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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단걸 Oct 10. 2022

재밌는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차라리 무료한 것이 낫겠어.


“언니, 뭐 재밌는 이야기 없어?” 

육아에 지친 동생은 버릇처럼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른다. 아기와 24시간을 보내는 동생에 비하면 나는 사회생활을 하고 있으니 동생에게 해줄 재미있는 이야기 한 두 개쯤은 가지고 있다. 동생의 요구에 나는 인터넷에서 본 재미있는 이야기에 약간의 과장을 섞어 이야기를 한다. 내 이야기에 동생은 

“언니, 진짜 재밌다. 낄낄낄” 

나도 배꼽이 빠진 것처럼 웃다가 

“야 진짜 웃기지 않냐?” 

서로 한참을 전화기를 붙잡고 웃는다. 갑자기 동생이 정색을 하며 한숨을 쉬었다가 또다시 내게 말한다.

“언니, 뭐 재밌는 이야기 없어?”

“야! 웃기다고 이제까지 쳐 웃어 놓고! 미쳤어? 내가 재밌는 이야기 만드는 기계냐?”

말로는 그렇게 면박을 주고 나는 또 머릿속으로 재밌는 이야기를 찾고 있다. 


인터넷에는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가볍게 웃고 넘길 수 있는 이야기, 감동적인 이야기, 분노하게 만드는 이야기, 소설보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그 이야기들이 사실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분명하게 들리는 ‘바이든이’라는 단어조차도 ‘날리면’이라고 들린다고 하는 ‘조작된 사실’을, ‘사실’이라고 믿는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지 않은가. 청와대 이전에 들어가는 비용이 496억이라고, 청와대가 용산 국방부 청사로 이전하게 되면서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를 비롯한 나머지 기관들이 줄줄이 이전하는 비용들은 청와대 이전 비용이 아니라고 하는, 웃기지만 전혀 웃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하는 이들과 같은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가. 


왜 나에게만 재미있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내 주변에는 저토록 맹목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아직 지구상에는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땐 가벼이 웃어넘겼는데 최근 이른바 ‘평평한 지구 학회’에 가입하는 사람들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자 마냥 웃어넘길 수가 없었다. 명확한 과학적 사실조차 음모론을 제기하고 그것을 믿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현상, 그러므로 ‘바이든이’라는 단어가 ‘날리면’으로 들린다는 믿음은 어쩌면 귀여운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으려나. 아니다. 무언가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 귀여운 것은 세네 살의 어린아이들의 그것만이 그럴 것이다. 어른들의 그것은 어쩐지 역겨움을 넘어 애잔해지기도 한다. 


최근 ‘윤석열차’라는 고등학생이 그린 만화가 전국학생만화공모전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이에 문체부가 주최 측에 ‘엄중 경고’ 조치를 했다는 소식에 이마를 짚었다. 자유를 강조하는 정부에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지 못하는 현실이라니.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여론에 밀려 다음에 제시한 카드는 ‘표절’이었고, 이는 원작자가 나서 표절이 아니며 훌륭한 작품이라는 의견을 피력하자 ‘정치적인 의도’가 있는 작품은 결격 사항이라는 조건을 들고 나왔다. 애초에 정치적 의도가 있는 작품을 결격 사항으로 규정하는 것 자체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닌가. 나는 차라리 개그콘서트가 부활해 코미디는 코미디언들에게 맡기는 방안을 심각히 논의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부가 하는 코미디는 불쾌하고 실소를 자아내게 하니까.   


얼마 전에 강릉에서 발생한 미사일 ‘낙탄’ 사고. ‘낙탄’이란 단어도 낯설거니와 우리 군에서 발사한 미사일이 우리 땅으로 떨어지는 일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터. 내가 원했던 재밌는 일은 이런 일들이 아니었다. 회사에서 바쁜 업무 중에 모두 짜증이 난 상태일지라도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으며 긴장을 푸는 일, 퇴근길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주민과 상냥한 인사를 나누는 일, 산책길에 만난 다른 강아지들의 보호자들과 함께 강아지 이야기를 주고받는 일, 달리기를 하다 지나치는 다른 러너들과 웃으며 주고받는 ‘엄지 척’ 정도의 일이 내게 일어나길 바랏 던 것이다. 최근 언론을 통해 접하는 소식들은 차라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를 간절히 바라게 하는 것이다. 


하루 종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지루한 나날들. 알람소리에 힘겹게 눈을 뜨고, 회사에 가서 업무를 하고, 집에 돌아와 강아지들과 산책을 하고,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잠자리에 누워 잠을 청하는, 재미는 없지만 걱정거리 또한 없는 그런 하루가 계속되기를 바라는 게 그토록 허황된 꿈이었나.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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