자두 꽃이였다니. 그 많던 꽃송이 중 열매가 된 건 겨우 몇 알이지만 대견하다. 실하게 커 새콤한 자두가 될지 맛이 들기 전 모조리 떨어질지 알 수 없지만 매해 비실한 나무의 선물이 기대된다. 내 글도 그랬으면 좋겠다. 아직은 설익어 맛은 없지만 다음 계절이 기대되는 자두 같은 글. 너무 큰 욕심인가? 실은 나는 자두처럼 지루한 시간을 견디는 끈기도 계절에 순응하는 용기도 없다. 그런데 자꾸만 달콤한 열매를 맺고 싶은 욕심만 커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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