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

나이가 들면

by 모단걸

인기상을 받았다.

학창 시절에도 받아본 적이 없는 인기상을 마흔이 넘어서 받았다. 나 참. 이 것이 뭐라고 이렇게 사람을 기쁘게 하고 들뜨게 한단 말인가.


나는 언제나 회식을 피하는 사람이었다. 워낙 술을 못 마시기도 했고, 술자리에서 흐트러진 모습을 보는 것도 싫었다. 회식이 잡힌 날이 다가오면 며칠 전부터 불안했다. 일을 하려고 모인 직장에서 왜 술을 마시면서 친해져야 하는 것인지 나는 그 점을 이해 못 했다. 직장동료들끼리 술을 마시는 문화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하면 한국에서 직장인으로서 단점 하나가 추가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회식이 싫었다.


그날도 회식이었다. 입사 후 처음으로 나와 술을 마신 사람들도 있었다. 어쩌다 보니 1차와 2차를 거쳐 3차는 노래방으로 가게 되었다. 이미 나는 거하게 취해있었고, 결국 노래방에서는 정신줄을 놓고 춤을 추었다. 어떤 춤이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s.e.s의 i’m your girl이 나오자 기억 한편에 있던 그 시절 춤이 자연스레 나왔고, 누군가가 김현정의 ‘멍’을 무르자 다 함께 ‘다 돌려놔’에 맞춰 머리 위로 손을 돌리며 군무를 추었다. 어떤 노래가 나와도 나는 중앙으로 뛰쳐나가 춤을 추었다. 춤을 배워본 적도 없고 결코 잘 추지 못하지만 희한하게도 내 몸은 그때 그 시절 댄스를 기억했다.


막춤으로 인기상을 받다니! 맙소사.


나이가 들어가면 사람이 변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동안의 축적된 경험이라는 큰 자산이 사람을 바꾸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어떤 것들은 바뀌지 않아야 하는 것들도 있지만 말이다. 프로 회식 불참러였던 나는 지난해부터는 회식에 적극적으로 참석했고, 이 전에는 1차가 끝나면 바로 집에 가던 것에 비해 2차, 3차도 가능하면 참석했다. 그동안 내가 회식을 피하며 보여준 이미지와 다른 모습에 사람들은 놀라워했다.


어릴 때는 등산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차피 내려올 것을 왜 힘들게 올라가야 하는 것인지.

또 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이해하지 못했다. 가만히 있어도 지치는데 굳이 왜 몸을 힘들게 하는 것인지.

부모님이 부부싸움을 하는 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이혼할 것도 아니면서 왜 저렇게 싸우는 것인지.

결혼을 하는 친구들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면서 평생 한 사람만을 사랑하겠다고 다짐하는 것인지.


그런 논리라면 왜 밥을 먹는 것인지(어차피 다 쌀 거면서), 왜 연애를 하는지(언젠간 헤어질 텐데), 왜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지(어차피 끝이 있는데), 왜 사는지(사람은 누구나 죽을 텐데)에 대한 고민도 했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맛집에서 줄을 섰고, 연애를 했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았으며, 살기 위해 직장을 다니고 건강관리를 해왔다. 그러니 나는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이해하기 싫었던 것이다.


이제 나는 등산을 좋아하고, 주기적으로 운동을 하고, 부모님이 싸우는 것도 서로를 아끼기 때문에 싸우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한 사람만을 사랑하겠다고 다짐하는 이들의 용기가 부럽다. 직장에서 정해진 절차에 동료들과의 친밀감 한 스푼이 추가되면 아무리 거지 같은 일이라도 견딜 수 있지 않은가. 과거의 내가 어리석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때의 내가 냉소적이었기 때문에 지금 내가 느끼는 것들에 대한 이해가 깊은 게 아닐까.


요즘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귀가 잘 안 들려서 즐겨 듣던 음악도 듣지 못하고, 시력이 나빠져서 책도 읽지 못하고, 나의 신체 기능이 떨어져서 뛰기는커녕 잘 걷지도 못해서 좋아하는 등산도 못하고, 기억력이 감퇴하고 이해력이 떨어져 ai가 지배하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해 누군가의 조롱의 대상이 되는 시간이 되면 나는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때를 위해서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 가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두려울 때가 종종 있다.


두려움이 내 머릿속을 지배할라치면 나는 현생인류의 시작을 생각한다. 인류가 나타난 후, 수렵채집시기부터 ai시대까지 우리는 얼마나 변하는 세상에 적응하며 살았던 지를 생각하면 또 그리 막막하지 않다. 생각해 보면 내가 태어난 80년대 초반에는 컴퓨터도 보급되지 않았고, 휴대전화도 없었고, 넷플릭스도 없었다. 90년대에도 숙제를 할 때는 컴퓨터가 아니라 손으로 다 써서 냈고, 친구와 연락을 하기 위해서는 집전화를 사용하거니 편지를 보냈고, 영화를 보기 위해 영화관에 갔다. 아날로그 시대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나는 이 모든 변화에 적응해 왔고, 직장생활을 하며 나 하나를 먹여 살리고 있지 않나.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나는 적응할지 않을까. 이제껏 내가 경험해 온 것들이 미래의 나에게 자산이 될테지.


막춤으로 인기상을 받고, 직원들에게 초콜릿을 하나씩 선물했다. 그리고 집에 오는 길, 나는 터보의 ‘트위스트 킹’을 추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 그 춤은 진짜 신나게 출 수 있었는데!


어떤 것은 변하지 않는 게 있다. 트위스트 킹은 정말 신나는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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