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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단걸 May 20. 2022

연기력이 늘어가는 강아지

날로달로 연기가 느는 강아지와 날로달로 멍청해지는 나



주말 아침, 나와 함께 늦잠을 자던 강아지들은 내가 일어난 기척에 각자 잠을 깨고 제 자리에서 기지개를 켰다. 내 옆에서 자던 꽃님이도 기지개를 켜며 몸을 뒹굴거리는 중에 그만 침대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놀라 몸을 일으켜고 바닥을 내려다보니 꽃님이는 원래 거실로 나가려고 했다는 듯이 그대로 거실로 나가버렸다. 다시 침실로 오라고 꽃님이를 불렀지만 꽃님이는 오지 않았다. 걱정된 내가 거실로 나가보니 거실 방석에 누워 다시 잠을 청하고 있었다. 나는 꽃님이 옆에 누워서 말했다.

“야, 너 민망하니까 이러는 거지?”

내 물음에 꽃님이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정말로 자기는 거실로 나올 계획이었다고, 침대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그저 등으로 내려왔을 뿐이라는 듯이.


산책을 하다 보면 어색하게 연기하는 꽃님이를 종종 볼 수 있다. 어둑한 저녁에 나선 산책길에 비닐봉지가 떨어져 있다거나 나무 밑동을 보고 꽃님이는 강아지인 줄 알고 신나게 달려 나간다. 가까이 가서야 강아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채고는 쿨하게 몸을 돌려 제 갈길을 가는 꽃님이를 보고 있노라면 웃음이 나는 것이다. 강아지 친구인 줄 알고 신나서 달려가 놓고는 몸을 돌리는 모습이 왠지 민망함을 애써 감추려는 것 같다. 집 근처에 청소년 수련관이 있는데 그 앞에 커다란 거울이 있어 아이들이 춤 연습을 하는 경우를 자주 보는데 신나서 춤추는 아이들 모습을 보면서 걷다가 그만 꽃님이가 화단에 머리를 박은 적이 있었다. 세게 박은 것은 아니었고, 나는 당연히 꽃님이가 화단을 피할 것이라 생각하고 미리 경고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화단에 머리를 박은 꽃님이는 역시나 또 쿨하게 머리가 간지러워서 잠깐 화단을 이용한 것인 것 마냥 모른 척 엉덩이를 신나게 흔들며 내 앞장서서 걸어갔다.


항상 궁금하다.  아이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것일까. 먹는 것과 자는 , 산책과 배변에 대한 생각만 하는  같지는 않으니 나는  아이들의 생각이 너무 궁금한 것이다. 특히 잠에서 깨서 가만히 앉아 있을 , 방석에서 곤히 자다가 갑자기 일어나 캔넬 문을 스스로 열고 들어가 앉아있을 , 한동안 가지고 놀지 않던 장난감을 꺼내와서  , 내가 늦잠을 자는 주말 아침에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는 아이들과 눈을 마주칠   그들의 생각이 궁금하다. 특히 함께 산책을 하다가 갑자기 화들짝 놀라는 모습을  때면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놀라는 것일까 의문이 든다. 선거 시즌에 선거 벽보가 걸린 길을 걷다가 갑자기 꽃님이가 선거 벽보의 사진을 진짜 사람으로 착각하고 화들짝 놀라는 모습을 보면  모습이 귀엽다가도 정말  아이는 무슨 생각을 그리 깊게 하며 걸었던 것일까 궁금해진다. 화들짝 놀라는 모습을 들켜놓고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엉덩이 춤을 추며 앞장서서 걸어갈  연기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것은 아닌지 괜히 설레는 것이다.


봄이의 심장병 때문에 한 달에 한 번씩 동물병원에 간다. 꽃님이는 동물병원에 가는 게 싫으면서도 본인은 진료를 받지 않으므로 마지못해 따라다녔는데 얼마 전에도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갔다가 광견병 예방접종을 맞았다. 이번에도 당연히 봄이만 진료를 받을 것이라 생각했던 모양이었던지 집에 가는 길에 화난 척 연기를 했다. 항상 조수석에 얌전히 앉아있던 꽃님이는 내가 조수석에 앉혀주자 갑자기 몸을 일으켜 뒷좌석으로 가버렸다. 봄이는 나보다 꽃님이를 더 따라 하기 때문인지 봄이도 이내 뒷좌석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이 아닌가! 아 이토록 투명한 감정표현의 강아지들이라니! 본인들의 건강을 위해 병원 진료를 정기적으로 하고, 잊지 않고 예방 접종을 해주는 나를 대역죄인 취급이라니! 그렇지만 이 모든 행동은 내가 미안함을 느껴 간식을 평소보다 두배로 줄 수 있도록 나를 조정하는 행동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집에 도착해 간식을 하나씩 주었더니 이내 다 먹고서는 당당히 나를 따라다니며 자꾸 간식 서랍장으로 유도하는 것이었다. ‘아니, 너네 열 받았다며! 아까는 나랑 두 번 다시 말하지 않을 것처럼 행동하더니, 왜 이러는 거야.’ 하며 나는 또 간식을 하나 더 꺼내 아이들에게 주었다. 뒤늦게 이 모든 것이 연기였다는 것을 알아차린 나는 허공을 응시하며 생각했다. ‘아, 또 당했구나. 꽃님이를 대학에 보내야 할까, 연기 학원을 보내야 하나. 아니면 내가 바보 탈출 학원을 다녀야 하나.’


꽃님이를 입양한 지 족히 5년은 넘은 것 같은데 이제 2년이 지났다. 처음부터 나와 가족이었던 것처럼 나를 조종하는 법을 완벽히 깨달은 듯 어떻게 하면 나를 구슬려서 간식을 얻어내는지 상황에 따라 연기를 하는 꽃님이를 보면 꽃님이가 유난히 똑똑한 강아지인 것인지 내가 유독 멍청한 보호자인지 헷갈린다. 야근이 반복되어 산책을 못하면 방석이나 러그에 오줌을 싸 놓고 나를 질책할 때, 그리 덥지 않은 날씨임에도 계속 구석을 찾아 철퍼덕 누워 한숨을 크게 내쉬어 기어이 에어컨을 틀게 만들 때, 침대에 누워 책을 읽느라 조명을 켜 놓고 있으면 계속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 몸을 들썩여서 내가 곧 조명을 끄고 잠에 잠에 들게 만들 때, 내가 강아지를 키우는 것인지 상전을 모시는 것인지 그 경계가 흐릿할 때가 있다. 분명한 것을 좋아하는 나는 내 강아지들에게서 느껴지는 이런 모호함이 좋다. 우리는 분명 가족이고, 강아지들의 세계에서는 위계질서가 중요하다지만 우리는 가족 구성원으로 평등하기에.


오늘도 산책을 끝내고 목욕을 시키려고 했더니 집에 오자마자 촵촵 소리를 내며 물을 마시고는 유난히 시끄럽게 코를 골면서 계속 실눈을 뜨고 내가 욕조에 물을 얼마나 받았는지 살피며 잠에 든 척을 하는 꽃님이를 보고 조용히 욕실로 들어가 수도를 잠갔다.


날로달로 연기력이 늘어가는 강아지와 날로달로 멍청해지는 나.

휴우.



감히 주사를 맞혀? 열 받은 꽃님


이렇게 날씨가 좋은데 집에만 있을 거냐? 산책 안 나가?


나 아직 안 잔다. 채널 돌리지 마라.


티브이 보는 꽃님이. 무슨 생각을 하며 티브이를 보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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