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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단걸 Oct 03. 2022

일주일에 접촉사고 두 번

누구에게나 운이 나쁜 때가 있으니까.


일주일 동안 접촉사고가 두 번 났다. 운전을 시작한 지 십 년이 다 되었고, 이제까지 접촉사고가 난 적이 총 세 번, 그중 두 번이 최근 일주일 사이에 난 것이다.


신호대기 중에 뒤에 오던 오토바이가 내 차를 박았다. 세게 박은 것은 아니었지만 내 차 뒷 범퍼에는 오토바이가 박은 흔적이 남겨졌다. 오토바이 운전자는 내게 급정거를 하면 어쩌냐고 나를 몰아세웠고, 나는 나더러 신호위반을 하라는 거냐며 항변했다. 저 멀리서부터 신호가 곧 바뀌는 게 보였는데, 본인이 안전거리를 확보하지 않았으면서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괜찮냐는 말 한마디 없이 자꾸만 내가 급정거를 했기 때문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강아지가 다리를 절어서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었기에, 당시 너무 피곤했던 나는 이런 소모적인 논쟁을 더 이어 나가고 싶지 않았다.

“이건 제가 처리할 테니까 그냥 가세요.” 

“진짜요?”

“네. 그냥 가세요.”

“진짜 가도 된다고요?”

“네. 그냥 가셔도 된다고요.”

그땐 정신이 없어서 그냥 왔는데 뒤늦게 생각해보니 그는 나에게 끝까지 고맙다는 그 흔한 인사 한마디를 하지 않았다. 어쨌든, 오토바이가 박은 흔적은 그 면적이 넓지 않았고, 그 정도는 굳이 도색을 하지 않아도 될 듯했다. 


오토바이 사고가 난 며칠 후 아침, 출근을 하려고 주차장으로 내려갔더니 차 한 대가 내 차 뒤에 이중주차를 했다. 주차장이 충분치 않은 우리 아파트에서 이중주차는 흔한 일이었고, 나도 늦게 퇴근해 주차할 공간이 없으면 이중주차를 하기 때문에 나는 항상 그랬듯이 이중 주차된 차를 밀었는데 밀리지 않았다. 혼자 낑낑거리며 차를 밀고 있는 나를 발견한 경비 아저씨가 달려와 함께 밀어주었으나 차가 밀리지 않았다. 결국 경비 아저씨가 차주에게 전화를 해주었고, 조금 뒤 차주로 보이는 여성분이 차를 빼주었다. 나는 차가 빠진 것을 확인하고 후진을 했다. 기어를 바꾸기 위해 잠시 정차를 하고 나가는 길에 들어오는 차가 없는지 확인하고 기어를 바꾸려는 찰나에 이중주차를 했던 차가 갑자기 후진을 하더니 내 차를 박았다. 하아. 

“아니 이렇게 안 보고 들어오면 어떻게 해요!”

“네? 제가요? 선생님께서 차를 뺀 것을 보고 제가 먼저 후진해서 나왔잖아요. 뒤에 차가 있는 것을 안 보고 후진을 한 건 제가 아니잖아요” 

차가 부딪히는 소리에 경비 아저씨가 뛰어나오셨고, 운전자에게 보지도 않고 후진을 하면 어쩌냐고 하셨다. 결국 그 운전자는 보험처리를 해주겠다고 했고 나는 출근을 했다. 내 차 엉덩이에 커다란 멍을 달고서. 


스물여덟 살에 운전면허를 땄다. 친구들 대다수는 수능 시험을 치고 운전면허를 땄지만 나는 내 삶에 차를 소유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고, 부모님께 운전면허 시험을 치겠다고 돈을 달라고 할 용기도 없었기에 서른 가까이 남들 다 가지고 있다는 운전면허가 없었다.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외근을 나갈 일이 잦아지면서 운전을 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 그래서 퇴근 후 운전면허 학원으로 갔고, 어찌어찌해서 면허를 따게 되었다. 면허를 땄지만 그 누구도 내게 차를 운전할 기회를 주지 않았고(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지만) 나 조차도 운전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나의 첫 차는 셋째 동생이 타던 오래된 ‘로체’였다. 나는 동생이 타던 오래된 ‘로체’를 단돈 200만 원에 양도받게 되었다. (이후에 내가 셋째 동생에게 사기?를 당한 것이 밝혀졌지만) 로체를 봉화에서 경주까지 가지고 오는 내내 식은땀이 흘렀다. 이후에도 시골에 내려가는 일이 없다면 나의 로체는 아파트 주차장에 홀로 서있었다. 차가 생겼지만 차를 탈 일은 딱히 없었다. 매일 외로이 서있는 차를 매일 출 퇴근길에 살펴보았는데, 어느 날은 누군가가 차를 긁고 갔는지 선명한 흰색 자국이 앞 범퍼에 남겨지기도 했다. 


차츰 용기가 생겨서 차를 이용하는 날이 늘어났고, 시골집에 갔다가 막내 동생과 함께 피자를 사 먹기 위해 안동을 갔을 때였다. 신호가 초록색으로 바뀌어 출발을 하려는데 옆 차선에 있던 차가 내 차 운전석을 박았고 이미 액셀에 발을 올리고 천천히 출발하던 내 차의 운전석부터 뒷좌석까지 일직선으로 길게 흠집이 생겼다. 첫 접촉사고였다. 이토록 쉽게 교통사고가 나다니. 당황한 나는 얼른 내려서 차를 확인했다. 상대차에서는 중년의 남성과 여성이 내렸다. 운전자는 아저씨였고, 서로 상황 파악을 하고 있는 중에 아주머니가 대뜸 나에게 소리쳤다. 

“운전을 그렇게 하면 어떻게 해요!” 

처음 겪는 사고에 멘탈이 나가 있는 나에게, 누가 봐도 그쪽 잘못인데도 나에게 소리를 치자 나는 울컥했다. 어쩐지 넋이 나간 내 표정에 아저씨도 내 잘못으로 넘기려는 지 허리에 두 손을 올리고는 뭐라고 말을 하려는 찰나에 조수석에 앉아있던 막내 동생이 내렸다. 건장한 남자가 차에서 내리는 것을 보더니 아저씨는 급히 아주머니를 막아 세우면서 

“내가 못 보고 들어왔다. 내 잘못이니 내가 다 보험처리를 하겠다”

라고 했고 나는 내 보험사에 연락을 했고, 그쪽에서도 그쪽 보험사에 연락을 했더랬다. 보험사 직원에게 저쪽에서 다 처리하기로 했다고 하자 내가 가입한 보험사 직원이 

“교통사고에서 100프로 과실로 처리하는 경우가 없다. 당신도 어느 정도 과실이 있지 않느냐”

라고 말했고 황당한 내가 이 사고에서 내 과실이 대체 무어냐고 몰아세우는 와중에 가해차량 운전자가 달려오더니 ‘이 아가씨 말이 다 맞다. 내가 못 보고 들어왔다. 다 내 잘못이다.’라고 해서 그렇게 처리가 되었다. 


십 년의 운전 경력에 가벼운 접촉 사고 세 번이면, 더구나 내 잘못이 아닌 상대측의 잘못으로 인한 접촉 사고가 세 번이면 나쁘지 않은 기록일지도 모르지만, 어쩐지 일주일에 두 번이나 접촉사고가 나자 나는 덜컥 겁이 났다. 며칠 동안은 계속해서 불길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혹시 더 큰일이 일어나려고 이러는 것은 아닐까. 그게 언제 일까. 나는 무사히 내년 생일을 맞을 수 있으려나. 지금부터라도 주변정리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운이 없어서 사고가 났을 뿐인데 한번 그 방향으로 생각이 뻗어나가자 멈출 수가 없었다. 


사고 후 친구들에게 푸닥거리라도 해야겠다고 농담처럼 말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닭강정과 맥주 한 캔으로 혼자서 조용히 푸닥거리를 했더랬다. 닭강정과 맥주 한 캔으로 한 푸닥거리 덕분일까. 그 저녁 이후로 나는 점차 부정적인 생각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 무사히 차 수리가 끝이 났고, 시간이 조금씩 지나자 불안한 생각들은, 불길한 기운들이 차츰 사라졌다. 너무 운이 없었을 뿐이었고, 큰 사고가 아닌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커져갔다. 


누구나 운이 좋지 않은 날이 있고, 누구에게나 운이 나쁜 주가 있고, 누구에게든 운이 따라주지 않는 때가 있으니까. 나도 그런 주를 보낸 것뿐이었다고. 단지 그것뿐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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