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려본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고통이랄까.
나는 걸리지 않을 줄 알았다. 함께 점심 식사를 하는 동료들이 차례로 코로나에 걸려 줄줄이 자가격리를 하던 지난봄, 나는 그 파도에 휩쓸리지 않았더랬다. 혼자 살고 있기 때문에, 백신을 다 맞았기 때문에, 모임들도 그만두었기 때문에, 축구를 할 때도 마스크를 쓰고 뛰었기 때문에 나는 이번에도 코로나에 걸리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어쩌면 내가 슈퍼 항체를 가진 사람은 아닐까 하는 오만한 생각을 하기도 했더랬다. 얼마 전, 동료 중 한 명이 확진이 되어 자가 격리를 끝내고 회사로 복귀했고, 며칠이 지나 함께 점심 식사를 했던 것이 원인이었을까. 너무 바빠 충분히 잠을 자지 못하고 운동도 하지 못한 나날들이 계속되어 나의 면역력이 떨어졌던 것이 원인이었을까. 결국 나는 코로나에 걸리고 말았다.
같은 사무실에서 확진자가 나왔기 때문에 머리가 아프거나 몸살 기운이 있으면 자가 키트를 이용해 수시로 검사를 했다. 그날도 그랬다. 그전부터 몸이 무거웠지만 며칠 동안 나는 밤 12시까지 노트북을 켜고 일을 했어야 했기에 과로로 인한 일시적인 몸살이라고 생각했다. 주말임에도 나는 쉴 수가 없었다. 주말 근무를 신청했기 때문이었다. 내년 예산안 마감일 코앞이었기에 주말에도, 컨디션이 좋지 않았음에도 밤늦게까지 일을 해야 했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 목이 아팠다. 열도 있었다. 출근 전 자가 키트를 했지만 또 음성이었다. 나는 편도선염을 일평생 달고 살았기 때문에 자가 키트에서 계속 음성이 뜨자 이번에도 편도선염인가 했더랬다. 타이레놀 두 개를 물과 함께 삼키는데 물에서 쓴맛이 났다. 이번 편도선염은 평소와 다르다는 생각을 하며 무거운 몸을 이끌고 회사에 갔다. 오후가 되자 두통이 점점 심해졌고 이미 타이레놀을 여섯 개나 먹은 상태였기에 더 이상 진통제를 먹기가 꺼려졌다. 퇴근 후 강아지들 산책을 시키는데 걸을 때마다 구름 속을 걷는 듯 휘청거렸다. 이상했다. 퇴근을 해서 그런지 회사에서보단 몸이 가벼운 것 같았는데 이상하게도 온 몸이 아팠고, 내 두 다리는 어쩐지 이 세상에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잠자리에 들기 전, 체온을 쟀는데 38도가 넘었다. 체온계에선 연신 경고음과 함께 빨간 불이 들어왔고 나는 대여섯 번을 재고 또 재었지만 계속 38.2도, 38.4도를 맴돌았다. 열이 너무 올라 잠을 잘 수가 없었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다음 날, 출근 준비를 하고 다시 자가 키트를 했는데, 선명히 두줄이 떴다. 나는 팀장님께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를 말하는 순간, 나는 목소리를 잃었음을 알게 되었다. 회사에 상황을 이야기하고, 근처 병원이 오픈하는 시간에 맞춰 현관을 나섰다. 자가 키트로 양성을 확인했던 터라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못하고 14층에서 1층까지 걸어서 내려갔다. 다리는 연신 휘청였지만 손잡이를 잡기조차 꺼려졌다. 병원까지 걸어가는 15분 동안 내 몸은 나의 의지와 달리 계속 휘청댔고 불어오는 바람에도 근육통이 느껴졌다. 신속항원검사로 확진을 확인하고 약을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입맛이 없었고, 열 때문인지는 몰라도 배도 고프지 않았으나 약사는 꼭 밥을 먹고 약을 먹으라고 했다. 다행히 지난주에 반찬가게에서 사둔 반찬들이 있었고, 내가 코로나에 걸렸다는 이야기에 친구가 죽을 보내주었다.
집에 도착하자 시청에서 문자가 왔다. 자가격리를 하라는 내용이었다. 회사에 코로나 확진을 알렸다. 입맛은 없었지만 죽을 몇 숟가락 뜨고 받아온 약을 털어 넣었다. 한숨 잤으면 좋겠지만 해야 할 일이 쌓여있었다. 팀장님께 내가 확인해야 하는 서류를 퀵서비스로 보내달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팀장님이 직접 서류를 들고 집으로 와 현관 앞에 서류 뭉치를 두고 가셨다. 나는 일을 했다. 엄마는 무슨 놈의 회사가 코로나에 걸려서 말도 못 하는 애한테 일을 시키냐고 전화로 화를 냈다. 그날도 나는 밤 10시가 넘어서까지 일을 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잠자리에 들었다. 약이 효과가 있던 건지 열은 좀 내려갔다. 그러나 목이 너무 아팠고, 기침은 잦아들지 않았다. 코로나 때문인 지는 몰라도 눈에도 계속 눈곱이 꼈고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느낌이 들었다. 그다음 날에도 몸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근육통이 얼마나 심했던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에도 온몸이 아팠다.
코로나에 걸리면 이토록 아플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더랬다. 사람마다 편차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자가격리를 끝내고 돌아오는 동료들의 ‘진짜 너무너무 아프다’는 말에 고개만 끄덕였더랬다. 내가 걸려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 고통을 상상하기란, 또 이해하기란 쉽지 않았다. 업무차 동료들과 통화할 때, 이미 코로나에 걸렸던 동료들에게는 ‘이건 걸려본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고통’이라고 쉰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고, 아직 걸리지 않은 동료들에게는 다 갈라진 목소리로 ‘정말 아프니까 절대 걸리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보통 3일 정도면 괜찮아진다고 했는데, 나는 자가격리기간 동안 매일같이 밤 9시, 10시, 어떤 날은 새벽 3시까지 일을 했다. 그래서인지 내 목소리는 자가격리가 끝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코로나 후유증으로 나는 여전히 냄새를 잘 맡지 못하고 맛을 잘 느끼지 못한다.
자가격리를 끝내고 다음날 아침 출근길, 공기가 바뀌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가 있었다.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코로나의 아픔이 고작 일주일 만에 사라졌고, 단지 일주일 만에 거짓말처럼 계절이 바뀌었다. 어찌나 아팠던 지,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되었다. 매일매일 작은 행복에도 웃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순간을 즐기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당연하지만 쉽지 않은, 그런 다짐들 말이다. 언젠가는 내가 코로나에 걸려 너무 아파했던 순간들을 까맣게 잊게 되는 날이 올 테지만 어쩐지 아파하면서 했던 다짐들은 쉽사리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코로나에 걸려 아파하는 동안 계절은 바뀌었고, 그리고 나의 세상도 아주 조금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