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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단걸 Apr 30. 2022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걸까?

신나는 일도, 즐거운 일이 없어도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걸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때가 있다. 야근이 반복되는 어느 날 퇴근길, 차도 막히지 않는 도로에서 이런 생각으로 내 머릿속이 꽉 막혀버릴 때, 하루 종일 울리지 않는 핸드폰을 멍하니 쳐다보는 어느 주말 저녁에, 바쁜 하루를 마감하고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는 어떤 날 밤에 이런 의문이 내 귓가에 울리는 것이다. 이렇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또 이렇게 살지 않으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 채로 말이다. 오랜 친구들과의 오랜만에 하는 통화에서 ‘요즘엔 신나는 일이, 재밌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푸념에 맞장구치면서 내 나이대의 사람들은 어쩌면 나와 같은 고민들에 둘러싸여 살고 있구나 하는 순간들이 있다.


몇 년 전, 동생이 내게 내 전 남자 친구가 결혼을 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나는 “와, 걔랑 결혼하는 여자도 있구나” 하고 넘겼더랬다. 그 녀석과 헤어진 이유는 셀 수 없이 많았다. 스무 살 이후부터 내가 만나온 남자들과 헤어진 이유들은 각자 달랐고, 또 같은 이유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을 만난 것도 각자 다른 이유이기도 했고, 같은 이유이기도 했다. 동생이 알려준 소식의 주인공인 그 녀석과는 타이베이의 한 여행자 숙소에서 만났다. 오랜 연애를 끝내고 혼자 배낭을 메고 떠난 첫 여행이었다. 한국에서 왔다는 이야기에 얼마 전에 한국을 여행했다며 내 가이드북에 적인 한글을 더듬더듬 읽던 녀석이었다. 나보다 나이가 적어도 다섯 살은 많다고 생각했던 녀석은 나보다 다섯 살이나 어린 녀석이었고, 멀고도 먼 스웨덴에서 온 친구였다. 서로의 나이를 놀리고 어설픈 영어로 대화를 나누었던 우린 곧 페이스북 친구가 되었고 가끔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몇 년 뒤, 여느 때처럼 페이스북 메신저로 서로의 근황을 묻던 와중에 내가 여행 계획을 이야기하자 그도 내 여행에 합류하겠다고 했다. 혼자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발리까지 배낭여행을 계획했던 나는 동행이 생겨 기뻤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 한국에서, 스웨덴에서 오랜 비행 끝에 자카르타에서 만났다. 몇 년 만에 만난 그는 직장인이 되어있었고, 역시 나보다 다섯 살은 더 많아 보였다. 어쨌든 자카르타에 있는 내 친구들과 만나 함께 여행 계획을 짜고 족자카르타로 날아가 또 다른 내 친구들을 만났다. 그곳에서 낡은 봉고를 타고 발리까지 가는 여정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화산에 올라 함께 일출을 보았고, 결코 싸지 않은 지프 투어도 했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여행 중 내가 발리로 넘어갈 때 필요한 페리 티켓을 잃어버렸다. 그리 비싸지 않았지만 내 예산에 포함되지 않은 우발비용은 당시 나에게 무척 부담이었다. 나는 벌게진 얼굴로 숙소에서 정신없이 내 짐을 모두 꺼내 침대에 늘어놓고서 티켓을 찾았다. 결국 그렇게 해서도 티켓을 찾지 못하자 그 녀석에게 내가 어디에 둔 건지 생각해보라고 다그쳤고, 결국 그 녀석의 짐도 모두 까보라고 눈을 부라렸었다. 저녁을 먹으러 가서도 나는 계속 잃어버린 티켓 때문에 속상해했는데 결국 그 녀석이 나에게 말했다. 

“그 티켓 때문에 여행을 망치지는 마. 이런 일은 언제나 일어나. 그것 때문에 다른 모든 걸 망칠 수는 없잖아. 그 티켓은 내가 다시 살게. 그러니 이제 그만 속상해하자.” 


그때가 그 순간이었다. 나보다 다섯 살이 많아 보이지만 다섯 살이나 어린 이 키 큰 스웨덴인이, 느릿느릿 굼뜬 행동에 여행 내내 내 성질을 긁었던 그에게 반한 순간이. 영화처럼 여행지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 우리는 스웨덴과 한국이라는 거리의 제약이 있었지만 끝내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스웨덴으로 떠나 그와 함께하는 선택을 했었다. 그리고 3개월 후, 내가 한국으로 돌아오고 그도 곧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나와 함께 하기 위해 한국으로 왔더랬다. 당시 나의 영어는 일상적인 대화까지는 어찌어찌 가능한 수준이었고, 그의 한국어는 한정된 단어만을 구사하는 수준이었기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과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삼켜야 했다. 우리가 헤어지게 된 이유는 언어 때문은 아니었다. 나는 다시 취업을 했고 매일 야근이 이어지자 그를 방치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내가 왜 매일 밤늦게 퇴근해야 하는 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나는 그의 놈팽이 생활이 못마땅했다. 그 외에도 우리가 헤어진 이유는 셀 수 없이 많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나와 그는 서로의 못마땅한 순간들과 이해하지 못할 결정들을 함께 넘길 만큼 애정의 크기가 작아져있었다. 


내가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걸까’라는 생각이 들 때면 과거를 되돌아본다. 내 지난 날들 중에 일정 시간을 공유했던 내 전 남자 친구들 중에 결혼을 한 친구들도 여럿이고 더 이상 소식을 듣지 못하는 친구들도 여럿이다. 만약 그때 내가 상대방의 단점을 참고 넘겼더라면, 내가 그들이 원하는 여자 친구로 남아있었다면 나의 지금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 지난날에 대한 후회가 아니라 순수하게 다른 선택을 했을 내가 궁금한 순간들. 나는 지금보다 행복했을까, 지금보다 불행졌을까. 내가 만약에 정치외교학이 아닌 국문학을 선택했더라면, 내가 만약에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임용고시를 보았다면, 내가 만약 그때 그와 헤어지지 않았다면, 내가 그때 떠나는 그를 끝내 붙잡았다면, 내가 만약 그때 그랬더라면 하는. 


어쩌면 인생은 선택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부터 잠에 드는 순간까지 우리는 매일 크고 작은 선택과 결정을 한다. 일어나자마자 물 한잔을 마실지, 씻고 밥을 먹을지 먹고 나서 씻을지, 점심 메뉴는 무엇으로 할지, 퇴근하는 차 안에서 음악을 들을지, 라디오를 켤지, 강아지들 산책을 시키고 밥을 먹일지, 밥을 먹이고 산책을 시킬지, 달리기를 하러 갈 때 긴 바지를 입고 반팔 티셔츠를 입을지, 반바지를 입고 긴팔 티셔츠를 입을지, 잠들기 전에 어떤 책을 읽을지. 아주 사소한 선택들의 연속이 모여 나의 매일을 만들고 나의 1년을 만들고 그 1년이 차곡차곡 쌓여 내 시간이 되어간다. 매일매일 내 앞에 놓인 작디작은 선택지들 앞에서 나는 어떤 작은 선택들을 했었나. 결코 나는 그 작은 선택지를 놓고 차선을 선택한 적은 없었다. 내가 어제 했던 지극히 사소한 선택들과 결정들은 그 순간 나의 가장 최선이었던 것이다. 


속상한 일 앞에서, 화가 치밀어오는 상황에서 나는 그때 그 녀석이 한 이야기를 생각한다. ‘그래, 이것 때문에 오늘 하루를 다 망칠 수 없지.’ 그런 순간에 나는 그녀석의 말을 떠올리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지금 내가 잘 살고 있는지 의심이 드는 순간들이 길어져 나를 우울하게 하는 시간이 결코 길어지지 않는 이유는 이것일 것이다. 나 스스로를 다독이는 것. 너는 지금까지 최선의 선택들을 해 온 것이라고, 그러니 의심은 거두라고. 지금 당장 재밌는 일이, 신나는 일이 없을지라도 이렇게 매일 쌓이는 시간들이 어쩌면 가장 신나고 재밌는 일이라고. 


이렇게 살아도 아주 괜찮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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